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트폴리오 재편 속도, 기술·원가 경쟁력 강화도…"기술이 희망"
고객 중심 가치·구성원간 소통 강조…제주항공 참사 애도도
(서울=연합뉴스) 장하나 기자 = 국내 주요 그룹 총수와 최고경영자(CEO)들은 을사년(乙巳年) 새해를 맞아 잇따라 신년사를 내고 위기 극복을 위한 본원적인 경쟁력 확보를 강조했다.
글로벌 경기 침체와 지정학적 긴장에 더해 도널드 트럼프 2기 집권 등으로 경영 불확실성이 커지는 가운데 발 빠른 위기 대응으로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문이 이어졌다. 고객 중심의 사고와 구성원간 소통 강화 등도 강조됐다.
2일 재계에 따르면 올해 재계 신년사는 대부분 전방위적인 위기를 극복하고 이를 기회로 전환하기 위해 경쟁력을 확보하고 혁신을 꾀해야 한다는 데 방점이 찍혔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금 우리에게는 어려움을 알면서도 행동으로 옮기는 용기, '지난이행'(知難而行)의 마음가짐이 필요하다"며 미래 도약을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으로 본원적 경쟁력과 인공지능(AI) 사업 경쟁력 강화를 강조했다.
장인화 포스코그룹 회장도 "현재의 난관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새로운 도약을 할 수 있어야 한다"며 "원가의 구조적 혁신을 통해 지속 가능한 경쟁력을 만들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시장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올 한 해 더욱 강도 높은 쇄신이 필요하다"며 "이른 시일 내 핵심사업 경쟁력을 회복해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고 지속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올해 경영 환경은 지난해에 이어 자국 보호무역 강화와 통상 정책 기조 변화, 내수 침체 장기화 등으로 말 그대로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 직면할 것으로 진단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우리가 당면한 과제를 해결하지 않고 외면하면서 침묵하는 태도가 가장 큰 위기의 경고음"이라며 "우호적이고 희망적인 상황이라도 한순간에 바뀔 수 있다는 위기의식과 절박함으로 어떠한 조건에도 흔들리지 않을 한화만의 실력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본준 LX그룹 회장은 "미리 먼저 생각하고 일찍 앞서 준비하면 지금의 위기도 기회가 될 수 있다"며 "경쟁 우위에 설 수 있는 사업을 육성해 근원적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한종희 삼성전자 디바이스경험(DX) 부문장(대표이사 부회장)과 전영현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장(부회장)도 공동 명의 신년사를 내고 초격차 기술 리더십을 바탕으로 재도약의 기틀을 다지고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해 나가자고 강조했다.
한 부회장과 전 부회장은 "지금은 AI 기술의 변곡점을 맞이해 기존 성공 방식을 초월한 과감한 혁신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새로운 제품과 사업, 혁신적인 사업모델을 조기에 발굴하고 미래 기술과 인재에 대한 투자를 과감하게 추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예상보다 길어진 전기차 캐즘(Chasm·일시적 수요 정체)으로 지난해 부진을 겪은 배터리 3사 수장들은 포트폴리오 다각화, 원가 경쟁력 확보 등을 강조했다.
김동명 LG에너지솔루션 사장은 "시장 변화에 맞춰 투자의 효율성을 높이고, 조직 체계와 비용 구조를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며 올해 추진할 핵심 과제로 연구개발(R&D) 경쟁력 제고, 제품·품질 경쟁 우위 확보, 구조적 원가 경쟁력 강화, 미래 기술·사업 모델 혁신 등을 제시했다.
유정준 SK온 대표이사 부회장과 이석희 대표이사 사장은 "제품 포트폴리오 확장을 가속화해 빠르게 변화하는 시장·고객의 요구에 효과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며 "전 조직이 원가 경쟁력 확보를 위한 목표를 정하고 서로 합심해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고 당부했다.
삼성SDI 새 수장을 맡은 최주선 사장은 "이럴 때일수록 더욱더 근본으로 돌아가 끊임없이 혁신하고 도전하는 '기술력' 중심의 회사로 만들어야 한다"며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기술을 선제적으로 발굴해 슈퍼사이클을 준비하고 올라타야 한다"고 강조했다.
위기 극복에 나선 석유화학업계도 생존을 위한 근본적인 변화를 거듭 강조했다.
신학철 LG화학 부회장은 "모든 비용은 과거 관행에서 벗어나 제로 베이스에서 면밀히 분석하자"며 "비용뿐 아니라 모든 투자를 미래 3C(고객·변화·도전)를 고려해 제로 베이스에서 재검토하고 투자 우선순위 정교화를 통해 자원을 효율적으로 투입하자"고 말했다.
이영준 롯데케미칼 사장도 "속도감 있는 사업구조 전환 추진과 본원적 사업경쟁력 확보를 위한 혁신 활동으로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변화를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고객을 최우선으로 하는 가치도 거듭 강조됐다.
신동빈 회장은 "고객은 우리의 존재 기반으로, 그룹의 미래를 책임질 사업은 고객의 요구를 충족하는 사업이어야 한다"며 "사업 전반을 고객 관점에서 검토하고 고객에게 제공할 수 있는 새로운 가치를 끊임없이 모색하자"고 말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도 "본업은 오늘의 신세계그룹을 있게 한 성장 엔진이며 그 엔진의 핵심 연료는 1등 고객"이라면서 위기의 파고를 넘어설 핵심 무기로 '1등 고객을 만족시키는 본업 경쟁력'을 제시했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고객 경험은 기업이 만족으로 보답할 고객의 채권과 같은 것"이라면서 기업간거래(B2B)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고객 중심 경영을 강조했다.
앞서 구광모 LG그룹 회장도 지난달 19일 보낸 신년사 영상에서 "도전과 변화의 DNA로 미래 고객에게 꼭 필요하고 기대를 뛰어넘는 가치를 드릴 것"이라며 "그동안 우리가 다져온 고객을 향한 마음과 혁신의 기반 위에 LG 없이는 상상할 수 없는 미래를 세우자"고 당부했다.
구성원간 소통과 화합도 당부했다.
조현준 효성 회장은 "아무리 심각한 위기 속에서도 치밀하게 준비한 사람에게는 반드시 기회가 온다. 온 힘을 모아 지금의 위기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며 위기 극복의 해법으로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SK온은 맹자의 '천시불여지리, 지리불여인화(天時不如地利, 地利不如人和)'(하늘이 주는 운은 지리적으로 유리한 것만 못하고, 지리적인 유리함은 사람의 화합만 못하다는 뜻)를 인용하기도 했다.
새해를 앞두고 발생한 제주항공 참사에 대한 애도 메시지도 담겼다.
최태원 회장은 신년사에서 "고인들의 명복을 빌며 유족분들께도 깊은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고 애도했다.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맡고 있는 최 회장은 전날 대한상의 임원 등과 서울시청 본관 앞에 마련된 합동 분향소를 방문해 조의를 표하고 "안전한 사회가 되도록 경제계가 힘을 보태겠다"고 다짐했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은 "항공업계 종사자로서 안전이란 단어가 얼마나 무거운 책임감을 주는지 절실히 느꼈다"며 "절대적 안전은 모든 업무의 근간이 된다"고 강조했다.
삼성전자와 삼성전기 등은 국가애도기간을 고려해 당초 이날 예정했던 시무식을 취소했다. 일부 기업은 신년사 배포를 취소하거나 국가애도기간 이후로 미루기도 했다.
hanajj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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