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파리협정 탈퇴 공백 메우고 "책임있는 강대국 모습 보이기 좋은 위치"
(서울=연합뉴스) 권수현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한 국제 협약에서 또다시 탈퇴할 경우 중국이 국제 기후행동에서 주도권을 쥐게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미국은 국제사회의 온실가스 감축 약속인 파리기후변화협정(파리협정) 체결에 중추적 역할을 했으나 기후변화를 부정하는 트럼프 당선인의 백악관 복귀로 이탈이 우려된다.
이에 비해 세계 탄소 배출량 1위 국가이자 국제사회의 탄소 감축 노력에 '훼방꾼' 취급을 받아온 중국은 2020년 9월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2030년까지 탄소 배출 정점, 2060년 탄소 중립 실현' 목표를 제시한 것을 전후로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다.
풍력 및 태양광 발전이나 전기차 같은 친환경·저탄소 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하면서 세계적으로도 관련 기술을 주도하고 있으며 개발도상국 친환경 에너지 프로젝트에 막대한 투자를 하는 등 '기후 외교'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중국은 11일(현지시간)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개막한 제29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9)에서도 한층 적극적인 목소리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8일 "중국은 유엔기후변화협약과 파리협정의 목표·체계를 지키기 위해 다른 당사국들과 협력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기후행동에서 주요 2개국(G2)이 보이는 대조적 행보를 두고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WSJ)는 이날 "트럼프 캠페인은 미국을 파리협정에서 탈퇴시키겠다고 다짐했지만 중국은 그 어느 때보다 협정에 전념하는 모습"이라며 "트럼프의 대선 승리로 중국이 COP29 협상에서 결정권을 가져가고 있다"고 짚었다.
미국 시사주간 디애틀랜틱도 미국이 기후 리더십에서 물러나면 중국이 들어와 그 역할을 맡을 것이라면서 "중국을 악당으로 묘사하기를 좋아하는 트럼프 당선인은 아이러니하게도 중국에 황금 같은 기회를 건네주게 될지 모른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도 미국이 파리협정에서 다시 탈퇴하게 되면 중국이 그 공백을 메우며 글로벌 기후변화 대응 논의에서 주도권을 가져갈 것으로 관측했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기후변화 특사를 지낸 조너선 퍼싱은 "중국은 전 세계 거의 모든 국가를 상대하는 세계 최대 무역 파트너로, 영향력은 줄지 않는다. 만약 미국의 (파리협약) 탈퇴는 중국의 이러한 영향력을 더 키울 것"이라고 말했다.
퍼싱은 트럼프 차기 행정부의 협약 탈퇴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이제 모두 중국을 바라본다. 미국이 탈퇴하면 중국이 나설 것이라고 본다"면서 "다만 그 방식은 매우 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이 국제 기후행동에서 미국 대신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 되면 태양광 패널과 풍력터빈, 배터리, 전기차 등 이미 중국이 주도하고 있는 기후보호산업 시장 장악력아 더 커질 수 있다고 아시아사회정책연구소의 중국 기후정책 전문가 리숴는 지적했다.
국가 이미지 쇄신을 꾀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중국은 그동안 탄소 감축 논의에서 개도국 입장을 대변해 왔으며 아프리카, 남미, 동남아시아 국가 등에서 친환경 인프라 건설 등을 지원해왔는데 이를 발판 삼아 '그린 소프트파워'를 쌓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중국은 여전히 세계 최대 탄소 배출국이고 석탄 사용 증가 등 여전히 문제를 안고 있다. 이번 COP29에서 기후변화 대응 재원 마련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참여할지도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런 문제는 미국의 행보에 가려질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했다.
트럼프 차기 미국 행정부가 파리협정 재탈퇴를 포함해 바이든 정부의 친환경정책 폐기를 예고한 상황에서 중국은 별다른 노력 없이도 '영웅' 대접을 받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핀란드 비정부기구(NGO)인 에너지·청정대기연구센터(CREA)의 중국 정책 분석가인 벨린다 샤페는 "미국이 글로벌 기후 의제를 버리게 되면 중국은 아무 새로운 약속을 하지 않고도 스스로를 책임 있는 글로벌 강대국으로 묘사할 수 있는 편안한 위치에 서게 된다"고 SCMP에 말했다.
COP29 참석차 바쿠를 찾은 한 국제 기후금융 관계자는 현재 중국이 기후변화 대응과 관련해 "그렇게 목소리를 높이거나 적극적으로 밀어붙이지는 않고 있다"면서도 "현실은 중국이 다른 누구보다 기후와 관련해 많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inishmor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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