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종우 선임기자 = 2003년 터진 '신용카드 대란 사태'는 수백만 명을 '신용불량'이란 늪에 빠뜨렸다. 정부가 소비 진작과 경기 부양을 위해 신용카드 규제를 완화하고, 카드사들이 무분별한 카드 발급·대출에 나서면서 발생한 '참사'였다. 이 사태 이후 경제성장률은 급락했고, 소비는 꽁꽁 얼어붙었다. 결국 정부는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낮추는 등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가까스로 급한 불을 끌 수 있었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작년 1∼11월 소매판매액 지수는 전년도 같은 기간보다 2.1% 감소했다. 이는 2003년(-3.1%) 이후 같은 기간 기준으로 21년 만에 최대 폭이다. 2023년에도 1.6% 감소한 점을 감안하면 소비 부진이 장기화하는 추세다. 특히 이번 소비절벽은 자동차·가전 등 내구재와 의복 등 준내구재, 음식료품 등 비내구재를 가리지 않고 전방위적이다. 내구재·준내구재·비내구재가 2년 연속 감소한 것은 1995년 관련 통계가 집계된 이후 처음이다. 1998년 외환위기 당시에도 모든 상품군 소비가 마이너스를 기록했지만, 이듬해 반등한 바 있다.
문제는 이번 통계에 12·3 비상계엄 사태의 여파가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계엄 사태와 탄핵 정국 등 정치적 혼란 현상이 가중되면서 12월 이후 내수는 1∼11월보다 악화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향후 경제 전반에 미치는 파장이 가시화되면 소상공인 등 취약 계층이 체감하는 바닥 경기는 더욱 내려앉았을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연말부터 소비 침체는 눈에 띄게 나타난 바 있다. 지난해 12월 넷째 주(21∼27일) 신용카드 사용액은 전년 대비 1.5% 감소했다. 탄핵 정국이 본격화된 12월 둘째 주(7∼13일) 신용카드 사용액은 3.1% 감소하며 소비 위축이 뚜렷해졌다.
소상공인들의 한숨은 곡소리로 변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최근 발표한 '최근 폐업 사업자 특징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에 98만6천명의 사업자가 문을 닫았다. 이는 통계 집계가 시작된 2006년 이후 가장 많은 수치라고 한다. 폐업률 증가의 가장 큰 원인은 무엇보다도 극심한 내수 부진에 있다. 특히 소매업, 음식업, 기타 서비스업 등에서 폐업자 수가 많았고, 이들 업종에서 폐업률은 여전히 높은 수치를 보인다. 아직 공식 집계가 나오지 않았지만, 지난해 폐업 사업자 수가 전년보다 많았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올해 국내 경제 상황은 암울한 전망 일색이다. 고환율·고금리·고물가 등 '3고 현상' 지속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관세 폭탄' 예고 등으로 '퍼펙트 스톰'(다발적 악재에 따른 경제적 위기)에 휩싸인 형국이다. 고환율이 소비자물가를 자극해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상승)'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이에 정부가 민생경제 회복과 내수 진작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안을 편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치권도 경제 활성화 방안을 통해 소비심리 회복과 내수 강화에 적극 나서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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