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 체류중인 레바논인들 고국 전쟁에 발 묶여
"관련 당국, 무대응 혹은 거절"…내무부 "사례별 검토"
(파리=연합뉴스) 송진원 특파원 = 프랑스에 임시 체류 중인 수백명의 레바논인이 자국의 안보 상황을 고려해 체류 연장을 희망하고 있지만 관계 기관의 무응답과 거절에 속을 태우고 있다고 일간 르몽드가 2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프랑스인과 결혼해 2021년부터 발드마른에 살고 있는 프랑스계 레바논 여성 마를렌(가명)은 집안 사정으로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친정어머니를 지난 9월1일 모셔 왔다.
어머니는 당초 몇 주만 프랑스에 머물 계획이었으나 9월23일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격이 시작되자 차마 어머니를 귀국시킬 수 없었다.
마를렌은 "나는 외동딸이고 76세의 어머니는 베이루트에 혼자 살고 계신다. 무슨 일이 생기면 어머니는 아무 데도 갈 수 없다"며 걱정을 털어놨다.
그의 어머니의 관광 비자가 허용하는 체류 기간인 내달 11월12일 이후에는 프랑스에서 출국해야 한다.
마를렌은 "이달 1일부터 모든 행정기관에 연락해 어머니 비자를 연장해달라고 요청했다"며 "하지만 관청은 이메일이나 전화에 답하지 않았고 심지어 등기 우편도 여러 차례 보냈는데 소용없었다"고 하소연했다.
이어 "엘리제궁에 있는 (외무부의) 위기 대응팀에도 편지를 보냈지만 아무도 답장하지 않았다"면서 "이대로 가다가는 어머니가 불법 체류자 신세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마를렌의 어머니와 비슷한 이유로 프랑스에 왔던 지젤 다카쉬는 "70세에 불법 체류자가 될 수는 없다"며 고민 끝에 출국을 결심했다.
1살과 3살 손녀딸을 돌보기 위해 올여름이 끝날 무렵 프랑스에 온 다카쉬의 비자는 이달 15일 만료됐다.
프랑스에 거주하는 다카쉬의 아들 엘리 다게르는 "어머니는 헤즈볼라 지휘부 건물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산다"며 어머니의 비자를 연장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했으나 성과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당국은 '아직 레바논 국민에 관한 어떤 지침도 내려온 게 없다'고만 답했다"면서 "달리 방법이 없어 어머니는 여동생이 사는 두바이로 가시기로 했다"고 말했다.
사미르(26) 역시 리옹에 있는 가족을 보러 프랑스에 왔다가 체류 기간을 한두 달 연장하려고 당국에 문의했으나 거절당했다.
그는 "나는 프랑스에 정착할 생각도 없고, 단지 안보 상황과 인터넷 차단 위험 때문에 1∼2개월 비자 연장을 원했는데 당국은 '레바논과의 항공편이 중단되지 않았고 내무부 지침을 따른다'는 이유로 거절했다"고 말했다. 사미르는 결국 요르단으로 옮겨 회사가 제공한 호텔에 머물고 있다.
파리 주재 레바논 대사관은 비자 만료에 직면한 레바논인들에게 약 350건의 연장 요청을 받았다며 "내무부와 함께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르몽드에 답했다.
이민 정책을 총괄하는 내무부는 레바논인의 체류 연장 문제와 관련해 "체계적으로 확립된 기조는 없다"며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사례별로 검토하고 있다"고만 밝혔다.
프랑스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오스만 제국 영토였던 레바논 지역을 통치한 역사가 있어 문화·정치·경제적으로 깊게 연관돼 있다. 프랑스에 거주하는 레바논인만 약 25만명으로 추산된다.
s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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