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케시=연합뉴스) 성연재 기자 = 모로코 거리를 거닐며 마치 아라비아반도에 온 것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화려한 장식을 한 궁전에서는 스페인 남부에 있는 알람브라 궁전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모로코 곳곳에서 봤던 건축물들은 아라비아반도나 스페인에서 보았던 것보다 훨씬 정교하고 화려했다. 화려한 색상은 북아프리카만의 생명력을 보여주는 듯했다.
◇ 마라케시의 숨겨진 보물, 바히아 궁전과 바샤 궁전
모로코의 붉은 도시 마라케시의 미로 같은 골목길에는 비밀이 숨겨져 있을 것만 같다.
흙빛 골목길 사이를 헤매다 마주친 담벼락 뒤편에는 화려한 궁전이 자리 잡고 있었다.
19세기 모로코의 황금기를 보여주는 바히아(찬란하다는 뜻) 궁전이 대표적이다.
1866년 마라케시 메디나 남동쪽의 유대인 거주지역 인근에 당대 최고 관료였던 시 무사(Si Moussa)가 지은 궁전이다.
이베리아 양식과 이슬람 양식이 혼합된 이 궁전은 확장을 거듭해 8천㎡ 규모까지 늘어났다.
돌을 깎아 놓은 듯 정교하게 세공된 벽과 삼나무로 만들어진 천장에는 화려한 문양이 자리 잡았다.
'제리지'라는 이름의 기하학적 패턴이 그려진 타일도 인상적이다.
이와 견줄만한 곳이 바로 '바샤 커피'의 기원이 된 궁전 '다 르 엘 바샤'다.
바샤 커피는 1910년 모로코 마라케시에 있던 이 궁전의 한 방에서 시작됐다.
당대 정·재계 인사들이 수시로 드나들며 커피를 즐겼는데 이것이 그 기원이다.
최근 싱가포르의 한 기업이 이 바샤 커피를 테마로 최고급 커피 브랜드를 만들었다.
얼마 전엔 한국의 롯데그룹에서도 바샤 커피를 수입해 강남에 프리미엄 커피 매장을 열기도 했다.
마침 방문일이 궁전의 문을 닫은 날이었지만, 한국 언론을 위해 특별히 공개해 줬다.
바샤 궁전에서 바샤 커피를 맛볼 수 없었던 것이 아쉬웠지만, 정원과 궁전은 아쉬움을 보상하고도 남았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아무도 없는 궁전을 거니는 느낌은 그 예전 이곳을 호령했던 왕들이나 했을 법한 호사였다.
◇ 입센로랑 vs 셰프샤우엔 '색의 대결'
모로코에서는 아프리카의 생명력을 느낄 수 있는 화려한 색상을 자랑하는 장소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디자이너 입센 로랑의 '마조렐 정원'과 '셰프샤우엔 마을'이다.
마라케시의 번화한 중심부에 마조렐 정원이 있다.
프랑스 패션 아이콘이었던 입센 로랑이 소유했던 곳으로, 북아프리카 허브가 가득 찬 정원과 저택이 어우러진 풍경이 독특하다.
입장과 동시에 일행 모두가 놀라움의 탄성을 질렀다.
메마른 북아프리카 기후 속에서 접한 작은 연못과 어우러진 녹색 정원이 큰 청량감을 줬기 때문이다.
이곳에는 1930년대 건축가 폴 시누아르가 프랑스 화가 자크 마조렐을 위해 설계한 저택이 있다.
저택은 '마조렐 블루'라고 알려진 짙은 청색으로 뒤덮여 있다.
덕분에 이곳은 연간 약 80만명의 방문객을 끌어모으고 있다. 바로 옆 베르베르 박물관에는 입센 로랑이 리프 산맥과 사하라 사막 등지에서 수집한 유물 600여 점이 있다.
리프 산맥의 발치, 해발 660m 고지에 자리 잡은 셰프샤우엔은 푸른색이 인상적인 도시다. 모로코에서 가장 예쁜 길을 걸을 수 있고 인디고블루와 흰색의 대비가 눈부신 마을이다.
15세기 스페인의 레콘키스타(국토회복운동)로 밀려난 무슬림과 유대인들이 이곳에 정착하면서 형성됐다.원래 흰색 일색이었지만 1930년대 히틀러의 학살을 피해 유대인들이 정착하면서부터 푸른색이 칠해졌다.
파란색은 이스라엘 국기에서 알 수 있듯, 유대인을 상징하는 색상이다.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되면서 유대인은 떠나갔으나 그 전통은 계속되고 있다.
◇ 붉은 사막 바라보며 즐기는 열기구
모로코에서 가장 아쉬운 것은 드론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공항 입국장에서부터 드론 그림에 붉은 사선이 그어진 표지판이 여러 군데 눈에 띄었다.
그런데 희소식이 들려왔다. 열기구 프로그램이 준비됐다는 것이다.
출국 전까지도 이 프로그램에 대해선 전혀 알려지지 않았는데 도착한 날 저녁에야 다음 날 새벽 5시에 일어나 열기구를 타러 간다는 소식이 통보됐다.
하늘 위에서 붉은 도시 마라케시를 바라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다음 날 새벽, 일행을 태운 차량은 마라케시 숙소에서 북동쪽으로 32㎞ 지점에 있는 보루스라는 동네로 향했다. 여전히 어두컴컴한 새벽. 추위를 이기기 위해 모로코 전통 커피를 한잔씩 한 뒤 열기구에 몸을 실었다. 곧이어 두둥실∼ 열기구가 떠올랐다.
새벽어둠을 뚫고 동쪽에서는 해가 떠오른다.
붉은색 사막이 한눈에 들어왔다.
기분을 더욱 고조시킨 건 독일인 조종사 호르가 딕슨 씨의 80년대 팝송 선곡이었다.
창공에서 팝 음악을 들으니 마음마저 두둥실 떠오르는 느낌이다.
1시간쯤 뒤 열기구에서 내려온 일행은 베르베르 전통 조식으로 허기진 배를 채웠다.
올리브와 다양한 빵을 곁들인 베르베르식 조식은 한국인 입맛에도 잘 맞는 듯했다.
◇ '이곳이 진짜 모로코'…페즈
모로코 중부의 페즈는 고대 도시다.
모로코인 가이드는 서기 808년 모로코의 첫 번째 왕조가 이곳에서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로마 시대 이웃 알제리까지를 아우른 마우레타니아 왕조는 지금의 모로코인들과 관계없는 왕조라고 것이다.
페즈의 메디나 한가운데에서는 600년 된 문화재급 저택을 만날 수 있다.
꼬불꼬불한 골목길을 헤치고 나가다 보면 막다른 장소가 나오는데, 그곳에 저택 입구가 있다.
'미음(ㅁ)'자로 지어진 4층짜리 대저택은 입구부터 이곳이 범상치 않은 곳임을 알려준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 모두가 예외 없이 놀라게 된다.
건물 내부 어느 한 면도 장식이 없는 곳이 없다.
하나하나가 문화재급이며, 그 자체가 예술이다.
'바브 사하라'라는 이름의 이 건물은 현재 음식점으로 사용되고 있다.
바브 사하라는 사하라 사막의 문이라는 뜻이다.
옥상에는 도시 전망이 훤하게 펼쳐진 식탁이 있다.
조금 기다리니 전통 음식인 '타진'(Tajine)이 나온다.
식사 후 전망을 바라보며 아라비아 차를 마시니,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고대로 돌아간 듯했다.
이곳에서는 모로코 요리 교실이 열린다.
오후 일정을 소화한 뒤 저녁 무렵 다시 이곳을 찾았다.
앞치마와 요리 모자를 쓴 채 모로코 전통 요리 타진의 조리법을 배웠다.
흙으로 빚은 삼각형 뚜껑이 달린 냄비에 닭고기와 각종 야채를 넣고 끓이는 요리다.
야채를 길쭉하게 썬 뒤 닭고기 위에 얹고 각종 향신료를 뿌린 뒤 20여분 기다렸더니 고소한 냄새가 솔솔 났다. 한국의 전골 비슷한 요리다.
일행은 큰 어려움 없이 모두 맛있게 먹었다.
페즈는 오래된 도시다. 관광으로 알려지거나 상업화한 다른 도시들과는 매우 달랐다.
낡은 거리 곳곳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가게에서는 향신료부터 옷감 등 없는 것이 없었다.
모스크이자 대학교인 '알카라위인'은 1323년에 설립돼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돼 있다.
이 대학 기숙사로 지어진 '알아타린 마드라사' 등 건축물들을 보면 삼나무와 석회에 새겨넣은 정교한 문양에 놀라게 된다.
페즈에 완전히 매료된 일행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이곳이 진짜 모로코다"
◇ 가장 더러운 것에서 가장 아름다운 색상이…페즈의 가죽 염색 산업
모로코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 포인트 중 하나는 페즈의 가죽 무두질 공장을 일컫는 '테너리'다.
코를 찌르는 악취와 함께 빨갛고 파란 총천연색의 염료에 가죽을 물들이는 장면은 여러 다큐멘터리를 통해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졌다.
꼬불꼬불한 골목길을 수없이 지나쳐 어느 건물 위로 올라가니 드라마에서 봤던 그 가죽 염색 현장이 나타났다.
올라가는데 허브를 하나씩 손에 쥐여 준다.
냄새가 심하니 허브향을 맡으며 참아 보라는 것이다.
염료 통에 비둘기 대변과 소 오줌 등의 성분이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이 성분이 가죽을 부드럽게 만들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색이 잘 먹힌다고 한다.
필자는 KF94 마스크까지 준비했지만, 참을 만했다.
한 인부가 힘들게 오르락내리락하며 가죽을 염색하는 장면이 눈에 띄었다.
그 위로는 다닥다닥 수많은 집들이 눈에 띈다.
사진의 각도가 마음에 들지 않아 건물 반대편 쪽 옥상으로 가려고 시도했다.
미로 같은 골목길을 30여분 헤맸지만 결국 길을 잃었다.
주민들을 붙잡고 물어보니 그곳에 가려면 한참을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시간상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길을 잃은 자리에서 골목길 곳곳 벽에 페인트로 예쁘게 그려진 꽃무늬가 궁금했다.
주민에게 물어보니 어려웠던 코로나를 잊지 않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수많은 관광객이 붐볐던 이곳도 코로나 탓에 관광객의 발걸음이 뚝 끊기자 주민들이 힘겨운 생활을 했다고 한다.
가슴 뭉클한 장면이다.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4년 12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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