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기론 또 반박…총리설엔 "현재 업무에 충실이 가장 중요"
"10월과 상황 달라졌다…美 대선 불확실성과 구조적인 수출 둔화"
(서울=연합뉴스) 민선희 기자 =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금리인하 실기론을 재차 반박하며 "8월에 (기준금리 인하를) 한 번 쉼으로써 금융안정에 도움이 됐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창용 총재는 28일 한은 금융통화위원회 이후 기자간담회에서 지난 8월 기준금리 동결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며 일각에서 '금리 인하가 늦었다'는 지적이 나오는 데 대해 "실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금통위는 이날 기준금리를 연 3.25%에서 3.00%로 0.25%포인트(p) 내리며 지난 10월 이후 두 달 연속 인하했다.
이 총재는 "인하와 동결 모두 장단점이 있기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결정이었다"며 한 달 전과 달라진 경제 여건으로 미국 대선 불확실성과 수출 둔화를 꼽았다.
그는 미국 대선 결과 불확실성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면서도 "'레드 스윕'(공화당의 상·하원 의회 장악) 결정은 예상을 빗나간 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3분기에 수출 물량이 크게 줄었는데, 일시적인 요인보다는 경쟁 심화 등 구조적 요인이 크다고 판단했다"며 "수출 불확실성과 성장 전망 조정은 새로운 정보이고, 굉장히 큰 변화"라고 언급했다.
이 총재는 "금통위원 6명 중 3명은 향후 3개월 내 연 3.00%보다 낮은 수준으로 기준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을 열어놔야 한다는 의견"이라며 "나머지 3명은 3.00%를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는 의견"이라고 설명했다.
다음은 이 총재와의 일문일답.
-- 오늘 기준금리 인하의 배경은. 지난달 금통위원 조건부 포워드가이던스는 3개월 내 기준금리를 연 3.25%에서 동결하는 게 적절하다는 의견이 많았는데, 어떤 조건이 달라졌나.
▲ 10월 이후 큰 변화가 있었다. 미국 대선 결과 불확실성을 고민하고 있었지만, 상·하원 모두 한쪽으로 가는 '레드스윕'은 예상을 넘어선 면이 있었다. 미국 대선 결과로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정책 불확실성이 확대됐다.
두 번째는, 3분기 수출 증가세가 물량 기준으로 예상보다 크게 낮아졌다. 그 원인을 검토해보니 일시적 요인보다는 수출 경쟁이 심화하는 등 구조적 요인이 크다고 판단했다.
8월 전망 당시에는 2025년 재화 수출이 2.9%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이번 예측에서 1.5%로 낮췄다. 그 결과 내년 성장률도 2.1%에서 1.9%로 하향 조정됐다. 수출에 관한 불확실성과 성장 전망 조정은 새로운 정보이자, 큰 변화였다.
-- 내년 성장률을 1.9%, 내후년 성장률을 1.8%로 제시했다. 통상 생각하는 잠재성장률 2%를 밑돈다. 성장률이 잠재성장률을 하회할 것으로 본 것인지, 잠재성장률 자체가 내려간 것인지 궁금하다.
▲ 내년 1.9% 성장률에도 불확실성이 많다. 앞으로 미국에서 신정부가 들어서면서 어떤 정책을 어떤 순서로 쓰느냐 따라서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어서, 전망치가 내년 2월 달라질 가능성도 크다. 2026년 전망도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잠재성장률을 2% 정도로 본다고 하면, 2025년과 2026년 성장률 전망치는 잠재성장률보다 조금 낮은 수준이다. 잠재성장률의 새로운 추정에 관해서는 연말이나 이렇게 나올 때 새로운 추세를 볼 수 있을 것 같다.
-- 이번 금리 인하로 내년 성장률이 얼마나 회복될 것으로 예상하나
▲ 거시 모델에 의하면 0.25%p 기준금리를 낮추면, 경제성장률이 0.07%p 높아지는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일시적인 것만 보면 안 되고, 현재 금리 하락 추세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어떤 속도로 내리느냐에 따라 그 영향은 달라질 수 있다.
-- 금리 인하로 수출 둔화를 해결할 수 있나.
▲ 금리 인하가 수출 회복을 타깃(목표)으로 한 것은 아니다. 금리를 낮추면서 내수에 영향 줄 것을 고려한 것이다. 수출은 금리보다 대외요건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수출 증가율이 내린 것의 상당 부분은 우리나라의 국제 경쟁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수출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산업정책이나 구조개혁을 통해 대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금리는 그 과정에서 전체 경제성장률을 받쳐주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 이번 금리 인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관세 위협에 따른 보험성 인하인가. 아니면, 경기 둔화 저지를 위한 본격적인 통화 완화 필요성에 따른 것인가. 중립 금리 아래로 기준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은.
▲ 기본적으로 물가 상승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이자율이 올라갔기 때문에 이자율 하락 추세에 있는 것이다. 트럼프 당선인의 관세 정책이 우리 수출과 경제에 영향을 줄 수 있지만 지금 단계에서는 불확실성이 크다. 또한 높은 금리 수준에서 정상화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중립 금리 인하로 내릴지 이야기할 시기는 아닌 것 같다. 지금은 경제 하방 압력이 커졌기 때문에 금리 인하 속도를 더 빠르게 한 것으로 이해해주시면 좋겠다.
-- 이번 금리 인하가 가계부채 증가세를 부추길 우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 기준금리를 내리면 부동산 가격이나 가계부채가 늘어나는 데 영향을 주는 게 사실이다. 기준금리를 인하하기 전인 올해 5∼6월에도 미국 금리 하락 전망에 시장금리가 떨어지면서 가계부채가 폭증했다. 다행히 8월에 금리를 동결하고 정부가 거시 안정성 정책을 쓰면서 (가계부채 폭증)의 동력을 막았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이 금리 인하 실기라지만, 그때 쉬어갔기 때문에 가계부채를 안정시키고 부동산 가격이 오르는 동력을 막은 것이다. 11월에는 가계부채 증가 폭이 5조원대에서 유지될 것 같고 12월에는 하향 추세를 나타낼 것으로 예상된다. 당분간 몇개월은 가계부채가 안정화하고 있다는 근거에 이번에 금리 정책을 했다. 다만 이 추세가 계속 유지될지, 금리를 추가로 인하할 때 가계부채와 부동산 가격이 어떻게 될지 보면서 금리 인하 시기를 조절해 나갈 것이다.
-- 기준금리를 미리 내렸어야 한다는 지적이 계속 나오는데.
▲ 기본적으로 금리 인하 속도가 틀렸다는 분들 있는데, 1년쯤 뒤에 성장률과 물가안정, 금융안정을 한꺼번에 보고 평가해주시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다만 8월을 실기라고 하시면, 저는 8월에 한 번 쉼으로써 금융안정을 상당히 안정시키는 데, 정부 정책에 도움을 줬다고 생각해서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중앙은행이 성장뿐 아니라 금융안정을 고려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저는 실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 금통위원들의 포워드 가이던스는.
▲ 저를 제외한 금통위원 여섯 분 중 세분은 3개월 내에도 3.00%로 금리가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는 견해, 나머지 세분은 3%보다 낮은 수준으로 인하할 가능성을 열어놓아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세분은 우리 경제의 중립 금리 수준을 고려할 때 추가 금리 인하 여력을 고려해서 금리 인하 속도를 점진적으로 조절할 필요가 있다는 이유였다. 나머지 세분은 대내외 경제 여건뿐 아니라 이번에 발표한 성장 전망 자체의 불확실성도 높은 만큼 향후 경기 전망 변화에 따라 금리를 추가 인하할 가능성을 열어두자는 의견이었다.
-- 유상대 부총재가 동결 소수의견을 냈다. 통상 부총재는 총재를 포함한 집행부 의견을 반영한다고 생각하는데, 이번에도 그런 상황인가. 아니면 부총재의 완전히 개별적인 판단인가.
▲ 우리 집행부는 금리 동결과 인하의 장단점을 말씀드렸고, 그 안에서 금통위원들이 본인의 의견대로 결정하신 것이다. 유상대 부총재가 본인의 의견을 제시해 결정한 것이기 때문에, (금통위가) 집행부의 의견을 바꾼 것이라고 보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부총재도 금통위원으로 금통위에 참석하는 것이기 때문에 항상 총재 의견과 같을 방향일 필요는 없다. 원칙적으로 저희가 많은 공감을 하고 있지만 반드시 같은 방향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이번에 생각이 달랐다는 것은 전혀 아니니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한다.
-- GDP 갭이 양수로 전환하는 시점을 내년 초로 전망했었는데, 내후년까지도 어려울 수 있어 보인다. 우리 경제가 장기 저성장 국면으로 접어드는 것인가.
▲ 2025년 초반이면 GDP 갭이 양수로 전환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었는데, 큰 폭은 아니겠지만 연말까지는 음수로 갈 것 같다. 내년과 내후년 성장률 전망치에 불확실성이 큰 것은 사실이지만, 잠재성장률이 빠르게 떨어지는 것도 맞다. 구조조정을 통해 장기성장률이 떨어지는 것을 막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 기준금리 인하에도 은행 가산금리 인상에 대출금리가 떨어지지 않고 있다. 경제주체들이 통화 완화 효과 체감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있는데.
▲ 1년 전과 비교하면 금리가 굉장히 많이 내려갔다. 금리 낮출 것이라는 기대가 5월 이후 커지면서 기준금리를 낮추기 전에 시장금리가 많이 떨어졌다. 0.50%p 인하 효과가 미리 반영됐다고 볼 정도였다. 그래서 금리를 실제로 처음 낮추면 오히려 오를 가능성도 있다. 또한, 가계부채를 조절하는 과정에서 가산금리가 오른 것은 금융안정 도모를 위해 치러야 할 비용이었다. 금융안정을 이루면 내년 초부터 가산금리 등은 내릴 가능성이 있으니 하루하루 보지 말고 길게 봐 달라.
-- 환율 변동성 확대에는 어떻게 대응하나
▲ 환율 변동성은 당연히 염두에 두고 통화정책을 한다. 다만 이 변동성을 관리하는 데 있어서 외환보유액이 충분하고 또 여러 가지 쓸 수 있는 수단이 있다. 국민연금과의 외환스와프도 액수를 확대해서 재연장하는 것을 논의 중이다.
-- 현재 우리 환율 수준, 변동성이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판단하나.
▲ 우리나라는 더 이상 외채를 많이 지고 있는 나라도 아니고, 내국인이 오히려 해외 투자를 많이 하는 나라다. 외환시장 구조가 많이 바뀌었다. 그래서 환율 수준보다는 (변동) 속도가 빠르거나 하면, 금융시장에 가져올 수 있는 마찰, 그로 인한 불안 요인이 있기 때문에 그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고 본다. 미국 대선 결과를 앞두고 트럼프 트레이드가 확대되면서 달러가 강세를 나타낸 탓에 원/달러 환율이 빠르게 올랐다. 그러나 일단 트럼프 트레이드가 숨 고르는 모습이고, 최근에는 원화의 절하 속도가 다른 화폐 절하 속도보다 크게 나빠진 것도 아니다. 또 우리와 수출 경쟁 관계에 있는 엔화와 위안화가 기본적으로 절하 압력을 많이 받고 있기도 하다. 이런 상황을 보면서 속도를 조절해 나갈 것이고, 그럴 의지와 수단은 충분하다.
-- 환율 수준은 아예 고려하지 않는다는 게 맞나.
▲ 천천히 오르면 변동성이 작아 괜찮으냐는 질문인데,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다. 환율 수준 자체가 물가에 영향을 줄 수도 있고, 어느 수준까지 오르면 투자자들 심리에 영향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전반적으로 다 고려하고 있고, 특정 환율 수준이 아니라 그 당시 다른 통화의 움직임 등을 다 비교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하나의 원칙으로 말씀드리기 어렵다. 통화정책을 하는 게, 과학이 아니라 아트라고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 미국 금리 인하 전망은.
▲ 미국 경제가 홀로 높은 성장률을 유지하면서 이에 따라 인플레이션이 둔화하는 속도가 예상보다 늦어지는 가운데 트럼프 당선인의 정책이 인플레를 올리는 쪽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게 기본적인 인식인 듯하다. 불확실성이 크지만, 일단 6개월 전 예상한 것보다는 미국 정책금리가 빠르게 떨어지지 않을 것으로 본다.
-- 이창용 총재 차기 총리설 보도가 있었다.
▲ 저도 (답변을) 준비해왔다. 경제 상황이 녹록지 않은 만큼 한은 총재로서 맡은바 현재 업무에 충실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ssu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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