각 여론조사서 자민당 '역풍' 분위기…선거 참패시 이시바 책임론 가능성
(도쿄=연합뉴스) 경수현 특파원 = 지난 1일 취임한 이시바 시게루 총리가 지지 기반을 강화하고자 내각 출범 이후 8일 만에 의회를 해산하고 치르는 중의원(하원) 선거(총선)에서 집권 여당인 자민당이 역풍을 맞고 있다.
지난 9일 중의원 해산 때만 해도 단독 과반까지는 몰라도 공명당까지 합친 전체 여당은 무난히 과반을 확보할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했지만 각종 여론 조사에서 갈수록 여당(자민·공명)의 과반 유지에 의문 부호가 달리고 있다.
자민당은 옛 민주당 내각에서 정권을 탈환한 2012년 이후 2014년, 2017년, 2021년 등 그동안 4차례 총선에서 매번 단독으로 과반 의석을 차지하며 공명당과 함께 안정적인 정치 기반을 이어왔다.
이에 따라 자민당은 아베 신조, 스가 요시히데, 기시다 후미오로 이어지는 3명의 총리를 잇따라 배출하며 국정을 좌지우지해왔다.
◇ '장기 집권' 자민당에 부는 역풍…심상치 않은 기류
자민당 총재인 이시바 시게루 총리는 지난 22일 유세 연설에서 "여당에 의한 과반수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가 애초 이번 선거를 시작하면서 제시한 목표는 자민당과 공명당까지 합친 여당이 과반 의석(233석 이상)을 차지하는 것이었지만 쉽지 않은 상황에 부닥쳐있음을 인정한 셈이다.
보수 성향 지지 세력을 결집하려는 의도도 없지는 않겠지만 현지 언론의 판세 분석에서도 이런 기류는 뚜렷하게 나타난다.
실제 진보 성향 매체인 아사히신문은 지난 19∼20일 여론조사 결과, 자민당과 공명당을 합친 전체 여당 의석수도 과반이 불투명한 상황이라고 21일 보도했다.
자민당 중의원 의석수가 선거 전 247석에서 50석 정도가 줄면서 단독 과반에 못 미칠 가능성이 크고 기존 32석을 보유한 공명당 의석 수도 30석 아래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는 것이다.
반대로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 등이 의석수를 크게 늘릴 것으로 내다봤다.
우익 성향의 산케이신문도 민영방송 후지뉴스네트워크(FNN)와 함께 지난 19∼20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자민당과 공명당 연립 정권이 과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고 하루 뒤에 보도했다.
◇ '비자금 스캔들' 심판 여론 커…이시바 취임 후 말 바꾸기도 실망 줘
2012년 옛 민주당으로부터 정권을 탈환한 뒤 12년간 안정적 의석을 확보해온 자민당에 역풍이 부는 가장 큰 이유는 '비자금 스캔들'에 대한 심판 여론이다.
작년 12월 불거진 '비자금 스캔들'은 옛 아베파 등 주요 파벌이 정치자금 모금 행사(파티)를 주최하면서 '파티권'을 할당량 이상 판 소속 의원들에게 초과분의 돈을 다시 넘겨줘 이를 장부에 기재하는 방식으로 비자금화했다는 의혹이다.
파장이 커지자 지난 4월 기시다 후미오 당시 총리는 부실 기재액이 500만엔(약 4천500만원) 이상인 39명에게 징계 처분을 내리면서 불을 끄려 했다.
그러나 내각 지지율이 국정 운영이 어려울 지경까지 추락하자 기시다 전 총리는 연임 도전을 포기했고 그 결과 탄생한 정부가 이시바 내각이다.
이시바 총리가 이끄는 자민당은 애초 비자금 스캔들 연루 의원들의 공천도 원칙적으로 허용할 방침이었던 것으로 현지 언론에 전해졌다.
그러나 여론이 심상치 않자 이시바 총리는 당내 반발을 무릅쓰고 옛 아베파를 중심으로 연루 의원 12명을 공천 배제하기로 결정하는 등 나름 대응책을 마련했다.
하지만 민심을 달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선거 전 각종 여론 조사에서도 자민당을 심판하려는 민심의 징조가 보였다.
교도통신이 선거 입후보 등록 직전인 지난 12∼13일 진행한 전화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71.6%가 연루 의원 12명의 공천 배제에 '불충분하다'고 답했다. 투표할 때 비자금 사건을 '고려할 것'이라는 응답률도 65.2%에 달했다.
원래 '여당 내 야당'으로 불리던 비주류파 출신의 이시바 총리가 지난 1일 취임 후 당내 주류 세력의 입장을 끌어안으며 평소에 해온 말과 다른 행동을 보여준 점도 유권자들의 실망을 산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으로 이시바 총리는 지난 9월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경쟁자인 고이즈미 신지로 의원이 총재 선거 후 최대한 조기에 의회를 해산해 총선을 실시할 것이라는 공약을 제시하자 충분한 국회 논의 과정을 거치는 게 바람직하다며 자신은 반대한다는 의견을 보였다.
하지만 그는 자민당 총재 당선을 거쳐 총리에 오르기 하루 전에 조기 의회 해산 의사를 밝혔다.
이번 선거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출범한 내각 중 최단 기간에 의회를 해산해 치르는 것이다.
◇ 정계 재편론까지 등장…당내 입지 불안한 이시바 단명 몰리나
일본은 조기 중의원 해산에 따른 총선거가 치러지면 다시 총리 지명 선출 등을 위한 '특별 국회'를 연다. 자민·공명당이 과반을 차지하지 못하면 총리 지명조차 제대로 진행되지 못할 수 있다.
근소한 차이라면 무소속 의원 등을 영입해 현 여당이 정권을 연장할 수 있다.
이시바 총리는 이번 선거를 앞두고 '비자금 스캔들' 연루를 이유로 공천 후보에서 배제한 12명의 의원이 무소속으로 당선되면 소급 공천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이미 밝힌 바 있다.
그러나 표 차가 크다면 총리 지명뿐만 아니라 안정적인 국회 운영을 위해 현 야당 일부를 새로운 연립 정당의 파트너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일본 중의원에서 여당이 예산이나 법안을 원활히 통과하는 데 필요한 '안정 다수' 의석수는 244석이고 '절대 안정 다수' 의석은 261석이다.
'절대 안정 다수' 의석은 여당이 전체 17개 상임위원회에서 위원장을 독점하고 위원회별로 위원 수 절반을 확보할 수 있다.
선거전 중의원 의석 분포는 자민당(247석)과 공명당(32석) 등 여당이 279석을 차지했다.
야당은 입헌민주당(98석), 일본유신회(44석), 공산당(10석), 국민민주당(7석), 레이와신센구미(3석), 사민당(1석), 참정당(1석) 순이며 무소속은 22석이다.
현지 언론에서는 보수 성향의 야당인 일본유신회나 국민민주당을 새로운 연정 파트너 후보군으로 점치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연립 정권 확대가 무난하게 이뤄지더라도 이시바 총리의 입지가 선거 참패 책임론에 흔들릴 가능성도 있다.
내년 여름 참의원(상원) 선거나 도쿄도 의회 선거 전에 총리 교체론이 부상할 수 있다는 예상이다.
특히 지난 9월 총재 선거 때 결선 투표에 올라 최종 승부를 다툰 다카이치 사나에 전 경제안보 담당상과 다카이치 후보를 민 '아소파'의 수장인 아소 다로 자민당 최고 고문이 '이시바 끌어내리기'를 주도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ev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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