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54조·SK하이닉스 5.6조 현지투자…현대차 생산 30만대→50만대
삼성GPA·SK아메리카스 등 활동 강화…현대차 성 김 前주한미국대사 영입
(서울=연합뉴스) 김동규 김보경 김아람 기자 = 강력한 보호무역주의 정책을 예고한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에 맞춰 한국 기업들의 생존 전략 짜기도 분주하다.
한국 기업들은 보편관세 등 무역장벽을 우회하기 위해 현지 생산을 확대하고, 미국 현지 기업과의 협력을 확대하는 등 트럼프 시대 높아지는 무역 파고를 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아울러 트럼프 시대 핵심 역할을 할 주요 인사들과 접촉면을 넓히며 미국 정가를 겨냥한 대관 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정부 역시 최대 수출 시장 중 하나인 미국으로의 수출 확대와 미국 현지에서 한국 기업들의 투자·활동에 대한 미국 정부의 지원이 중단되지 않도록 외교·정책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 현지 투자로 관세장벽 우회…삼성·현대차 등 美생산 확대
트럼프 2기 출범을 앞두고 국내 주요 기업들은 미국 현지 대규모 투자를 통해 돌파구를 마련하고 있다.
현지 생산을 늘려 보편관세 등 새로운 관세 장벽에 대응하며 철저한 사업가 정신으로 무장한 트럼프 대통령 집권 2기를 무탈하게 넘기겠다는 전략이다.
한국의 수출 1위 품목이자 대미 수출 3위 품목인 반도체는 현재 미국 직접 투자에 가장 큰 투자를 단행하는 업계로 꼽힌다.
삼성전자는 미국 현지 반도체 생산 거점 건설에 370억달러(약 54조원) 이상을, SK하이닉스는 38억7천만달러(약 5조6천억원을)를 각각 투자할 예정이다.
삼성전자는 내년 가동 개시를 목표로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을 건설하며, SK하이닉스는 미국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피엣에 반도체 패키징 생산기지를 지어 2028년 양산에 들어갈 계획이다.
미국 정부가 두 회사에 지급하는 투자 보조금의 근거인 반도체법(칩스법)을 두고 트럼프 당선인이 폐기 가능성을 거론한 점은 변수로 꼽히지만, 일방적으로 법을 폐기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 속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트럼프 2기 정책 동향을 예의주시하면서 투자 계획을 흔들림 없이 추진하고 있다.
배터리 업계는 세계적인 전기차 캐즘(Chasm·일시적 수요 정체)에 따른 미국 내 수요 둔화를 고려해 투자 속도를 조절하면서도 북미에 배터리 생산 거점을 확대하겠다는 기조는 유지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한국 배터리 3사는 주요 고객사가 있는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며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활발히 가동하고 신설을 추진하고 있다.
각 업체는 GM, 포드, 스텔란티스 등 현지 완성차 업체와 합작법인(JV)을 설립하거나 단독으로 공장을 지어 현지 생산 거점을 늘려가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이 배터리 업계에 시설 투자 보조금을 지급하는 근거인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폐기를 공언했으나 미국 지역경제를 살찌우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현지 투자에 대한 지원을 거두는 극단적인 정책 변화는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업계는 기대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의 경우 하이브리드차(HEV) 생산 능력과 현지 생산 규모를 늘릴 계획이다.
현대차그룹은 미국 조지아주에 있는 전기차 공장인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에 하이브리드차 생산시설을 추가로 구축해 연간 생산 규모를 기존 30만대에서 50만대로 끌어올릴 방침이다.
당장 올해 하반기부터 이 같은 혼류 생산이 가능해지면 현대차그룹의 미국 내 생산 비중은 70%까지 뛰어오르게 된다.
미국 현지 진출과 함께 미국 기업과 협업을 통해 사업 리스크를 줄이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작년 9월 미국 대표 자동차기업인 제너럴모터스(GM)와 포괄적 협력 업무협약을 맺고 신차 및 엔진 공동 개발·생산, 전기·수소 등 미래 에너지 기술 개발, 배터리 원재료·철강 등 공급망 관리 등 분야에서 협력하기로 했다.
아울러 인공지능(AI) 칩 선두 주자인 엔비디아와 모빌리티 혁신을 위한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하는 등 미국 기업과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현지 일자리 창출을 중시하는 트럼프 2기 대응을 위해 현지 추가 투자를 확대하는 방안 역시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 '미국통' 등용해 네트워킹·대관 강화…親트럼프 인사 접촉면 넓히기
국내 주요 기업들은 트럼프 2기 행정부와 접촉면을 넓히려는 물밑 작업도 활발히 펼치고 있다.
삼성전자의 글로벌 대관 조직인 글로벌퍼블릭어페어스(GPA)는 미국 현지 정부 및 관계자들을 만나 협의를 꾸준히 지속해오고 있다.
특히 현재 가장 큰 관심사이자 과제인 반도체 보조금 등과 관련해 현지 관계자들과 꾸준히 접촉하며 보조금 철회가 없도록 조율을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LG그룹도 글로벌 대응 총괄조직인 글로벌전략개발원과 워싱턴사무소를 중심으로 미국 현지 대외협력 강화에 힘쓰고 있다.
SK그룹 역시 북미 대관 콘트롤타워인 'SK 아메리카스'를 바탕으로 트럼프 2기 행정부 인사들 공략에 나서고 있다.
기업들은 미국 네트워크가 풍부한 인사를 요직에 등용하는 방식으로도 정책 불확실성에 대응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미국에 고객사가 많은 파운드리 사업을 이끌 DS부문 파운드리사업부장으로 DS부문 미주 총괄을 지내며 현지 네트워크를 쌓은 한진만 사장을 낙점했다.
LG화학은 외교부 북미국장을 지낸 북미 외교 전문가인 고윤주 전 제주특별자치도 국제관계대사를 최고지속가능전략책임자(CSSO) 전무로 발탁했다.
현대차그룹 역시 대미 대응을 중심으로 대외협력 조직을 강화하면서 작년 초 해외 대관 조직인 'GPO'(Global Policy Office)를 사업부 급으로 격상시켰다.
현대차그룹은 트럼프 전 대통령 당선 직후에는 미국 정부 기관과 연방 상·하원 의원실, 주요 싱크탱크 등에 현대차의 대미 투자를 강조한 홍보용 책자를 배포했고, 올해 1월에는 성 김 전 주한 미국대사를 그룹 대외협력 사장으로 영입해 대관 능력을 강화했다.
정부도 트럼프 2기 대응을 위해 전 부처 역량을 동원해 대응에 나서고 있다.
정부는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외교부 장관급이 정례 개최하는 대외관계 장관 간담회를 통해 트럼프 2기 정부 출범에 따른 주요 경제 현안을 점검하고, 지난 8일 회의에서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수출 전략회의를 직접 주재하면서 다음달 비상수출대책을 수립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트럼프 당선인의 보편관세 공약 등 통상 압박에 대비해 시나리오별 대응 방안을 준비하고, 특히 대미 무역수지 관리를 위해 트럼프 1기 때처럼 천연가스, 원유 등 미국산 에너지 수입 확대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수출 주무 부처인 산업부 안덕근 장관은 지난 6∼10일 미국을 방문해 연방 상·하원에서 통상·세제 업무를 관할하는 의원들과 한국 기업들이 투자한 지역의 의원들을 만나 양국 산업·경제 현안을 협의했다.
안 장관은 이 자리에서 IRA과 반도체법 등 바이든 행정부의 산업 정책을 믿고 미국에 투자한 한국 기업들의 투자가 원활히 진행되도록 미국 정부의 지원이 차기 트럼프 행정부에서도 지속돼야 한다는 입장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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