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각국 '트럼프 정부 실세' 머스크에 반발했지만 EU는 무대응
獨선거 목전 늑장대응 지적도…트럼프는 "머스크, 아주 똑똑해" 두둔
(브뤼셀=연합뉴스) 정빛나 특파원 = 유럽연합(EU)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가 일론 머스크의 유럽 '정치 간섭'에 침묵을 지키고 있다.
파울라 핀노 EU 집행위 수석대변인은 7일(현지시간) 정례 브리핑에서 '유럽 정상들이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EU의 정치적 목소리는 실종됐다'는 지적에 "현재로서는 논쟁을 부추기지 않겠다는 게 우리의 정치적 선택"이라고 답했다.
집행위는 머스크가 내달 치러지는 독일 총선을 앞두고 오는 9일 독일 극우 정당 독일대안당(AfD)의 총리 후보와 대담을 엑스(X·옛 트위터)에서 생중계하는 것 역시 불법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대신 2023년 12월부터 머스크 소유의 엑스를 상대로 진행 중인 디지털서비스법(DSA) 위반 조사의 한 사례로 포함할지 '신중히' 평가하겠다고만 말했다.
DSA는 온라인 허위 정보와 유해·불법 상품 또는 콘텐츠 확산을 막고 미성년자 보호 등을 목적으로 도입된 법이다. 위반 시 전 세계 연간 매출 가운데 최대 6%가 과징금으로 부과될 수 있다.
토마 레니에 기술주권 담당 대변인은 이날 '왜 1년 넘도록 DSA 조사에 진척이 없느냐'는 질의에 "(위반을 판단할) 증거를 수집해야 하며 집행위는 가능한 한 신속히 작업 중"이라고만 말했다.
전날 정례브리핑에서도 머스크의 언행에 대한 EU 대응 계획을 묻는 말이 집중됐지만 원론적 답변만 되풀이했다.
프랑스, 독일 등 EU 회원국은 물론 영국, 노르웨이, 스페인 등 유럽 각국 정상이 일제히 머스크를 비판한 것과 대조적이다.
EU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머스크를 향해 가짜뉴스를 퍼뜨리지 말라고 공개 경고하는 등 내내 각을 세웠다.
달라진 집행위의 소극적 태도를 두고 머스크가 곧 출범하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최고 실세가 된 점을 의식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된다.
집행위가 머스크나 엑스를 상대로 EU의 소셜미디어(SNS) 규제를 들이대 과징금을 부과한다면 이는 곧 미 행정부와 갈등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현재 유럽 현지에서는 내달 23일 독일 총선을 앞두고 유럽에 대한 머스크의 정치 편향적 행보가 유권자 표심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집행위는 독일 규제당국과 함께 오는 24일 엑스를 포함한 주요 SNS 플랫폼을 초청해 선거 과정에서 야기될 수 있는 위험성을 논의하기 위한 원탁회의를 열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회의'인 데다 선거를 불과 3주 앞두고 열려 늑장 대응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행정부 수반 격인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의 부재가 EU가 침묵하는 요인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심각한 폐렴을 앓고 있으며 15일까지 외부 일정을 전면 취소했다.
집행위원장 유고 시엔 의전 서열 2위인 테레사 리베라 청정·공정·경쟁 수석부위원장을 직무대행으로 지정할 수 있다.
그러나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폐렴 투병 중에도 일상적 업무를 하고 있어 현재로선 직무대행을 지정하지 않았다고 핀노 수석대변인은 전했다.
EU의 무대응속 트럼프 당선인은 머스크를 오히려 두둔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이날 자신의 저택이 있는 플로리다주 마러라고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머스크 행보가 적절하냐는 질문에 "머스크가 (유럽의) 보수 성향 인사들을 좋아하는 것을 묻는 것이냐. 나는 그들을 모른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일론이 아주 잘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아주 똑똑한 사람"이라고 덧붙였다.
shin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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