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시상] 계엄사태와 중첩됐던 노벨위크…"어떤 한주?" 뜨거운 관심

입력 2024-12-14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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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시상] 계엄사태와 중첩됐던 노벨위크…"어떤 한주?" 뜨거운 관심
5·18 배경 한강 '소년이 온다' 부각, 첫 질문부터 '韓 비상계엄'
취재복장은 드레스, 노트북·녹음 금지 규정…벤치에서 기사송고도



(스톡홀름=연합뉴스) 정빛나 특파원 = '인간의 잔혹성과 존엄함이 극한의 형태로 동시에 존재했던 시공간을 광주라고 부를 때 광주는 더 이상 한 도시를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가 된다는 것을 나는 이 책을 쓰는 동안 알게 됐다.'
소설가 한강(54)이 지난 7일(현지시간)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자 강연'에서 소설 '소년이 온다' 집필 당시를 회고하자 강연장 곳곳에서 무언(無言)의 탄식과 감탄사가 나왔다.
주변에 앉았던 교민들은 서로 눈을 마주치거나 '와'라며 입 모양을 만들어 보였고, 그의 말소리를 따라 강연문 번역본을 유심히 읽던 외국인 청중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강이 두 달여 간 고심해 썼다는 강연문 내용이 절묘하게 작금의 현실과 중첩된다는 듯 말이다.



실제로 지난 6∼12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노벨 주간'(Nobel Week) 기간 한강은 주요 행사마다 한국의 비상계엄 사태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지난 6일 공식 기자회견에서 그가 한림원 소속 진행자로부터 받은 첫 질문은 '이번 주 벌어진 한국의 정치적 혼란 상황에 전 세계 이목이 집중됐다. 당신에겐 어떤 한 주였나'였다.
한강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소설 '소년이 온다'를 집필하기 위해 당시 계엄 상황을 공부했다면서 "2024년에 다시 계엄 상황이 전개되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 "바라건대 무력이나 강압으로 언로를 막는 방식으로 통제하는 과거의 상황으로 돌아가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고 답변했다.
시작부터 이런 분위기 탓에 자칫 우리나라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의 의미가 퇴색될지 모르겠다는 걱정이 내심 든 것도 사실이다.
일부 일간지 및 방송사 기자 중에서는 노벨상 보도 분량이 계획보다 대폭 축소됐다고 아쉬움을 토로하는 이도 있었다.
그러나 현지에서 취재하면 할수록 아이러니하게도 최근의 국내의 정치 상황과 맞물려 한강의 작품에 대한 관심이 지난 10월 노벨상 수상자 발표 당시보다 오히려 더 높아졌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려웠다.
주요 외신은 한국의 현대사 비극을 작품 소재로 다뤄온 한강의 계엄 사태 관련 발언을 앞다퉈 속보로 내보냈다.
스웨덴 공영방송 SVT는 10일 시상식 연회 생방송 중 한강의 작품을 설명하면서 1980년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소개했다.



시상식을 앞두고 현지 대표 서점에서는 스웨덴어 번역본으로 출간된 한강의 소설 4권이 전부 베스트셀러 '톱 10'에 올랐다.
스톡홀름에 집결한 한국 매체에도 덩달아 이목이 쏠렸다.
외신 기자들이 한국 취재진을 붙잡고 '역취재'를 하는가 하면, SVT의 연회 생방송 인터뷰 요청도 받았다.
SVT 진행자는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건 엄청난 일이었는데, 그가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을 때 기분이 어땠나'라고 물었다.
높은 관심을 반영하듯 연회장에서는 언론사에 할당된 전체 25석 중 가장 많은 8석이 한국 매체에 배정됐다.
보통은 노벨상 수상자들의 국적과 신청 언론사를 고려해 선정하지만, 올해는 한국 언론사에 가장 많은 초청장을 보냈다고 노벨재단 관계자는 설명했다.
연합뉴스는 이번 행사 기간 국내 언론사 중 유일하게 한강이 참석한 전 일정에 대한 공식 취재 허가를 받았다.



이 가운데에는 관례에 따라 그간 스웨덴 최대 뉴스통신사인 TT가 독점 취재했거나 현지 일부 매체에만 개방하던 비공개 일정도 있었다.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현장을 기록한다는 건 특별한 경험이었지만, 지나치게 엄격한 취재 규정 탓에 고충도 있었다.
강연·대담을 포함해 한강이 참석한 다수 현장에 노트북 반입 및 녹음 등이 금지된 게 대표적이다.
다른 행사장과 달리 프레스석이 없어 행사가 끝나자마자 인근의 카페로 달려가거나 어쩔 수 없이 야외 벤치에 앉아 기사를 쓰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시상식과 연회장에서는 복장 규정에 따라 기자들이 연미복과 이브닝드레스를 갖춰 입고 '현장 취재'를 하는 보기 드문 장면도 펼쳐졌다.
노벨재단은 취재 규정과 관련한 언론사 문의가 폭주하자 행사를 앞두고 보낸 단체 이메일에서 "다른 행사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알지만 이 시스템은 수년간 잘 작동됐다"며 "독자들에게 전할 수 있는 독특한 경험이 될 것"이라고 안내하기도 했다.
글을 쓰고 읽고, 귀 기울여 듣는 과정 자체가 '희망의 증거'라고 한 한강은 노벨 주간의 피날레 행사였던 12일 '낭독의 밤'에서 '희망'을 남기며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는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노벨상 수상을 위해) 출국해야 했으니 얼마나 끔찍(awful)했느냐'는 질문에 "끔찍할 것 같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렇게 끔찍하진 않다"라고 말했다.
"이번 일로 시민들이 보여준 진심과 용기 때문에 감동을 많이 했거든요. 그래서 이 상황이 끔찍하다고만 생각하진 않습니다. 밖에서 보는 것처럼 그렇게 절망적인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shin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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