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디언 "尹, 퇴진 마다하고 '계엄 도박' 판돈 추가…스스로 운명 결정"
NYT "尹 정치곤란 상당부분 김 여사 문제…韓정치 불확실성 여전"
WP "尹, 국가분열 과제 해결 대신 양극화…대중과 동떨어진 오판"
이코노미스트 "사회 전반에 청산시간 막 시작" 정치개혁 가능성 주목
(서울=연합뉴스) 신재우 이신영 기자 =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안이 14일 국회를 통과하자 각국 주요 언론은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이라는 '도박'으로 몰락을 자초했다는 분석을 내놨다.
외신은 특히 윤 대통령의 배우자인 김건희 여사 문제가 가장 큰 정치적 부담이었다고 지적하며 탄핵안 통과에도 당분간 한국의 정치적 불확실성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한국 대통령은 어떻게 자신의 몰락을 결정지었나'라는 제목의 해설기사에서 여당인 국민의힘이 '품위 있는 퇴진'의 기회를 제공했지만 윤 대통령이 이를 마다하고 비상계엄 도박의 판돈을 키우는 쪽을 선택해 몰락을 자초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7일 첫 번째 탄핵안 표결이 무산된 이후 국민의힘이 질서 있는 퇴진을 전제로 국정을 수습하려 했지만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합법적 통치 행위로 정당화하며 강경한 태도를 보인 것이 치명타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가디언은 이후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11%로 추락했고 보수 언론조차 등을 돌렸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사법리스크를 안고 있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 야당 인사들도 나름의 논란을 안고 있지만 윤 대통령의 운명을 결정지은 것은 자신의 행동이었다"며 "계엄 도박이 결국 야당이 오랜 기간 탄핵을 위해 찾아온 '스모킹건'(smoking gun·결정적 증거)을 제공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가디언은 윤 대통령에 대해 대선 승리 시점부터 이미 '분열을 조장하는 인물(divisive figure)'이었으며, 임기 초부터 권위주의적 경향을 보여왔다고 평하기도 했다.
대선 과정에서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워 젊은 남성 유권자의 지지를 얻었고 광복절 경축사에서는 자유를 39차례나 언급하면서도 자신에게 불리한 언론 보도에 대해서는 소송을 잇따라 제기하는 양면성을 보였다는 것이다.
계엄 선포는 단순히 '재앙적 오판'이라기 보다는 임기 초반부터 누적돼 온 문제의 정점이라고도 해석했다.
뉴욕타임스(NYT)도 윤 대통령의 임기가 끊임없는 시위와 정치적 교착상태로 점철됐으며 탄핵은 그 가운데 가장 극적인 예상 밖 전개였다고 분석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윤 대통령이 깊이 분열된 국가를 통치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해서도 과제 해결 대신 보수 기반에 호소하는 선택을 해 양극화를 심화시켰다고 분석했다.
WP는 일부 분석가들은 윤 대통령이 자신의 핵심 지지층을 넘어서는 지지기반을 확대할 수가 없었고 그럴 의지도 없었다고 진단했다.
한 분석가는 WP 인터뷰에서 "그건 정치가 아니다"며 "그는 공무원이었고 관료주의적 생활방식에 익숙하고 명확한 규칙, 지침, 법규 등을 동반하는 하향식 접근방식에서 온 사람"이라고 말했다.
WP는 윤 대통령이 계엄의 정당성을 주장한 것에 대해서도 "그가 한국 대중과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정치적 '오판'이었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을 전했다.
가디언은 각종 스캔들로 얼룩진 윤 대통령의 임기에 가장 큰 부담은 김 여사 문제였다는 분석도 내놨다. NYT도 윤 대통령의 정치적 곤란 중 상당 부분이 김 여사와 관련됐다고 지적했다.
명품 가방 수수와 국정·인사 개입 의혹 등 윤 대통령의 정치적 위기의 상당 부분이 김 여사 문제에서 촉발됐다는 것이다.
또 2022년 10월 발생한 이태원 참사에 대한 대처도 정권에 타격을 줬고, 세월호 참사와 이태원 참사를 겪은 청년층이 탄핵 촉구 시위의 주축이 됐다고도 분석했다.
외신은 탄핵안 가결에도 한국의 정치적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았다는 점에도 주목했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윤 대통령이 탄핵안 가결 소식에도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고 다짐했고 야당 일각에서는 권한대행을 맡은 한덕수 국무총리에 대한 책임론도 일고 있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NYT도 정치적 혼란과 불확실성이 끝나려면 멀었다고 전망했다.
북한의 핵 위협 증대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백악관 복귀 임박 등 안팎의 도전에 직면한 상황에 선출직이 아니어서 정치적 중량감이 없는 한 총리가 권한대행으로 한국을 이끌게 된다는 지적도 했다.
BBC도 한 총리와 권한대행 2순위인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모두 계엄 관련 수사를 받고 있다는 점을 거론했다.
가디언과 BBC는 윤 대통령이 지난 2017년 검사 시절 국정농단 수사로 박근혜 전 대통령을 끌어내리는 데 일조했지만, 반대 세력에 대한 강압적이고 비민주적 대응으로 자신도 같은 운명에 처했다고도 언급했다.
FT는 "탄핵안 통과는 권력 남용을 막고 법치주의를 유지하는데 견제와 균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준다"는 인권 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의 사이먼 헨더슨 아시아 담당 부국장의 코멘트도 전했다.
WP는 한국에서 불명예 퇴진 대통령이 드문 것은 아니지만 윤 대통령의 몰락은 그런 한국 기준에서도 특수한 사례라고 지적했다.
이 매체는 1987년 민주화 이후 거의 모든 대통령이 부패, 뇌물수수, 횡령, 권한남용과 관련된 스캔들에 휘말렸으나, 윤 대통령은 한국이 권위주의적 과거를 청산한 이후 계엄을 선포한 최초의 대통령으로서 내란 혐의를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이번 탄핵 사태로 보다 근본적인 정치 개혁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커지고 있다고 짚었다.
이 매체는 한국이 1980년대 후반 민주화할 때 5년 단임제로 제한되고 단원제 의회의 견제를 받는 강력한 권력을 지닌 대통령의 체제를 채택했다고 현 제도의 기원을 소개했다.
그러면서 견제 역할에 더 직선적인 의회 체계나 대통령 임기를 짧게 가져가는 중임제를 도입하면 책임을 높이고 권력을 분산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코노미스트는 과거 40년간 투옥되거나 탄핵당한 대통령들에서 드러나는 한국 정치의 난제를 거론하며 "한국 사회 전반에 청산의 시간이 이제 막 시작됐을 뿐"이라고 진단했다.
eshin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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