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솟는 물가·철권 통치에 지친 민심 폭발 직전…곳곳에서 시위
절박한 이란, 트럼프에 대화 신호 보냈지만 '협상의 창' 넓지않아
(서울=연합뉴스) 임지우 기자 = 중동 내 패권을 추구하는 이란이 지난해 극심한 경제난과 무력 분쟁을 겪으며 전례없는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미국의 매파 정권을 맞이하게 된다.
굶주린 민심의 불만이 극에 달하고 중동 내 대리세력도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는 상황에서 강력한 제재뿐만 아니라 군사력 행사 가능성까지 내비치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를 다시 만난 터라 심각한 위기에 몰렸다는 진단이 나온다.
4일(현지시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란이 내부적으로는 사회적 불안이 심화하고 외부에선 동맹들이 속속 군사적으로 무너지고 있는 상황에서 올해에는 트럼프 행정부와 대결까지 벌여야 하는 힘든 한 해를 맞게 됐다고 지적했다.
취임을 보름여 앞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중동 내에서 이란의 무력 도발을 억제하기 위해 이란에 대한 더욱 강력한 제재를 예고하고 있다.
트럼프 차기 행정부는 이를 위해 경제 제재뿐 아니라 이란 내 핵시설을 선제적으로 타격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10년 넘게 이어진 서방의 강한 제재에도 살아남은 이란이지만 최근 이란의 국내외 상황으로는 이러한 강화된 압박을 버티기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서방의 제재가 강화된 2012년 이후 이란의 경제는 악화일로를 걸으며 그간 이란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절반에 가까운 45%가 감소했다.
최근 수년간 천연가스 등 에너지 자원 관리에도 실패하면서 현재 이란은 학교와 정부 시설 등이 수시로 정전되는 등 만성적인 전력난에도 시달리고 있다.
화폐 가치는 지난 1년 사이에만 40%가 급락하며 2024년 마지막 날 역대 최저를 기록했으며, 물가는 급등해 지난해 11월 기준 연간 물가상승률은 37%를 기록했다.
이란 정부는 그간 강한 철권통치로 반정부 여론을 진압해왔지만, 국민의 3분의 1이 빈곤층으로 전락한 최악의 경제난에 민심도 폭발하고 있다.
상인들은 높은 물가에 항의하는 시위에 나섰으며 퇴직 공무원 등 연금 수령자들은 연금을 제대로 지급받지 못해 의회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이란의 최대 외화 수입원인 석유 부문 노동자들도 임금을 제대로 지급받지 못해 3개월 넘게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이러한 불만 여론은 점점 이란 정부의 전쟁 도발 행위나 히잡 착용 강요 등의 정책 등으로도 향하면서 이란 정권의 핵심 위험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고 WSJ은 짚었다.
이런 가운데 이란이 주도하는 비공식 동맹인 '저항의 축' 세력들의 강한 군사력마저 지난해 크게 타격을 입었다.
팔레스타인 내 이란의 핵심 동맹인 하마스는 1년 넘게 이어진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풍비박산이 났으며 이란의 가장 강한 동맹 세력인 레바논의 헤즈볼라도 지난해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지도부 상당수를 잃었다.
이러한 상황은 이란이 앞으로 제재와 핵무기 개발 등을 두고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과 벌일 '줄다리기 대결'에서 택할 수 있는 선택의 폭을 대폭 좁혔다고 WSJ은 짚었다.
궁지에 몰린 이란이 협상력을 얻기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핵무기 개발 속도를 높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는 가운데 이란은 우선 트럼프 차기 행정부와 대화 의지를 밝힌 상황이다.
압바스 아락치 이란 외무장관은 트럼프 당선인 취임을 보름여 앞둔 지난 3일 중국 언론과 인터뷰에서 "서방 국가들이 새로운 협정을 끌어낼 수 있다면 우리는 즉시 핵 프로그램에 관한 건설적인 협상을 시작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과거 트럼프 당선인이 이란 기관이 자신을 암살하려 했다고 주장하는 등 오랜 악감정이 있는 상황에서 양측의 협상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영국의 싱크탱크 채텀하우스의 중동 및 북아프리카 국장 사남 바킬은 이란 지도부가 현재 "아마 수년 만에 가장 심각한 도전을 겪게 될 것"이라면서 이란 정부와 트럼프 당선인의 협상 가능성에 대해서는 "이란 정부가 강한 협상 의지를 보이고 동시에 트럼프 당선인이 자신이 팔고 싶은 것이 생기는 모멘텀을 갖게 되는 좁은 기회의 창이 있다"고 진단했다.
wisefoo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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