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제품 만든 중국, 가격경쟁력으로 국내 업체 위협 가능성
작년 '화웨이 7나노'와 유사…美 제재에도 '반도체 굴기' 자신
"EUV 없이 만들어 성능 떨어져…고사양 서버에는 진입 못 해"
(서울=연합뉴스) 강태우 기자 = 중국 메모리반도체 업체인 CXMT(창신메모리)가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DDR(더블데이터레이트)5'가 시장에 등장하면서 반도체 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간 구형인 DDR4 위주로 생산하던 중국 업체가 최신 제품을 내놓으면서 DDR5로 시장을 장악 중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자리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중국 저장장치 제조사인 '킹뱅크'와 '글로웨이'는 지난 17일 중국의 대표적인 할인 가격 비교 쇼핑 플랫폼 선머즈더마이(smzdm)를 포함한 전자상거래 사이트에 32G 용량의 DDR5 D램을 내놨다.
DDR5는 PC뿐 아니라 데이터센터에 공급되는 서버용 중앙처리장치(CPU)에도 탑재되는 차세대 D램이다.
킹뱅크, 글로웨이 등 제조사들은 메모리 업체에서 D램을 사들인 다음 조립해 완성품으로 판매한다.
두 업체의 판매 페이지에는 '국산(중국) 메모리, 거침없는 혁신으로 앞으로 나아가다'는 문구가 적혀있으며 일부 상품 설명페이지에는 '창신메모리'가 쓰여 있다.
DDR5 생산업체를 묻는 연합뉴스 질문에 한 업체는 '중국에서 제작됐다. 중국 업체의 칩을 사용했다'(manufactured from China. have Chinese IC for DDR5 6000 16G*2) 등의 답변을 내놓으며 국산임을 거듭 밝혔다.
또 국내 커뮤니티에서는 업체로부터 'CXMT에서 만든 칩을 사용했다'(This IC from CXMT who is Changxin)는 답장을 받은 소비자도 있었다.
업계에서는 그동안 DDR4에 머물렀던 중국 업체들이 시장 주류가 된 고부가 제품 DDR5 생산에도 나선 것을 두고 '긴장'하는 모습이다.
중국 업체들의 물량 공세로 DDR4 같은 범용 제품에서 나타난 가격 하락세가 DDR5로도 빠르게 번질 수 있고, 중국 정부의 막강한 지원을 등에 업고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삼성과 SK하이닉스의 점유율을 뺏어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3분기 전 세계 D램 시장 점유율(매출기준)은 삼성전자 41.1%, SK하이닉스 34.4%, 미국 마이크론 22.2%로 확고한 3강 체제를 이루고 있다.
자국 세트업체를 중심으로 범용 D램 제품을 공급하고 있는 CXMT는 낮은 매출로 순위권에 존재하지 않는다. CXMT는 지난 2016년 설립됐다.
하지만 월 생산능력에서는 CXMT가 웨이퍼 16만장, 글로벌 생산 능력의 10% 수준으로 '톱3'를 턱밑까지 따라왔다는 게 업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김용석 가천대 반도체대학 석좌교수(반도체교육원장)는 "중국에서 체제 선전을 위해 출시한 제품일 수도 있지만 제품을 선보였다는 것 자체가 향후 대량 생산까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라며 "국내 업체들에 충분히 위협이 되는 상황으로 가격 덤핑으로 치고 나오면 크게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IT홈 등 일부 현지 매체는 중국에서 DDR5 메모리가 출시된 것은 단순히 기술적인 돌파구를 마련한 것을 넘어 중국 기술의 핵심 경쟁력이 또 한 번 향상됐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했다.
또 아직 제품들이 강력한 성능을 보이지는 않더라도, 중국산 첨단 D램의 등장 자체가 중국의 메모리칩 제조 기술이 역사적인 전진을 이뤘다는 의미를 갖는다고 전했다.
이는 지난해 9월 화웨이 스마트폰 '메이트60 프로'에 탑재된 AP(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가 중국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 SMIC 7나노 공정에서 제조된 것으로 밝혀진 것과 유사한 모습이다.
당시 중국 언론들은 미국의 제재에도 최신 제품을 생산했다는 점에서 중국의 '반도체 굴기'가 확고하다고 자화자찬했다.
다만 현재 CXMT의 공식 홈페이지에는 DDR5의 양산에 성공했다는 소식은 없고, 중국 관영 언론에서도 첨단 D램 출시와 관련해 보도하진 않고 있다.
이를 두고 내년 1월 트럼프 행정부 출범에 따라 대중국 제재가 더 강화될 수 있는 만큼 '눈치 보기'에 들어간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무엇보다 CXMT의 DDR5가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의 제품과 비슷한 성능을 구현하는지 밝혀지진 않았지만, 업계에서는 국내 업체들의 제품과는 큰 성능 격차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비중은 작지만 중국이 이미 DDR5는 알게 모르게 하고 있었다. 대부분 PC·데스크톱에 집중된 저사양 제품"이라며 "극자외선(EUV) 장비도 없어 다른 장비로 여러 번 찍어내는 식으로 만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국 정부의 지원으로 가격 경쟁력이 높다는 점은 우려되지만, 고사양이 필요한 서버 쪽에는 진입을 못 하고 있어서 당장 국내 업체들에는 큰 위협이 되지 않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중국은 지난 2019년부터 이어진 미국의 대중국 EUV 장비 제재로 EUV를 활용해 반도체를 만들 수 없다. 네덜란드 ASML이 독점 생산하는 EUV는 초미세 반도체 제조를 위한 필수 장비다.
앞서 화웨이 스마트폰에 탑재된 SMIC 제조 칩도 EUV 노광장비가 아닌 DUV(심자외선) 장비를 통해 7나노 공정을 구현했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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