獨, '지속가능성 공시' 연기 요청…경쟁력 보고서도 "규제 줄여야"
(브뤼셀=연합뉴스) 정빛나 특파원 = 미국과 중국에 뒤처진 경쟁력을 끌어올리겠다고 공언한 유럽연합(EU)이 각종 기업 규제 시행을 앞두고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21일(현지시간) EU옵서버에 따르면 독일 정부 주요 장관들은 최근 EU 집행위원회에 보낸 서한에서 '기업 지속가능성 보고 지침'(이하 CSRD) 시행을 2년 연기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들은 "기업들의 지나친 보고 부담을 없애는 것이 우리의 우선순위"라면서 CSRD 보고 항목은 물론 적용 대상 기업의 범위도 축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CSRD는 역내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비(非)EU 기업을 포함한 모든 대기업, 상장 중소기업이 환경·사회적 영향 활동에 대한 정기적인 보고서를 발행하도록 하는 규정이다. '지속가능성 공시'로도 불린다.
이 지침에 따라 적용 대상 기업은 내년 1월에 2024년 회계연도에 관한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대상 기업의 약 30%가 독일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U의 기업 규제가 '과도하다'는 지적이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를 지낸 마리오 드라기 전 이탈리아 총리는 지난 9월 집행위 의뢰로 발표한 'EU의 미래 경쟁력'에 관한 자문 보고서에서 CSRD와 EU의 별도 기업 규제인 공급망 실사 지침을 "규제 부담의 주된 원인"이라고 지목했다.
공급망 실사 지침은 대기업 공급망 전반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강제노동이나 삼림벌채 등 인권·환경 관련 부정적 영향을 예방·해소하고, 관련 정보를 공개할 의무를 부여하는 법으로 2027년부터 순차 시행된다.
이와 관련한 외국 기업의 반응도 부정적이다.
카타르의 알 카비 에너지장관은 22일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과 인터뷰에서 공급망 실사 지침 위반으로 EU 회원국들이 과징금을 부과하면 유럽에 가스 수출을 중단하겠다고 경고했다고 폴리티코는 전했다.
공급망 실사 지침에 따르면 회원국은 국내법 제정 시 과징금 상한을 전 세계 연 매출액의 최저 5% 이상으로 설정해야 한다.
이달 초 출범한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의 2기 행정부는 잇단 지적에 '규제 완화가 아닌 단순화'에 집중하겠다는 입장이다.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자신의 두 번째 5년 임기 동안 기업이 부담하는 행정절차를 25% 감축하겠다고 공언했다.
내년 초 지속가능성 책임 강화와 관련된 법안 전반의 관료주의적 절차를 줄일 수 있는 새 법안도 발의할 예정이다.
유럽 각지에서 우파가 득세하고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의 자국 우선주의 정책이 본격화하는 상황과 맞물려 EU가 친기업 성향 정책에 더 초점을 맞출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그러나 그간 기업의 ESG(환경·사회적 책무·지배구조) 책임을 강조하던 EU의 '노선 변경'을 비판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이제와 변경을 추진하면 기업의 혼란만 가중될 가능성도 있다.
기업의 책임 강화를 촉구하는 체코 비정부기구(NGO) 프랭크 볼드는 규제 완화 혹은 연기가 EU의 신뢰성을 훼손할 것이라고 지적했다고 EU옵서버는 전했다.
이 단체는 CSRD와 관련, 일부 기업의 경우 본격 시행 전 자발적으로 이미 법 기준을 따르고 있으며 덴마크, 스웨덴, 스페인에서는 기업의 지속가능성 공시와 관련한 EU 기준보다 더 강화된 국내법을 마련하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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