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에 유화 신호 보내며 러시아에는 핵프로그램 지원 요청
전문가 "이란, 핵개발에 가까이" 진단
(서울=연합뉴스) 이신영 기자 = 이란이 서방과 핵 협상을 앞둔 와중에 한층 러시아와 비밀리에 밀착하는 물밑 행보에 나섰다.
그간 트럼프 2기 출범과 맞물려 미국과 대화에 열린 입장을 시사해온 이란은 대러 군사 교류를 통해 또다른 셈법을 손바닥 안에 올려두게 됐다.
영국 일간 더타임스는 12일(현지시간)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의 선임고문인 알리 라리자니가 비밀리에 모스크바를 찾아 러시아 고위 관료들과 접촉해왔다고 보도했다.
라리자니는 하메네이와 매우 가까운 인물이자 핵 협상가로 알려져 있다.
그런 그가 비밀리에 러시아를 찾은 것은 양국 관계가 더 깊어지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더타임스는 짚었다.
서방 정보통에 따르면 라리자니는 러시아에 핵 프로그램과 방공시스템에 대한 추가 지원을 요청한 것으로 전해진다.
문제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필요한 미사일과 드론을 이란에 의존하고 있어 이런 요청을 거절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서 핵확산 방지를 담당했던 미국 스팀슨 센터의 윌리엄 알버크 박사는 "이란이 우크라이나전에 쓰일 수천 대의 드론을 보내기 시작했을 무렵부터 러시아는 핵확산이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란 전문가들이 짧은 시간이라도 러시아의 핵 생산시설을 방문한다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고도 내다봤다.
알버크 박사는 "이란은 더 작고 복잡한, 아마도 메가톤급 폭탄을 만드는 방법을 배우거나 포탄 안에 장착할 수 있는 핵 장치 제조를 배울 수도 있다"고 언급했다.
이란은 또 지난해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파괴된 방공시스템의 재건도 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의 S-300 방공망은 러시아가 공급한 것이다.
이란은 공군 작전 능력 상향을 위해 최신 버전의 수호이 Su-35 전투기도 원하고 있으며 이미 계약이 이뤄진 것으로 전해진다.
라리자니가 이처럼 군사 및 국방 협력 강화를 위한 러시아 방문을 비밀리에 진행한 것은 서방의 추가 제재를 피하기 위한 차원으로 풀이된다.
이란은 극심한 경제난으로 서방의 제재 완화가 절실한 상황이다.
오는 13일 영국·프랑스·독일 등 유럽 3개국과 핵 프로그램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회담을 갖기로 한 것도 트럼프 당선인이 취임하기 전에 제재 완화를 모색하기 위한 차원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란은 비밀리에 러시아와 물밑 접촉을 강화하면서 트럼프 2기를 앞두고 또다른 국제 정세 고차 방정식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게 됐다.
이란은 지난 2015년 서방과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를 타결하고 핵 계획을 제한해왔지만 2018년 미국이 핵 합의에서 탈퇴한 이후 우라늄 농축 농도를 높여왔다.
최근에는 우라늄 농축 농도를 '준무기급'인 60%까지 올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핵무기 생산을 위해서는 순도 90%의 농축 우라늄이 필요하지만 이미 60%까지 농축에 성공한 만큼 90%에 도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있다.
알버크 박사는 "20%에서 100%로 더 농축하기는 쉬운 일이라며 "그들(이란)은 폭탄 제조에 아주 가까이 와있다"고 진단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이란이 무기급 우라늄을 충분히 만드는데 며칠, 혹은 몇주밖에 걸리지 않을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란에 대한 최대 압박을 공언한 트럼프 당선인의 백악관 복귀가 예고돼있다는 점도 이란의 이런 행보에 영향을 줬을 수 있다.
트럼프 당선인 인수팀은 출범 직후 1기 때 시행했던 이란에 대한 '최대 압박' 정책을 복원할 것이라고 밝혔고, 일각에서는 이란 핵시설에 대한 예방적 공습이 검토됐다는 보도도 나온 바 있다.
eshin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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