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SJ 보도…조사 감독관 "알려지지 않았던 다수 개인·법인 확인"
1990년대 조사 때 은폐 정황도…2026년 최종 결과 발표 예정
(서울=연합뉴스) 고동욱 기자 = 스위스 은행 크레디트스위스(CS)의 과거 독일 나치 정권 관련 계좌 은폐 의혹 조사에서 그간 공개되지 않았던 관련자들의 고객 정보가 발견됐다고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WSJ에 따르면 이 의혹을 조사하는 닐 바로프스키 감독관은 지난달 미국 상원에 보낸 서한에서 조사팀이 '미국 블랙리스트'라고 표시된 채 은닉돼 있던 고객 파일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미국 블랙리스트'란 나치 혹은 추축국과 거래하거나 그들에게 자금을 제공한 사람들을 가리킨다고 WSJ은 설명했다.
조사팀은 취리히의 은행 기록 보관소에서 3천600상자에 이르는 방대한 장부와 마이크로필름, 컴퓨터 하드디스크 등을 찾아내 은행이 '고객 파악' 형식으로 보관해 둔 자료를 분석했다.
그 결과 나치를 지원한 미국 내 블랙리스트 고객의 자료를 확보했고, 기존에 알려진 나치 관련자 99명의 이름으로 예비 검색을 한 결과 13명의 이름이 일치했다.
바로프스키 감독관은 서한에서 "조사를 통해 나치의 잔학 행위와 연관됐으나 CS와의 관계는 알려지지 않았거나 일부만 알려졌던 다수의 개인과 법인을 밝혀냈다"고 전했다.
바로프스키 감독관은 아울러 은행의 전직 직원 등을 인터뷰하는 과정에서 1990년대 조사 당시 은행이 나치 계좌를 일부 은폐한 정황도 포착했다고 밝혔다.
외부 조사원들에게는 나치 친위대 장교들의 계좌 등 핵심 내용을 공유하지 않거나, 요청한 정보만 제공하는 식으로 CS의 역할을 은폐했다는 것이다.
앞서 CS는 2003년 나치 학살 희생자 유족 등을 위한 기금 설립에 합의했으나, 이후로도 은닉 자금이 남아 있다는 논란이 이어졌다.
2020년 미국 유대인 인권단체인 시몬비젠탈센터가 CS의 전신인 스위스은행이 1만2천여명의 나치 관련자 계좌를 보유하고 있었다고 주장하면서 의혹이 재점화했다.
당시 미국 상원 예산위원회는 보고서를 통해 최소 99명의 나치 관련자 계좌가 CS에 있었으며, 일부는 2020년까지도 폐쇄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에 CS는 바로프스키 감독관을 선임해 조사를 맡겼으나, 은행과의 갈등 끝에 해고되는 등 힘겨루기가 이어졌다.
CS가 2023년 3월 재무적 위기에 빠져 경쟁 은행인 UBS에 인수되자, 바로프스키 감독관은 같은 해 12월 복직해 조사 작업을 재개했다.
그는 2026년 초까지 최종 조사 결과를 발표할 계획이다.
UBS는 "나치와 연계된 계좌를 완전히 처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CS를 인수한 이후 철저하고 포괄적인 조사가 진행되도록 하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밝혔다.
sncwoo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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