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예전과 달리 美 대놓고 지목…대미 대응 강화 신호탄
(서울=연합뉴스) 이봉석 기자 = 미국의 중국에 대한 추가 반도체 제재 하루 만에 중국이 맞불 제재로 반격하며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 취임 전부터 양국 무역전쟁의 불꽃이 튀고 있다.
특히 중국은 이중용도 품목 수출 금지를 발표하면서 예전과 달리 미국을 대놓고 지목함으로써 한층 강도 높은 대미 대응의 신호탄을 쐈다는 평가가 나온다.
중국 상무부는 3일부터 민간·군수 이중용도 품목에 대한 미국 수출을 금지한다고 이날 발표했다.
이에 따라 원칙적으로 갈륨, 게르마늄, 안티몬 및 초경질 재료와 관련한 이중용도 품목은 미국으로 수출이 허용되지 않으며 흑연 이중용도 품목은 더 엄격한 최종 사용자·용도 검증이 이뤄진다.
미국의 중국에 대한 반도체 수출 통제를 추가로 발표한 지 하루 만에 나온 조치다.
앞서 미국 상무부 산업안보국(BIS)은 2일(현지시간) 수출통제 대상 품목에 특정 고대역폭메모리(HBM) 제품을 추가한다고 관보를 통해 밝혔다.
HBM은 여러 개의 D램을 수직으로 쌓아 올려 만든 고성능 메모리로 인공지능(AI) 가속기를 가동하는 데에 필요하다.
미 상무부는 또한 중국의 군 현대화와 연관된 기업 140곳을 수출규제 명단(Entity List)에 추가로 올렸다.
블룸버그통신은 바이든 미 행정부가 중국에 대한 반도체 제재를 강화하는 가운데 중국이 맞대응성(Tit-for-Tat) 조치를 내놨다고 짚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미중이 반도체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각각 자국의 비교우위를 최대한 활용한 점에 주목했다.
미 상무부는 HBM 제품 수출통제에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만든 제품이더라도 미국산 소프트웨어나 장비, 기술 등이 사용됐다면 수출통제를 준수해야 한다는 해외직접생산품규칙(FDPR·Foreign Direct Product Rules)을 적용했다.
우월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국제 특허 체제를 자국에 유리하게 만들어온 미국만이 사용할 수 있는 '무기'를 동원한 셈이다.
중국이 이번에 대미 수출을 금지한 품목 가운데 갈륨과 게르마늄은 반도체 재료 등으로 쓰이며 중국은 이들의 주요 공급국이자 수출국이다.
미국이 2019∼2022년 수입한 게르마늄 가운데 54%가 중국산이었고, 중국은 작년 전 세계 저순도 갈륨 생산량의 98%를 차지했다.
중국이 대미 보복 조치를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발표했다는 점도 주목된다.
지난해부터 갈륨·게르마늄 등 핵심 광물을 수출 통제 대상에 넣으며 세계 여론을 살핀 중국이 조만간 대폭 확대된 전략 물자 통제 리스트를 꺼내 들 것이라는 이야기가 중국 내에서 파다했다.
특히 중국은 작년 8월 갈륨·게르마늄을, 그해 12월 흑연을 수출 통제 대상에 넣었을 때 모두가 대미 보복 조치로 여기는데도 "특정 국가를 겨냥한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지만, 이번에 중국 상무부가 내놓은 공고문에는 미국이라는 단어가 제목 포함 6차례나 등장한다.
익명을 요구한 중국 학자는 SCMP에 "중국이 겉치레를 벗어던지고 미국을 단일 수출 금지 대상으로 지목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미중 양국의 치고받기가 지난달 중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마지막 양자회담 이후 나왔다는 점에서 양국 관계가 협력보다는 견제에 방점이 찍힐 가능성이 커졌다.
딜런 로 싱가포르 난양공대 조교수는 AFP통신에 중국의 이번 조치와 관련해 "중국이 전적으로 수동적이지 않다는 것과 미국에 타격할 몇 가지 카드가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또 트럼프 당선인이 예고한 대로 마약 유입 문제 대응을 이유로 내년 1월 20일 취임 당일 중국에 10%의 추가 관세를 부과하면 양국 무역전쟁은 한층 격화될 게 뻔하다.
중국은 이미 금융자산가 하워드 러트닉을 상무장관으로, 집권 1기 대중국 고율 관세 부과 작업을 이끈 제이미슨 그리어를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로 각각 지명하며 중국과의 일전을 예고했고, 이번 대선 기간 모든 중국산 수입품에 최대 60%의 관세를 물리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다만, 중국은 이날 수출통제 분야에서 관련 국가·지역과 대화를 강화하고 글로벌 산업 체인과 공급사슬의 안전과 안정을 공동으로 추진할 의향이 있다고 밝혀 대화 가능성을 열어놨다.
anfour@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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