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맹 부담 확대 강조…미군태세 재점검에 주한미군도 예외아닐 듯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 언급…비핵화 목표 견지할지 지켜봐야
(워싱턴=연합뉴스) 조준형 특파원 =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 지명자는 14일(현지시간) 인사청문회를 통해 엿새 후 출범하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 한반도 정책을 예고했다.
일단 헤그세스 지명자는 '동맹 중시' 기조를 확인함으로써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동맹을 경시할 것이라는 일각의 우려를 불식하려 하는 모습을 보였다.
헤그세스 지명자는 의원들의 사전 질의에 대한 서면 답변을 통해 "미국은 세계에서 강력한 동맹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으며, 동맹 및 파트너들과의 상호 이익에 입각한 공동 방어는 상대를 압도하는 전략적 우위를 창출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헤그세스 지명자는 동맹의 '부담 확대'라는 트럼프 당선인의 입장을 충실히 대변했다.
그는 "동맹과 파트너의 국방비 지출 증대와 부담 공유는 우리의 관계가 일방적이지 않게끔 하는 데 중요하다"며 "우리의 동맹과 파트너들은 강력하고 건강한 동맹은 일방적(일방적 혜택 제공)일 수 없음을 미국이 계속 강조할 것임을 이해한다"고 밝혔다.
현재 국내총생산(GDP)의 2%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의 국방비 지출 가이드라인을 5%로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주한미군 주둔비용 중 한국의 부담액)으로 현재의 9배 수준인 연간 100억 달러(약 14조6천억원)를 거론한 트럼프 당선인의 기조를 적극적으로 집행할 것임을 예고한 것으로 읽혔다.
동맹의 부담 확대와 관련해 또 하나 주목되는 헤그세스 지명자의 강조점은 '중국 억제'다.
그는 이날 모두 발언에서 "(미국의) 억지력을 재확립하겠다"며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공산당이 이끄는 중국의 공세를 억지하기 위해 파트너 및 동맹국과 함께 일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에 대한 억지력 강화와 관련해 한국과 일본 등 동맹국의 역할 확대를 요구할 수 있음을 내포한 발언일 수 있었다.
그는 또 장관이 되면 인도·태평양 지역을 포함해 전 세계에 배치된 미군의 태세를 재점검하겠다며 현재 2만8천500여명 수준인 주한미군까지도 조정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낳았다.
트럼프 당선인이 이미 집권 1기 때 주한미군 철수를 사석에서 거론했던 사실이 알려진 터라 한국 정부로서는 헤그세스 지명자의 발언의 함의와 추후 이어질 행동을 예의주시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재점검의 결과가 꼭 주한미군 철수나 감축 쪽으로 나오리라는 법은 없다.
'대(對)중국 억지력' 측면에서 주한미군의 잠재적 역할이 큰 만큼 철수나 감축은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중국 견제 강화 기조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다만 미측이 대중국 억지력 강화를 이유로 현재 육군 중심(약 70%)인 주한미군을 해·공군력 강화 방향으로 재편할 경우 주한미군 규모 조정 문제도 논의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 주한미군 규모와, 동맹국인 한국의 기여 증대, 대중국 억지력 등은 트럼프 취임 이후 한미 협상 과정에서 하나의 패키지를 구성하며 동시에 테이블 위에 올라올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주한미군의 현상 유지를 원한다면 주둔비용을 한국이 더 부담하고, 중국 견제를 위한 한국의 역할을 확대하라는 트럼프 행정부의 요구에 직면할 수 있기에 치밀한 대응 논리와 전략 수립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와 함께 헤그세스 지명자가 북한의 "핵보유국"(nuclear power) 지위를 거론하면서, 북한의 핵 역량 등이 "한반도, 인도·태평양 지역과 세계의 안정에 위협이 된다"고 밝힌 것은 기존 미국 외교의 '문법'에 비춰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물론 '핵보유국'은 여태까지 총 6차례 핵실험을 단행하고, 핵탄두 최소 수십기를 보유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는 북한의 현 상황을 그대로 직시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었다. 미국, 중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등 국제법적으로 핵무기 개발 및 보유가 허용되는 5개국을 칭하는 '핵무기 국가'(nuclear weapon state)와는 차원이 다른 표현이었다.
그러나 핵확산금지조약(NPT)이라는 국제 규범을 위반해가며 불법적으로 핵무기를 개발해온 북한에 대해 그동안 미국 정부 당국자들은 '핵보유국'과 같은 표현을 쓰기를 자제해왔다는 점은 간과할 수 없다.
그런 표현을 자제한 것은 북한의 핵보유를 기정사실로 인정하고 용인하는 듯한 뉘앙스를 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정설이었다.
따라서 헤그세스의 '핵보유국' 발언은 단순한 현실 인정을 넘어 북한 비핵화 목표 견지 또는 의지와도 연결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다시 말해 '비핵화'를 전면 거부하며 헌법에까지 '핵보유국 지위'를 명기한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칭하는 것은 대북 협상 전략 측면에서 논쟁적일 수 있어 보인다.
공인된 5대 핵보유국 외에 '비공인 핵보유국'으로 불리는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 등에 대해 실질적으로 '비핵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에서 많지 않다는 점에서다.
물론 트럼프 당선인과 그 주변 인사들이 트럼프 1기 행정부를 포함해 미국 역대 정부가 견지해온 북한 비핵화 원칙을 포기했음을 보여주는 언급이나 정황은 지금까지 나온 적이 없다.
하지만 만약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의 '비공인 핵보유국' 지위를 현실로 받아들인 채, 비핵화보다는 핵군축 또는 핵동결 협상을 현실적인 선택지로 삼을 경우 북한 비핵화는 '장기적 목표'로 간주되거나, 이론상으로만 존재하는 '원칙'이 되리라는 우려도 제기될 수 있을 전망이다.
jh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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