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공장비·병력 잇단 철수…아사드 대신 리비아 군벌과 공생 가능성
이탈리아·그리스에서 근거리…"서방 압력 직면할 수도"
(서울=연합뉴스) 고동욱 기자 = 러시아가 지중해로 이어지는 관문이자 전략적 요충지로 삼았던 시리아에서 군기지를 끝내 지키지 못하고 철수할 가능성에 점차 무게가 실리고 있다.
병력과 장비의 이동을 준비하는 정황이 거듭 포착된 데 이어, 이번에는 주요 전략물자를 북아프리카의 리비아로 옮기기 시작한 움직임이 감지됐다.
그간 밀착했던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정권이 무너지자 대신 다른 우호 세력인 리비아 칼리파 하프타르 군벌과의 공생관계를 이용해 지중해와 아프리카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겠다는 포석으로 해석되지만, 이전만큼 입지를 지킬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8일(현지시간) 러시아가 첨단 방공 시스템과 다른 정교한 무기들을 시리아에서 리비아로 철수시키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과 시리아 당국자들에 따르면 러시아의 수송기가 최근 지대공 미사일 시스템 S-400과 S-400의 레이더를 포함한 방공 장비들을 시리아에서 리비아로 옮겼다.
병력과 군용 항공기 및 무기들도 시리아에서 철수시켰다.
영국 BBC도 위성사진 분석 등을 통해 러시아 대형 수송기들이 지속적으로 시리아에서 군사자산을 반출하고 있으며, 수십 대의 군용 차량이 수송기 옆 활주로에 집결한 장면이 포착됐다고 보도했다.
시리아 북서부 흐메이밈 공군기지와 서부 타르투스 해군기지는 러시아의 핵심 전략 요충지로 꼽힌다.
흐메이밈 기지는 아프리카로 향하는 러시아 수송기가 보충 급유를 위해 들르는 기항지이고, 타르투스 기지는 러시아가 지중해로 진출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다.
러시아는 시리아 아사드 정권을 비호해 주는 대가로 이들 기지를 지중해와 아프리카로 향하는 군사적 거점으로 활용해 왔다.
러시아는 아사드 정권이 무너진 이후 반군과 이를 둘러싼 협상을 진행해 왔으나, 기지를 유지하기 쉽지 않다고 보고 철수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아사드 정권처럼 러시아의 지원을 원하는 리비아의 하프타르 군벌을 대체재로 활용하겠다는 구상이다.
리비아에서는 2011년 '아랍의 봄' 혁명 여파로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이 붕괴한 이후 동부를 장악한 하프타르의 리비아 국민군(LNA)과 유엔이 인정하는 서부 수도 트리폴리의 리비아통합정부(GNU·이전에는 GNA) 간 동서 내전이 이어지고 있다.
하프타르는 내전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수년간 러시아에 방공 시스템의 지원을 요청해 왔다.
러시아는 진출한 민간 용병단 바그너 그룹을 통해 하프타르를 지원하며 리비아에 발판을 구축했다. 바그너 그룹은 하프타르의 공군기지 등을 다른 아프리카 국가로 이동하는 허브로 이용했다.
WSJ은 지난해 러시아 고위 당국자가 하프타르 측과 리비아의 지중해 항구도시 벵가지, 투브루크 등의 장기간 정박 권한을 두고 논의를 진행했다고 전했다.
미 당국자에 따르면 러시아는 특히 투브루크의 시설을 러시아 함대에 맞춰 업그레이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런 구상이 현실화하면 러시아는 시리아를 대체할 지중해 거점을 확보할 수 있고 하프타르는 튀르키예의 지원을 받는 서부 GNU에 맞설 우군을 얻게 된다는 점에서 양측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는 면이 있다.
반면 러시아와 서방 간의 군사적 긴장도는 더 높아질 수 있다. 벵가지와 투브루크는 이탈리아나 그리스와의 거리가 400마일(약 643㎞)도 채 되지 않는다고 WSJ은 지적했다.
다만 리비아 기지가 시리아에서만큼 효과적인 전략 거점 역할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시리아 흐메이밈 기지에서 복무한 경험이 있는 전직 러시아 공군 장교 글렙 이리소프는 "리비아를 급유 기지로 삼을 경우 러시아가 수송할 수 있는 무게가 상당히 제한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프타르 역시 러시아군을 수용해서는 안 된다는 서방의 압력에 직면할 수 있다고 WSJ은 전망했다.
sncwoo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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