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민당 독주 체제 '흔들'…12년 만에 정치권, 유동적 상황 직면
야당 결집은 쉽지 않을듯…연정 확대 전망 속 이시바 책임론 커질듯
(도쿄=연합뉴스) 경수현 특파원 = 일본 집권 자민당이 공명당과 손잡고 장기간 이어온 현 연립 정부 체제가 27일 중의원 선거(총선)에서 자민·공명 여당의 과반 의석 확보 실패로 궁지에 몰렸다.
장기 집권해온 자민당 독주 일본 정치체제가 크게 흔들리며 12년 만에 유동적인 상황에 놓였다.
◇ 12년 만에 정계 개편 가능성 불거진 일본 정치권
자민당은 2012년 옛 민주당 내각에서 정권을 탈환한 것을 시작으로 2014년, 2017년, 2021년 등 4차례 총선에서 매번 단독으로 과반 의석을 차지하며 공명당과 함께 안정적인 정치 기반을 다져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애초 목표한 여당(자민당과 공명당) 과반 의석 확보에도 실패했고, 야당이 결집하면 자민당을 밀어내고 국정운영을 떠맡을 수도 있는 상황이 됐다.
다만 현 야당의 결집이 쉽지 않은 데다 자민당이 이번에도 제1당 자리는 지킨 만큼 무소속 당선 의원을 끌어들이거나 보수 성향의 야당과 연정 확대를 추진해 계속 집권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현지 언론은 보고 있다.
결론은 내달 열릴 '특별국회'에서 내려질 전망이다.
특별국회는 중의원 해산에 의한 총선거 실시 후 1개월 이내에 소집되는 국회로, 소집과 함께 기존 내각은 총사퇴해야 하며 회기 동안 총리 선출 지명과 상임위원회 등 원 구성을 새로 하게 된다.
자민당에서는 특별국회 개시일을 내달 7일로 검토 중이라는 이야기도 흘러나온다.
◇ 야당 정권 창출 가능할까…정책 이념 달라 총리 후보 단일화 어려울 듯
내각책임제인 일본에서는 중의원에서 과반수 투표로 지명 선출된 총리가 내각을 구성한다.
현 여당인 자민·공명당이 과반 의석을 놓친 만큼 산술적으로는 야당이 결집해 총리 후보 단일화에 성공하면 정권 창출이 가능하다.
실제 1993년 9월부터 10개월간 정권을 차지한 비자민·비공산연립정권은 당시 7개 정당과 1개 그룹이 뜻을 모으면서 연립 정부 출범에 성공했다.
하지만 야당 결집이 자민·공명당의 추가 연정보다 더 어려울 것이라는 것이 현지 언론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입헌민주당, 일본유신회, 공산당, 국민민주당 등 야당들은 정책 이념 등 스펙트럼이 넓어서 총리 후보를 단일화하기 쉽지 않다.
이번 선거를 앞두고도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은 중의원 의원 후보 단일화 등을 주장했지만 별 성과를 보지 못했다.
실제 이번 선거 때 여당과 주요 야당 후보가 1대 1로 대결한 소선거구(지역구)는 3년 전 총선과 비교해 3분의 1 수준으로 준 것으로 분석됐다.
여기에는 이시바 시게루 총리의 속전속결 총선거 전략으로 인해 야당 진영의 협상 시간 부족과 함께 중도 성향 안보 정책을 끌어안은 입헌민주당과 이에 반대하는 공산당의 갈등 등 야당 간 정책 차이 영향도 작용했다.
◇ 자민당 주도 연정 확대에 무게…무소속·일부 야당에 연정 요청 가능성
결국 자민당의 무소속 의원 영입이나 일부 야당과의 연정 확대가 현실적으로 더 가능성이 크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이번 총선 목표로 여당 과반 의석 유지를 제시한 이시바 총리는 '비자금 스캔들' 연루 의원 12명을 공천에서 배제했지만, 이들 의원이 무소속으로 출마해서 당선되면 '소급 공천' 처리할 수 있다는 입장도 이미 밝혔다.
공천 배제된 '비자금 스캔들' 연루의원 대부분은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하지만 안정적인 정권 운영을 위해 자민당은 추가로 무소속 의원 영입과 일본유신회, 국민민주당 등 일부 야당에 대한 연정 요청을 진행할 가능성이 있다.
다만 선거 운동 기간 일본유신회나 국민민주당은 자민당과 연정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그럼에도 자민당의 연정 확대 가능성은 살아있는 것으로 현지 언론은 보고있다.
요미우리신문은 "내년 정기국회 회기나 내년도 예산안의 중의원 처리 때가 연립 확대의 목표 시기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선거 운동 종반 모리야마 히로시 자민당 간사장은 연정 틀을 확대할 수 있음을 이미 시사하기도 했다.
일본 중의원에서 여당이 예산이나 법안을 원활히 통과하는 데 필요한 '안정 다수' 의석수는 244석이고 '절대 안정 다수' 의석은 261석으로 여겨진다.
'절대 안정 다수' 의석은 여당이 전체 17개 상임위원회에서 위원장을 독점하고 위원회별로 위원 수 절반을 채울 수 있음을 뜻한다.
선거전 중의원 의석 분포는 자민당(247석)과 공명당(32석) 등 여당이 279석이었다.
◇ 당내 입지 불안한 이시바…'초단명 총리' 몰리나
자민당이 연정 확대를 통해 집권당 지위를 유지하더라도 이시바 총리는 또 다른 위기에 놓일 수 있다.
자민당 총재로서 이번 선거를 지휘한 만큼 선거 패배 책임론에서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만일 그가 자민당이 중의원 선거에서 15년만에 단독 과반에 실패한 데 대해 책임지고 사임한다면 기록적인 '초단명 총리'가 된다.
1980년대 이후를 보면 비자민·비공산연립정권 시절이던 하타 쓰토무 전 총리의 64일이 가장 짧은 재임기간이다.
다만 그는 개표 도중 단독 과반 실패가 명확한 시점에서 일부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비자금 스캔들로 매우 엄격한 심판을 받았다"면서도 "앞으로 우리가 내건 정책 실현을 위한 노력을 최대한으로 해야 한다"고 자신의 거취에 대한 명확한 입장 표명은 유보했다.
물론 이번 선거 패배의 가장 큰 요인으로는 이시바 총리가 권력을 잡기 전인 작년 12월 불거진 '비자금 스캔들'에 대한 심판 여론이 꼽힌다.
하지만 당내 비주류 출신으로 개혁 이미지를 쌓아온 이시바 총리는 취임 후 유권자들에게 제대로 개혁 의지를 보여주지 않은 채 조기 중의원 해산을 강행했다는 점에서 역시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
이번 선거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새로 취임한 역대 총리 중 최단기간에 의회를 해산해 이뤄진 총선이다.
일반적으로 새로 출범한 내각은 지지율이 높다는 '허니문 효과'를 노려 조기 총선으로 자신의 지지 기반을 다지려 한 선택이라는 분석이다.
하지만 그의 이런 선택은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이에 따라 벌써 현지 언론에서는 내년 여름 참의원(상원) 선거와 도쿄도 의회 선거전에 총리 교체론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시바 총리를 간판으로 내세워 또다시 선거를 치르면 당의 운명이 위험해질 수 있다는 인식이 당내에 공유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시바 총리는 취임 직후부터 여론 조사에서 역대 정권 출범 초기와 비교해 내각 지지율이 낮게 나왔다.
게다가 취임 한 달도 안 된 상황이지만 갈수록 지지율이 하락하고 있다.
지지통신이 지난 11∼14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이시바 내각 지지율은 28.0%에 그쳤다. 이 통신의 2000년 이후 내각 출범 초기 조사에서 최저 수준이다. 30%에 못 미치는 지지율은 일본에서 정권 퇴진 위기 수준으로도 여겨진다.
이에 따라 당내 압력 강도와 이시바 총리의 결심 등 여러 변수가 맞물리면 퇴진 시기는 더 당겨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자민당의 연정 못지않게 이시바 총리의 앞날도 짙은 안갯속에 휩싸여있는 셈이다.
eva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