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깜이' 공모로 주민들도 사업내용 몰라…탈락 단지 갈등 우려
"사업성 보다 정량평가" 평가기준 불만도…선도지구는 '독이 든 성배' 걱정
영구임대 고밀개발, 유휴부지 활용 등으로 이주 수요 흡수될까
(서울=연합뉴스) 서미숙 기자 = 분당 수내동 양지마을 통합 재건축 준비위원회는 다음 달 7일 주민 대상으로 재건축 설명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공공기여와 장수명 주택, 이주주택 제공 등 공모 과정에서 신청한 사업 계획을 주민들에게 밝히는 자리다.
이 단지는 주민들이 재건축 준비위원회에 구체적인 사업 신청 내용을 '선(先)신청, 후(後)보고'를 받기로 하고, 주민 95%의 동의를 거쳐 재준위와 신탁사인 한국토지신탁(이하 한토신)에 전권을 위임했다.
한토신 관계자는 "공모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소유자들에게도 공개하지 않았던 사업 내용을 공식적으로 알리는 자리가 될 것"이라며 "장수명 주택 공사비 논란, 이주주택 제공 등 주민들이 우려하는 부분에 관해서도 설명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양지마을은 무려 47개 구역, 5만9천가구가 신청하며 가장 뜨거운 경쟁을 벌였던 분당 신도시에서 샛별마을에 이어 2위로 선도지구에 선정됐다.
양지마을1단지 금호아파트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소유한 아파트이기도 하다.
◇ 선도지구 선정·탈락단지 '희비'…"평가기준 공개해달라" 불만도
1기 신도시 선도지구 발표가 있던 지난 27일 분당과 일산 등 선도지구 경쟁이 치열했던 곳에서는 선정단지와 탈락 단지간 희비가 엇갈리는 모습이었다.
선도지구에 선정된 단지들은 재건축 추진이 빨라질 것이라는 기대감을 나타낸 반면, 탈락 단지의 주민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분당 시범단지에서 선도지구 유력 단지로 꼽혔던 삼성한신·한양 아파트 단지의 주민들은 예상외로 탈락 통보를 받으며 혼란한 반응이었다.
시범단지는 당초 삼성한신·한양·현대·우성 등 4개 단지가 통합 재건축을 추진하다 서현역을 중심으로 2개 구역으로 쪼개져 공모에 참여했다.
이번에 선도지구 지정에 성공한 현대·우성아파트는 144가구의 소규모 빌라인 분당동 장안타운 건영3차를 통합 재건축하는 조건으로 공모에 참여했다.
성남시는 이번 선도지구 자체 평가 기준에서 반경 2km 이내 나홀로 단지나 소규모 연립 등과 묶어 통합 재건축을 할 경우 2점의 가점을 부여했다.
분당 시범단지 한양에 거주하는 한 주민은 "준비위원회에서 사업 신청 내용을 공개하지 않았는데 주민 동의율이 가장 높았음에도 공공기여나 이주주택 제공, 통합 재건축 등을 선택하지 않아 경쟁에서 밀린 게 아니냐는 뒷말이 나오고 있다"며 "준비위원회의 설명을 들어봐야겠지만 전략 부재에 대한 불만을 제기하는 주민들도 있다"고 말했다.
이번 경쟁에서 4위를 기록하며 간발의 차이로 탈락한 분당 파크타운의 한 주민도 "사업신청 내역이 사전에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에 왜 탈락했는지 준비위원회의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분당은 선도지구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서로 높은 점수를 받아내기 위해 전략 노출을 꺼린 단지들이 주민들에게 사업신청 내용을 공개하지 않은 채 '깜깜이'로 공모에 참여했다.
이 때문에 탈락에 대한 책임소재를 둘러싸고 주민 간 갈등이 커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수내동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경쟁이 치열해지니 선도지구 지정에 정치적인 배려가 작용할 것이라는 루머까지 돌기도 했다"며 "성남시가 평가기준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분당 다음으로 공모 경쟁이 치열했던 일산신도시에서도 탈락 단지를 중심으로 평가 기준에 대한 불만이 제기됐다.
일명 '다이아몬드 블록'(일산 강촌1·2단지와 백마1·2단지)에 거주하는 한 주민은 "동의율도 높고, 대형 평수가 많아 사업성도 양호할 것으로 기대했는데 이 때문에 주차대수와 세대수에서 불리하게 작용한 것 같다"며 "사업성이 높은 단지가 아니라 주차대수 같은 정량적 숫자만으로 선도지구를 지정하는 것이 맞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실제 선도지구 탈락 단지들은 재건축이 하염없이 뒤로 밀리면서 집값 하락으로 이어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컸다.
이날 탈락 단지 인근의 중개업소에는 "가격을 얼마나 낮춰야 팔리겠냐"며 매도 금액과 시기 등을 알아보려는 집주인의 실망 문의가 줄을 이었다.
분당 서현동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현재 전용 84㎡ 시세가 17억원대였는데 탈락 단지는 가격이 소폭 하락할 수 있다"며 "다만 탈락 단지도 재건축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어서 가격이 크게 떨어지진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반면 선도지구 선정 단지에는 매도 호가를 더 올리겠다는 집주인들이 줄을 이었다. 분당 선도지구는 호가를 수천만원에서 1억원 이상 올리는 곳들이 나오고 있다.
일산 강촌마을 5단지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매수 문의는 별로 없는데 선도지구로 지정됐으니 가격을 높게 받을 수 있느냐는 집주인들의 문의가 많았다"며 "전용 84㎡는 6억5천만∼6억7천만원 선에 매물이 있었는데 지금은 6억7천만∼6억8천만원은 줘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 "재건축 급행열차냐, 독이 든 성배냐"…선도지구도 추가분담금 걱정
선도지구 선정 작업이 끝났지만 후푹풍도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일단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사업 추진이 가능해졌다는 점에서 '재건축 급행열차'에 탑승한 격이지만, 당장 경쟁이 치열했던 분당은 선도지구 선정 단지들도 '승자의 저주', '독이 든 성배'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동의율 만점(95% 이상)이 많은 상황에서 선도지구에 뽑히기 위해 공공기여와 장수명주택, 이주주택 제공 등 '풀베팅'을 했다면 사업성이 떨어지고 추가분담금이 높아져 주민 갈등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감정평가업계는 단지마다 차이는 있지만 분당은 재건축후 동일 주택형을 분양받을 경우 평균 2억원 내외의 추가분담금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한다.
그러나 공공기여나 공사비 상승 등에 따라 추가분담금이 더 커질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이에 대해 건설업계의 한 관계자는 "설계 특화 등을 위해서는 기둥식 건축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장수명주택 선택으로 공사비가 크게 올라갈 일은 없다"며 "이주주택 제공도 리츠에 넘기는 방식으로 부담을 줄일 수 있어 추가분담금이 많이 늘어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12조원의 미래도시펀드를 조성해 지원하면 초기 사업비 금융이자 절감 등의 효과로 공사비를 10%가량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분당은 그나마 상황이 낫지만, 나머지 신도시는 높은 추가분담금이 사업의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하나감정평가법인 오학우 평가사는 "재건축의 사업성은 결국 시세와 일반분양가에 달려 있는데 현재 공사비 등을 고려할 때 3.3㎡당 3천500만∼4천만원은 돼야 재건축이 가능할 것"이라며 "분당 외에 평촌 정도는 괜찮겠지만 다른 신도시는 추가분담금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하나감정평가법인이 부천 중동신도시에서 선도지구 신청을 준비 중인 한 통합재건축 단지의 사업성을 분석한 결과, 공사비를 3.3㎡당 800만원으로만 잡아도 조합원당 3억∼5억원의 추가분담금이 발생했다.
전용면적 41㎡의 경우 종전 자산 가격이 2억7천만원 선인데 전용 45㎡에 입주한다고 가정할 경우 3억원의 추가분담금이 발생했다. 현재 집값보다도 높은 추가분담금을 내야 하는 것이다.
전용 84㎡도 동일 주택형 입주를 가정할 경우 종전 자산가격(5억8천500만원)에 육박하는 5억4천500만원의 추가분담금이 예상됐다.
이 때문에 분당을 제외한 나머지 신도시에서는 사업성을 높이기 위한 주민들의 민원이 거세다.
기존 용적률이 169%로 5개 신도시 중 가장 낮은 일산은 주민들이 재건축 기준 용적률(300%)이 다른 신도시보다 낮다며 상향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 공공임대 고밀 개발해 순증분 이주주택 활용…"재건축 시기 조절 관건"
또 다른 과제는 이주대책이다. 정부는 1기 신도시에서만 앞으로 매년 2만∼3만가구 정도의 이주수요가 발생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선도지구 규모가 큰 분당과 일산 가운데 인근 고양시에 공공주택지구 개발에 따른 신규 공급이 충분한 일산은 이주 문제가 크지 않겠지만 재건축 수요가 가장 많은 분당은 면밀한 이주대책이 필요할 것으로 본다.
정부는 주민 반대와 추후 재활용 문제 등을 고려해 별도의 이주단지를 조성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이 보유한 영구 임대 재건축과 신규 부지 개발 등을 통해 이주 문제를 해결할 방침이다.
5개 신도시내 영구임대 주택은 현재 13개 단지, 약 1만4천호에 이른다.
이 가운데 분당에는 야탑(목련1)·금곡(청솔6)·정자(한솔마을 7단지)·구미동(하얀6단지) 등 총 4단지, 5천867호가 있다.
정부는 이들 영구임대 단지를 재건축한 뒤 늘어나는 물량을 이주주택으로 활용할 방침이다.
현재 영구임대 단지가 저밀도인 만큼 이를 용적률 300% 수준으로 고밀 개발해 증가하는 물량을 신도시 주민의 이주주택으로 활용한 뒤 추후 분양주택이나 통합임대주택 등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영구임대 입주민들은 생활권 문제 등을 고려해 성남 등 인근 그린벨트 등 유휴부지에 공공주택을 건설하고, 임시 거처로 활용하게 하는 순환재개발 방식 등이 검토되고 있다.
이주 수요를 위한 매입임대주택 물량도 확대한다.
국토부 관계자는 "성남시가 현재 구시가지 재개발 사업을 진행 중이고, 용인 등지에도 신규 아파트 공급 물량이 있다"며 "여기에 영구 임대주택 재건축, 신규 부지 개발을 통해 이주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또 "신도시 정비사업은 앞으로 20년이 걸리는 장기사업으로 2037년까지 구역 지정이 이뤄지고, 2040년 중반까지 건축이 진행될 것"이라며 "긴 호흡으로 볼 때 중후반에 이주 수요 등이 더 몰릴 수 있어서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을 고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다음 달 광역교통계획을 포함한 신도시 이주대책을 발표한다.
KB국민은행 박원갑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정부가 이주대책을 마련한다 해도 생활권을 유지하려는 주민들로 인해 인근 지역의 전월세 가격 상승은 불가피해 보인다"라며 "철저한 이주대책 마련과 함께 이주 수요가 분산될 수 있도록 재건축 시기를 유기적으로 조절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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