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는 안전하다" 안심시킨 뒤 어두워지자마자 러시아행
NYT "대통령궁 관계자들, 몇시간 뒤에야 알고 공황 빠져"
(서울=연합뉴스) 황철환 기자 = "개인적 안전을 위해 자기 사람을 전부 희생시킨 것인가?"
시리아를 24년간 통치하다 이달 초 야반도주한 독재자 바샤르 알아사드의 옛 수하는 그가 연막작전으로 자신들을 속이고 홀로 달아나는 '배신'을 했다는 게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21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가 복수의 기밀 보고서를 입수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수니파 무장조직 하야트타흐리르알샴(HTS)을 중심으로 한 반군이 수도 다마스쿠스에 접근한 지난 7일 대통령궁에선 아사드의 대국민 연설 준비가 한창이었다.
다마스쿠스가 함락될 것이란 공포는 없었다.
수도 방위가 강화됐고, 아사드의 동생 마헤르가 이끄는 정예부대 제4 기갑사단이 투입됐다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참모진은 독재를 중단하고 야당과 권력을 나누겠다는 대통령의 메시지를 어떤 방식으로 전달해야 효과적일지를 놓고 머리를 맞댔다.
한쪽에는 카메라와 조명이 세팅됐고, 국영 방송은 연설이 나오자마자 이를 기사화할 태세를 갖췄다고 당시 상황에 밝은 소식통들은 전했다.
하지만, 해가 지고 어둠이 내리자 아사드는 은밀히 다마스쿠스에서 빠져나와 시리아 북부 러시아 군기지를 경유, 모스크바로 향했다.
마헤르 역시 비슷한 시각 다른 고위급 군당국자들을 대동한 채 사막을 넘어 이라크로 도주했다고 이라크 당국자들은 밝혔다.
군부 실세로서 독재에 반대하는 주민을 학살하고 각종 부정부패를 일삼아 온 인물인 마헤르는 이후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이달 6∼7일 작성된 군 정보 보고서들을 보면 이들은 이미 전세가 기울었다는 걸 파악하고 있었고, 다마스쿠스의 방어를 강화했다는 것도 거짓이었다고 NYT는 전했다.
대통령이 야반도주한 사실을 모른 채 계속 대기하던 대통령궁 관계자들은 자정이 지난 뒤에야 소식을 전해듣고 공황에 빠졌다고 한다.
한 관계자는 아사드가 애초 연설을 할 계획이 없었고 그저 자신이 빠져나가는 걸 알아차리기 힘들게 만들 목적으로 일거리를 던져준 것이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다마스쿠스 알말리키 지역에 있는 아사드의 호화 관저에서도 8일 새벽 "신께서 그를 저주하시길. 그가 우릴 버렸다"는 외침이 들렸다고 인근 주민들은 전했다.
시내 곳곳의 군 정보 시설 역시 혼란에 빠졌다. 일부는 기밀 자료를 불태우느라 여념이 없었지만, 상당수는 곧 밀어닥칠 반군을 피해 사복으로 갈아입고 달아나는 모습을 보였다.
한편, NYT가 입수한 시리아 군정보기관 기밀 보고서에 따르면 아사드는 국외도주 직전 러시아와 이란, 이라크에 군사적 도움을 요청했으나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반군이 시리아 제2 도시 알레포를 기습점령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나서는 아사드의 전화를 받지 않는 등 냉랭한 태도를 보여온 것으로 전해졌다.
hwangch@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