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현 대표 등 해임안 부결…형제 측, 이사회 장악 실패
양측, 경영권 방어·공멸 방지 위해 타협 시도할 수도
(서울=연합뉴스) 유한주 기자 = 한미약품[128940] 이사회 구도를 두고 19일 오전 진행된 임시주주총회에서 송영숙 한미약품그룹 회장 등 '4인 연합'이 경영권 우위를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
업계는 이번 임시주총 등을 기점으로 4인 연합과 그룹 지주사인 한미사이언스[008930]의 임종윤 사내이사·임종훈 대표 등 '형제 측'이 경영 상황 개선을 위해 분쟁 종식을 모색할지 여부에 주목하고 있다.
◇ 4인 연합, 한미약품 이사회 우위 유지…소액주주 표심 잡았나
이날 임시주총에서는 한미사이언스가 제안한 박재현 한미약품 대표 및 신동국 기타비상무이사(한양정밀 회장) 해임 건이 부결됐다.
이들의 해임을 전제로 하는 박준석·장영길 사내이사 선임 건도 부결됐다.
특별안건 통과 요건인 출석 주주 3분의 2 이상 찬성을 얻는 데 실패한 것이다.
이에 따라 한미약품 이사회는 기존 4인 연합 측 6명, 형제 측 4명 구도를 유지하게 됐다. 4인 연합이 경영권 우위를 점한 것이다.
그간 형제 측은 4인 연합 측 인사인 박 대표와 신 회장을 해임하고 형제 측 인사로 분류되는 박 사내이사와 장 사내이사를 한미약품 이사회에 진입시켜 경영권을 확보하려 했다.
이번 표결 결과는 앞서 국민연금과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 다수가 박 대표 등 해임안에 반대 의사를 밝히면서 어느 정도 예고됐던 일이다.
한미약품 지분 구조는 한미사이언스 41.42%, 국민연금 9.43%, 신 회장 7.72%, 한양정밀 1.42% 등이다. 소액주주 지분은 약 39%로 추산된다.
국민연금은 지난주 박 대표와 신 회장 해임에 대한 근거가 불충분하다고 보고 이들에 대한 해임 건에 반대표를 던지기로 결정했다. 박 사내이사와 장 사내이사 선임 건에 대해서도 반대하기로 했다.
세계적 의결권 자문사 ISS와 글래스루이스도 이달 초 박 대표와 신 회장 해임에 반대했고 서스틴베스트·한국 ESG 평가원 등 국내 자문사 4곳은 국내 기관투자자들에게 전달한 보고서에 해임 반대 권고를 담았다.
비록 한미사이언스가 한미약품 지분 41.42%를 보유하고 있지만, 해임안에 대한 기관 측 반대 의견이 속출하는 상황에서 임시주총 승리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것으로 점쳐졌다.
이날 임시주총 결과에는 지분 약 39%를 확보한 소액주주 측 표심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형제 측으로서는 해임안 가결을 위해 출석 주주 3분의 2(약 66.7%) 이상 찬성을 확보하려면 소액주주 표심 상당수를 끌어와야 했다.
앞서 지난달 열린 한미사이언스 임시주총에서도 4인 연합 측이 이사회 구도를 기존 4(4인 연합)대 5(형제 측)에서 6대 5로 뒤집으려고 시도했지만, 이사 수를 확대하는 정관변경의 안이 출석 주주 3분의 2의 동의를 받지 못하면서 이사회 구도가 5대 5 동수로 재편된 바 있다.
◇ 가족 간 경영권 다툼 언제까지…"타협 모색할 것" 관측도
업계는 올 초부터 이어진 창업주 가족 간 분쟁이 이번 임시주총 등을 통해 전환점을 맞을 수 있을지 여부에 주목하고 있다.
우선 상속세 납부를 위한 주식 매각으로 지분이 줄어들고 있는 형제 측이 내년 한미사이언스 정기주총에서 경영권 방어를 위한 강력한 우군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가족 간 타협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지난 10월 한미사이언스 주주명부 폐쇄 기준 4인 연합 대 형제 측 지분 구도는 33.78%대 25.62%였지만 지금은 약 35%대 23%로 벌어졌다. 가현문화재단과 임성기재단이 가세하면 4인 연합 우호 지분은 41%에 달한다.
앞서 임종윤 사내이사는 지난 13일 한미약품 임시주총 철회를 제안하며 경영권 분쟁 장기화를 막자고 주장하는 등 '화해 제스처'를 취한 바 있다.
4인 연합도 타협에 협조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날 박 대표는 임시주총이 끝나고 진행한 간담회에서 "소모적 다툼보다 회사 발전을 위한 방향성을 고민해야 한다"면서 분쟁 종식을 촉구했다.
송 회장, 임 부회장 모녀도 지분을 사준 4인 연합의 신 회장과 킬링턴 유한회사가 더 큰 이익을 위해 돌아설 가능성을 고려해 형제 측과의 재결합에 우호적으로 바뀔 가능성이 있다.
신 회장은 애초 형제 측과 손잡고 모녀 측이 추진한 OCI그룹과의 통합을 무산시킨 적이 있고, 킬링턴의 대주주 라데팡스는 임종훈 대표 소개로 한미약품그룹과 인연을 맺었다.
무엇보다 경영권 다툼이 지속될 경우 4인 연합과 형제 측이 공멸할 수 있다는 데는 양측 이견이 없어 보인다.
한미약품의 3분기 연결 기준 영업이익은 510억원으로 지난해 동기보다 11.4% 감소했고, 한미사이언스 영업이익도 같은 기간 37.2% 줄어든 224억원으로 집계됐다. 한미사이언스 주가는 지난 10월 말 5만2천원 선에서 경영권 분쟁 심화 및 탄핵 정국 관련 증시 불안정 등 여파로 최근 2만9천원 선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다만 갈등이 오래 이어진 만큼 당장 분쟁을 종식하기는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4인 연합과 형제 측은 상대측을 겨냥한 고소·고발을 진행하며 경영권 다툼을 소송전으로 확대한 상황이다.
박 대표는 이날 간담회에서 한미사이언스를 향해 "고소·고발을 취하해달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올해 분쟁이 마무리되지 않을 경우 4인 연합과 형제 측은 내년 한미사이언스 정기주총에서까지 치열한 공방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고소·고발로 극한 대립으로 치달은 송 회장 모녀와 형제 측이 화해하기 위해서는 고소 취하와 진정성 있는 사과 등이 필요할 것"이라며 "악화하는 그룹의 경영 정상화를 위해서는 장기화할 수 있는 법정 공방보다 상속세 및 경영권 문제에 대한 가족 간 합의가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hanju@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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