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조원대 국고채 발행은 부담…WGBI 편입으로 수급에 숨통
(서울=연합뉴스) 임은진 기자 = 올해 채권시장은 금리 인하 기대감이 지배했던 한 해였다.
이러한 기대감은 하반기 들어 미국에 이어 한국이 실제로 기준금리를 인하하면서 채권시장에 호재로 작용했다.
새해에도 상반기에는 이러한 금리 인하 흐름이 이어지겠지만 하반기에는 그 속도가 조절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200조원대 국고채 발행 계획은 채권시장에 부담으로 작용하겠지만,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으로 수급 부담은 완화돼 일부 숨통은 트일 것으로 전망된다.
◇ 올해는 내수 부문 중심으로 경기 부진에 10월부터 금리 인하
30일 금융투자업계와 연합인포맥스에 따르면 올해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정책금리를 인하하고 한국은행도 뒤이어 기준금리를 내릴 것이라는 예상이 1년 내내 채권시장을 지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상반기에 물가가 좀처럼 떨어지지 않자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계속해서 동결하기는 했다.
그러나 9월 들어 미 연준이 정책금리를 0.50%포인트 인하하는 '빅컷'을 단행하며 통화정책 방향을 전환하자 한은도 뒤이어 기준금리를 내렸다.
한은은 10월에 25bp(1bp=0.01%포인트)를 내렸고 11월에도 25bp를 내리면서 두 달 연속 기준금리를 인하했다.
이 가운데 11월 결정은 두 달 연속 금리 인하는 어렵지 않겠느냐는 시장의 전망에도 단행된 '깜짝' 결정이었다.
당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3분기에 수출 물량이 크게 줄었는데, 일시적인 요인보다는 경쟁 심화 등 구조적 요인이 크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인하하자 채권시장 내 수급은 외국인 투자자 중심으로 우호적인 흐름이 나타났다.
이 같은 추세에 회사채의 발행도 크게 늘었다.
김필규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기존에 발행한 회사채를 더 유리한 조건으로 차환하려는 수요가 크게 늘었기 때문"이라면서 "투자자 측면에서는 수익성 제고를 위해 A등급 회사채의 투자를 확대한 것도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지난 10월에 들려온 한국 국채의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 결정 소식도 채권시장에 호재로 작용했다.
외국인 투자자는 올 한해 동안 3년 만기 국채 선물을 5만7천617계약(6조4천298억원) 순매수한 것으로 집계됐다.
개인 투자자의 채권 투자도 두드러졌다.
특히 정부가 올해 6월부터 개인 투자용 국채를 발행하면서 채권시장에 대한 개인 투자자의 관심도가 커졌다.
기획재정부는 내년에는 현재의 10년 만기, 20년 만기 개인 투자용 국채에 더해 5년 만기도 신설할 방침이다.
정화영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개인의 채권 투자가 많이 증가한 것은 투자자 기반이 확대된다는 측면에서 채권시장에 긍정적인 변화"라며 "또한 국고채 및 신용 채권을 통해 조달한 자금이 정부와 기업의 경제 활동으로 직접 이어짐에 따라 경제 전반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진단했다.
아울러 금융투자세가 폐지된 점도 채권시장에 영향을 미쳤다.
금투세가 예정대로 시행됐다면 채권 매매 차익이 250만원이 넘을 경우 투자자는 세금 부담을 지어야 했다.
김지만 삼성증권 연구원은 "금투세 폐지 이후 개인들의 채권 투자에 변화가 있었다"며 "채권 순매수는 (금투세 폐지가 확실시된) 해당 주 금요일(11월 8일)부터 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 내년 상반기 기준금리 인하 사이클 지속…하반기는 속도·폭 조절
증권가는 한국은행이 내수 부진과 이에 따른 경기 둔화로 올해 하반기 시작한 기준금리 인하 사이클을 내년에도 지속할 것으로 내다봤다.
글로벌 투자은행(IB)들도 내년 한국 경제에 경고음을 내면서 성장률을 잇달아 1%대로 낮추고 있다.
이에 따라 일부 글로벌 IB는 한은이 내년에 연 2.25%까지 기준금리를 내릴 것으로 예상하기도 했다. 현재는 연 3.00%다.
여기에 내년 1월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하면 관세 공약이 현실화할 것이고, 이는 한국 경제에 부담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는 우울한 전망이 나온다.
KB자산운용은 최근 보고서에서 "2025년 국내 경제 성장률은 2%를 하회할 것으로 예상한다"며 "미국의 보호 무역 기조 등으로 수출의 성장 기여도는 하락하고, 트럼프의 무역 정책으로 한국 반도체와 전기차, 배터리 업체의 투자 불확실성 증대 및 글로벌 교역 환경 하방 압력이 증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특히 "한국은 '상저하고'의 경기 흐름을 보일 것"이라며 "2025년 하반기 경기 반등에도 불구하고 중앙은행의 완화적 통화 정책은 지속될 것이지만 완화 사이클에서 속도 조절이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시장 금리는 상반기까지 기준 금리 동향에 연동한 이후 하반기부터 횡보 혹은 소폭 반등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 같은 경기 전망에 정부는 내년에 201조3천억원 규모의 국고채를 발행할 예정이다. 올해 본예산과 비교하면 42조8천억원 더 많다.
여기에 내년도 추가경정예산(추경)이 벌써 언급되고 있다는 점도 채권시장에 부담이 될 수 있다.
통상 추경 등으로 국고채 발행이 증가하면 장기물이 상대적으로 약세를 보이며 금리가 오르게 된다. 채권 가격과 금리는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
유영상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내년 상반기까지 단기 금리는 기준 금리 인하 기대로 상승이 제한되는 반면, 장기 금리는 국채 물량 부담 및 추경 이슈 등으로 스티프닝(장·단기 금리 격차 확대) 장세가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이번 계엄 사태로 인한 경제적 상흔으로 시장은 더 빠른 금리 인하와 더 많은 추경을 기대에 반영하면서 스티프닝 장세는 보다 뚜렷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추경이 채권시장을 크게 자극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김성수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과거 추경 시 채권시장이 약세를 보인 이유는 재정 정상화가 이후 이뤄질 것이라는 예상 때문이었다"면서 "그러나 지금 경기 상황이 좋지 않은 데다 예산안 감액한 것을 추경하겠다는 것이어서 이번에는 명분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반면 채권시장의 수급 부담을 완화할 호재도 있다. 바로 WGBI 편입이다.
한국은 2025년 11월부터 1년간 점진적으로 WGBI에 편입될 예정이다.
증권가는 WGBI 편입 시 패시브 자금 유입으로 국고채 금리가 중장기적으로 0.5%포인트 안팎으로 하락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김지만 삼성증권 연구원은 "국채 발행이 늘어난다는 점은 부담"이라면서도 "WGBI 편입과 관련해 11월 이후부터 패시브 자금이 유입되고 그 이전부터 액티브 자금이 유입되면서 국채 발행 부담을 상쇄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상훈 하나증권 연구원도 "WGBI 추종 자금은 약 2조5천억달러로 추정된다"며 "총 편입 비중 2.22%를 원화로 환산하면 약 75조원의 신규 자금의 유입이 기대된다"고 추산했다.
내년 국고채 발행 확대는 신용채권(크레딧물)에도 일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신용채권은 특수채, 금융채, 회사채(자산유동화증권 및 주택저당증권 제외)를 포함한 신용 위험이 존재하는 채권을 의미한다.
김필규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신용도 높은 일부 특수채와 금융채의 경우에는 국고채와의 대체성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며 "국고채 발행 확대는 일부 신용도 높은 특수채와 은행채의 수급에 부담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트럼프 취임 이후 관세 정책 등에 따른 인플레이션 압력과 국내 정치 불안정에 따른 환율 변화 및 금융 시장 불안정성은 (신용채권 시장에) 위험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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