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한 한국적 데이터에 어설픈 장면 연출 한계
"아직 국내 AI업계 기회가 있다는 뜻…자본력 한계·전략 부재는 장애물"
(서울=연합뉴스) 조성미 기자 = 생성형 인공지능(AI) 업계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아온 오픈AI의 '소라'(Sora)가 지난 9일(미국 현지시간) 정식 출시됐다.
원하는 동영상을 몇 마디 말만 입력하면 최대 20초 분량으로 만들어준다는 이 AI 모델은 정식 출시 전 베타 테스트 단계부터 실사 동영상과 구별이 힘들 만큼 완성도 높은 AI 동영상을 만들어 준다는 입소문이 개발자들 사이에서 퍼지며 큰 기대를 모았다.
역시 챗GPT로 생성형 AI 시대를 연 오픈AI다울 것이라는 기대였다.
서비스가 공개되자마자 빨리 써보고 싶어 하는 이용자가 몰리며 출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소라 웹사이트에는 이용 불가 안내가 떴다. 천하의 오픈AI도 트래픽 급증 대응에 허점을 노출하고 만 것이다.
오픈AI가 아동 성 착취물 생성 등을 막기 위해 엄격한 가이드라인을 적용하면서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연령 인증이 필수적인데, 며칠째 '계정 생성이 불가능하다'는 메시지만 떠 있고 사용할 수 없었다.
지난 13일 가까스로 서비스가 안정화되며 드디어 오픈AI의 동영상 생성 기능을 체험해 볼 수 있었다.
가장 궁금했던 부분은 소라가 한국적 이미지를 담은 동영상을 얼마나 그럴듯하게 만들어내느냐였다.
오픈AI가 직접 제작해 사이트 시작 화면에 공개한 샘플 동영상들을 보면 유럽의 어느 도시로 보이는 벽돌 건물 사이를 백인 여성이 걷고 있는 모습, 수영장을 갖춘 미국 부호의 저택 모습과 같은 영상들은 실제 카메라로 찍은 것인지 AI가 생성한 것인지 구분하기 힘들었다.
설원에서 개 한 마리와 백조들이 뛰노는 모습, 주먹만 한 공작이 사람 손바닥 위에 서 있는 모습 등도 실제 세상에서 있을 법하지 않은 모습이라 AI 영상이라는 점은 금방 눈치챌 수 있어도 동물의 외양이나 움직임 등 피조물 자체의 실재감은 현실과 큰 차이를 느낄 수 없었다.
비결은 이들 동영상 속 서양 문화권이나 자연에 관한 이미지 데이터는 오픈AI가 비교적 풍부하게 축적하기 쉬운 것들이라는 점에 있다.
그렇다면 한국적인 것은 어떨까.
이를 실험하기 위해 최근 가장 큰 인기를 얻었던 시대극 드라마 '연인'을 모티프로 명령어(프롬프트)를 넣었다.
소라에 "한국의 조선 시대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한 남녀 로맨스물의 오프닝 비디오를 만들어 줘"를 영어로 입력했다.
1분쯤 지나자 동영상이 제작됐다. 처음 나타난 배경을 중심으로 한 '익스트림 롱 샷'의 모습은 얼핏 보면 동양적인 이미지였지만 뜯어보면 어딘가 어색한 점이 꽤 많았다.
한옥 기둥을 이룬 나무들이 지나치게 붉어 한국이 아니라 중국 가옥들과 더 가까워 보였고 조선시대라고 했는데 2층 한옥이 대다수다.
인물들도 마찬가지다. 첫 장면에 나타난 여성 3명은 조선시대라기보다 삼국시대 사극에서 더 많이 보던 머리 모양에 옷을 입고 있고, 장면이 바뀌어 나타난 로맨스의 주인공으로 보이는 남성은 무려 단발머리다.
'신체발부 수지부모'를 금과옥조로 여겨 남성도 머리를 기르던 시대가 배경인데, 한국 문화에 무지해도 너무 무지한 소라였다.
이 밖에도 한국인으로서 지적하고 싶은 부분이 많았지만, 사실 소라는 그래도 양반인 편이었다.
소라 사이트가 열리지 않았을 때 시도해본 다른 동영상 생성 AI 모델의 경우는 더 심했으니 말이다.
똑같은 프롬프트를 입력했을 때 '하이퍼'라는 모델이 내놓은 결과물은 조선시대 인물보다 중국인에 더 가까워 보이는 머리 모양과 복식을 하고 있었는데 눈동자 움직임이 부자연스러운 점 등 동영상 완성도마저 뒤떨어졌다.
중국의 동영상 생성 AI '하이루오'를 썼을 때는 하이퍼보다는 자연스러웠다.
다만 주인공들의 의상이 어딘가 부자연스러웠고 특히 머리모양이 조선시대 기혼남녀에 가까워 로맨스물 오프닝으로 합격점을 주기 어려웠다.
해외 동영상 생성 AI를 써보고 완성도에 실소하면서 아직 국내 AI 업계에도 희망은 있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천문학적 투자금을 쏟아부으며 AI 학습과 추론에 공을 들이는 해외 빅테크들도 막상 AI 생성의 재료라고 할 수 있는 데이터가 없다면 어설픈 결과물만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는 당연한 논리를 재확인했기 때문이다.
해외에서 K콘텐츠 인기가 절정이라니 2층 한옥이나 단발머리를 한 조선 도령 같은 가짜 한국다움이 아닌 진짜 한국다움을 담은 AI 콘텐츠에 대한 수요는 꽤 클 것이다.
하지만, 한국 AI 업계가 우리 고유의 데이터를 무기로 K컬처를 제대로 재현해내는 동영상 생성 AI라는 시장을 개척해 나가기엔 자본의 한계 등 현실적 제약이 큰 것이 문제다.
국내 빅테크라 할 수 있는 네카오(네이버·카카오)마저 고전을 거듭하며 이미지 제작 AI 사업에 소극적인 분위기다.
카카오[035720]는 지난 6월 카카오톡 채널에 손쉽게 AI 프로필 이미지를 만들 수 있는 '칼로 AI 프로필' 서비스를 내년에 종료한다고 발표했고 네이버 자회사 '스노우'의 이미지 생성 AI 서비스 '라스코AI'는 오는 18일부로 종료된다.
여기에 최근 혼란스러운 정국 상황 속에서 AI 기본법 연내 통과도 불투명해졌고 AI 관련 예산이 민생 추경에 담겨 AI 업계에 투자 마중물로 두텁게 흘러올지도 미지수인 상황이다.
한 방송계 인사는 "해외 빅테크가 방송사들이 보유한 지난 수십년간 동영상을 사들이려고 제안을 보내고 있다"고 전해준 적이 있다.
국내 AI 전략이 계속 표류한다면 소라나 하이루오가 K컬처에 관한 데이터를 대량 확보해 제대로 학습하고 그럴듯한 조선시대 병자호란 로맨스물을 생성해 동남아, 중동 콘텐츠 시장에 수출할 날이 머지않았을지 모른다.
cs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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