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정책에 영향력 행사 전망…"FDA 등에 백신 회의론자 임명할 수도"
(서울=연합뉴스) 고동욱 기자 =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선으로 '백신 음모론자'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가 공중보건 분야 전면에 등판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외신은 8일(현지시간) 2기 트럼프 행정부에서 케네디 주니어의 영향력이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에 대한 보건 당국자들과 제약업계 관계자들의 반응을 조명했다.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의 조카인 케네디 주니어는 코로나19 팬데믹 이전부터 백신 사용이 자폐증 등을 유발한다고 주장하며 정치권을 상대로 백신 반대 로비 활동을 펼쳐왔다.
그는 올해 미국 대선에 무소속으로 출마했다가 8월 후보에서 사퇴하고 트럼프 당선인 지지를 선언했다.
트럼프 당선인이 대선에서 승리하면서, 사퇴 당시의 '이면 합의'에 따라 케네디 주니어는 공중보건 분야에 큰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 확실시된다. 정부에 입각하거나 백악관에서 보건·식품 정책을 감독하는 역할을 맡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WP는 복수의 전직 트럼프 행정부 보건 당국자의 말을 인용해 "케네디 주니어가 백신 승인 절차를 전면 개편하기는 어렵겠지만, 다른 방식으로 압력을 행사할 수 있다"며 "기존 백신의 생산을 늦추거나 새로운 백신의 생산 승인을 방해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케네디 주니어가 이끄는 기관이 미 식품의약청(FDA)의 백신 생산 시설 조사를 지연시키거나 백신 안전성에 대한 추가 데이터나 조사를 요청하는 방식으로 승인을 늦출 수 있다는 것이다.
FDA나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자문위원회에 백신 회의론자를 참여시키는 방안도 언급했다.
FT 역시 "연방 고위직에 코로나19 백신 회의론자를 임명하거나 규제에 대한 전면적 재검토에 착수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적용된 각종 제한 조치에 반대해 인기를 얻은 의료인들이 FDA나 CDC 등 보건 기관의 수장 후보로 거론된다고 전했다.
그러나 백신과 관련한 당국이나 업계 관계자들은 케네디 주니어의 백신 음모론이 과학적 근거가 없다며 후폭풍을 우려하고 있다.
필라델피아 아동병원 백신교육센터장인 폴 오핏은 WP에 "케네디 주니어는 종교적인 신념으로 과학적 근거가 없는 잘못된 믿음을 고수하고 있다"며 "그런 사람이 과학에 근거해 운영되는 기관에 의견을 제시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텍사스의 백신 옹호 의료인 단체 관계자는 "백신으로 예방할 수 있는 질병을 겪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이에 따라 사망하는 어린이들이 늘어나는 모습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보스턴 소재 생명과학 기업 '앨닐럼'의 전직 최고경영자 존 매러가노어는 FT에 "과학과 증거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과 증거에 기반을 두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케네디 주니어는 최근 미국 공영 라디오 NPR과 인터뷰에서 "누구에게서도 백신을 빼앗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백신의 안전성과 관련한 과학에는 커다란 결함이 있다. 우리는 과학적 연구를 통해 사람들이 백신 접종에 따른 충분한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sncwook@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