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워치] 1천500원짜리 달러의 공포

입력 2024-12-19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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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워치] 1천500원짜리 달러의 공포

(서울=연합뉴스) 김지훈 선임기자 = "한국에서 날아오던 생활비 중 절반이 태평양 바다에 떨어졌나"
글로벌 금융위기가 지구촌을 강타했던 2008년 말 미국 뉴욕에서 만났던 한 한국기업의 주재원이 했던 넋두리다. 금융위기 여파로 미국 달러 가치가 1,500원을 넘나들면서 한국에서 송금받던 체재비나 생활비, 학비가 급격히 줄었기 때문이다. 막연히 머릿속으로 '1달러는 1,000원 남짓'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던 이들에게 달러의 체감 가치는 50%나 뛴 셈이었다. 일부 유학생들은 학비를 송금해주시는 부모님께 면목이 없다며 휴학 후 귀국해 아르바이트 자리를 알아봐야 했다. 치솟는 비용을 감당못해 철수하는 한국기업의 주재원들도 부지기수였다. 남은 사람들도 자동차를 팔거나 달러 대출을 받는 등 살아남으려 몸부림쳤다.



19일 서울 외환시장의 원/달러 환율이 문을 열자마자 달러당 17.5원이나 치솟아 1,450원을 넘어섰다. 장중 환율이 1,450원 선을 웃돈 것은 금융위기 이듬해인 2009년 3월 16일 (장중 최고 1,488.0원)이후 15년 9개월 만에 처음이다. 그나마 매매기준율이 1,453원이고 현찰 살 때는 1,475원에 육박한 가격이 제시됐다. 급격한 쏠림현상에 대응한다는 한국은행의 이른바 '시장 안정화 조치'가 없다면 달러값이 1,500원에 육박하는 건 시간문제다. 간밤에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기준금리를 0.25%포인트(p) 내리면서 금리인하의 속도를 늦출 것임을 시사한 탓이다. 연준의 '매파적 금리인하' 영향으로 원화뿐 아니라 주식시장의 코스피도 40포인트 이상 떨어지는 등 금융시장이 충격을 받아 휘청거렸다.



국내 금융시장은 트럼프 트레이드와 비상계엄 선언 충격에 이어 미 연준의 속도 조절까지 `3중 펀치'를 맞은 양상이다. 국장(국내 주식시장)의 개미(소액 개인투자자)들에게 연말 '산타 랠리'는 언감생심이고 '국장 탈출' 또는 '물타기'만 선택지에 남았다. 환율 급등으로 국내 금융지주들은 외화유동성과 건전성 지표의 리스크가 커졌다. 여기에 외국인 투자자들의 주식매도 공세와 주요 상장기업들의 실적 악화, 얼어붙은 소비심리로 인한 내수 부진, 수출 불안 등 한국 경제를 둘러싼 악재는 차고 넘친다.

환율을 안정시키자니 외환보유고가 신경 쓰이고, 국내 경기를 살리려 금리를 내리자니 치솟는 환율이 걱정이다. 한국경제는 이러기도, 저러기도 어려워 운신의 폭이 좁은 코너로 몰리는데 우리 정치는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한 달 뒤 트럼프 2기 정부가 출범하면 시작될 글로벌 무역전쟁은 이미 선전포고까지 마친 상태다. 27년 전 바닥을 드러낸 달러 곳간의 심각성을 간과하다가 외환위기를 맞았던 경험이 생각나는 건 지나친 기우인가. 시시각각 급변하는 글로벌 경제와 금융시장의 여파는 국민과 기업의 불안감을 부추기고, 태풍이 몰려온다는 경고음은 울리는데 한국경제의 방향타를 쥐고 풍랑을 헤쳐 나갈 선장은 어디에 있나.


hoonkim@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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