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작품…'노벨상 효과' 덕 8회 공연 전석 매진
"책에 비해 미장센 밋밋" 지적도…연출가·배우 "유럽인들도 공감할 이야기"
(파리=연합뉴스) 송진원 특파원 = "굉장히 시적이었어요. 한강이라는 작가를 몰랐는데 앞으로 그의 책을 찾아서 읽어보고 싶어요."
작가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바탕으로 만든 동명의 이탈리아 연극이 8일(현지시간) 저녁 프랑스 파리 무대에 처음 올랐다.
연극 채식주의자는 이탈리아 극단 INDEX의 연출가 겸 배우인 다리아 데플로리안이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이전에 극으로 기획한 작품이다.
이날부터 16일까지 파리 17구의 오데옹 극장에서 8차례 공연하는데, 때마침 노벨문학상 수상과 맞물려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전회 표가 매진됐다.
파리에서 유학하고 있는 아르헨티나 대학생 엘리사(24)씨는 공연이 끝난 뒤 연신 "시적이었다"는 말을 쏟아내며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의 작품이라고 해서 공연 표를 예매했다"고 말했다.
프랑스인 장(57)씨도 "내용이 우울하긴 한데 시적인 느낌"이라며 "자막으로 봐야 해서 이야기를 완벽히 이해하진 못했지만 감정으로 충분히 느꼈다"고 말했다.
70대 프랑스인 안씨는 "굉장히 독특하고 생소한 이야기"라며 "한국 영화는 봤어도 문학은 별로 접해본 일이 없는데 앞으로 사람들이 관심을 보일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연극을 보고 나온 관객 일부는 극장 내 마련된 소규모 서점에 들러 프랑스어판 '채식주의자'나 '작별하지 않는다'를 구매하는 모습이 눈에 띄기도 했다.
다만 이미 활자로 '채식주의자'를 접한 이들 중에선 연극이 실망스러웠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날 연극을 보기에 앞서 전날 부랴부랴 책을 읽었다는 니콜라(53)씨는 "책이 묘사한 것은 굉장히 풍부한데 그에 비해 미장센(무대 위 배치)이 너무 밋밋했다"며 "시각적으로 더 신경을 썼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고, 배우들이 독백으로 넘어가는 부분이 너무 많았다"고 지적했다.
평가는 다소 엇갈리지만, 연출가 다리아 데플로리안은 '채식주의자'를 많은 이에게 선보일 수 있게 된 점을 기쁘게 생각했다.
데플로리안은 전날 리허설 뒤 가진 한국 기자들과 인터뷰에서 "2018년 처음 책을 읽었을 때 너무 마음에 들었다. 매우 보편적인 방식으로 세상의 폭력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했다"며 애정을 드러냈다.
그는 특히 주인공 '영혜'에 대해 "다른 사람이 결정한 삶이 아니라 내가 살아야겠다고 결심"한 삶을 사는 사람이라며 "영혜는 굉장히 신비롭고 이해하기 쉽지 않은 인물"이라고 말했다.
영혜 역을 맡은 배우 모니카 피세두도 "영혜는 너무 인간적이고, 내면에 질문이 가득하다. 자신이 있는 곳이 아니라 항상 다른 곳에 가 있다. 그래서 (무대에서) 많은 걸 신경써야 했다"며 "힘들긴 하지만, 내가 정말 좋아하는 캐릭터"라고 말했다.
피세두는 한국 소설을 바탕으로 한 연극이지만 유럽 관객들에게 충분히 통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는 "그녀(영혜)의 상황은 세상의 다른 여성들의 상황이기도 하다. 그녀는 혼자이고, 누구와도 대화할 사람 없이 이 모든 일을 혼자서 해야 한다"며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는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이탈리아 관객들도 깊은 공감을 표했다고 말했다.
피세두는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도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그는 "한강은 훌륭하고 위대한 작가이자 여성"이라며 "한강 소설의 힘, 평범하지 않은 것을 인정해줘서 정말 기쁘고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s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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