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지구 휴전 배경은…하마스 초토화 속 '트럼프 등판' 효과

입력 2025-01-16 06:00  

가자지구 휴전 배경은…하마스 초토화 속 '트럼프 등판' 효과


(이스탄불=연합뉴스) 김동호 특파원 = 이스라엘군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15일(현지시간) 가자지구 전쟁에서 휴전에 전격 합의한 배경을 놓고 관심이 집중된다.
일단은 이스라엘이 15개월 전 하마스의 기습 공격에 허를 찔리는 굴욕을 당한 뒤 대대적인 보복에 나선 끝에 하마스 지도부가 사실상 궤멸되며 동력이 상당 부분 사라졌다는 점이 자리잡은 것으로 분석된다.
여기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작년 11월 미 대선에서 승리한 것을 전후로 분쟁 종식을 촉구하면서 그와 끈끈한 사이인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결단하는 데에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가 나온다.


◇ 하마스, 이스라엘 보복 공세에 궤멸…가자는 인도적 위기
2023년 10월 7일 하마스는 이스라엘 남부를 덮쳐 1천200여명을 살해하고 251명을 납치해 끌고 갔다. 공격 징후를 미리 감지하지 못한 이스라엘 당국을 향해 비난 여론이 비등했다.
위기에 빠진 네타냐후 내각은 2014년 이후 9년만에 가자지구에 지상군을 투입하는 고강도 군사작전으로 반전을 모색했다. 피란민이 몰린 병원과 학교 건물은 하마스의 은신처가 됐다는 이유로 폭격의 집중 표적이 됐다.
이스라엘은 이란에 머물던 하마스 수장 이스마일 하니예를 암살하고, 얼마 뒤 그의 후임인 야히야 신와르도 가자지구에서 살해했다. 이스라엘군은 전쟁 동안 가자지구에서만 무장대원 약 1만7천명을 '제거'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스라엘은 하마스 토벌에 만족하지 않고 그 배후에 있는 이란을 위시한 '저항의 축' 무장세력을 노렸다. 레바논 남부의 친이란 무장정파 헤즈볼라를 견제하는 공습을 이어가다가 작년 9월에는 18년만에 레바논에서 지상작전을 개시했다.
이 과정에서 이스라엘과 이란은 초유의 본토 직접 공습을 주고받았고, 후티가 하마스를 편들겠다며 홍해에서 배들을 공격하자 이스라엘이 예멘의 후티 근거지를 때리는 등 전선이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됐다.
외부와 고립된 가자지구는 가용 의료시설이 크게 줄고 25년만에 소아마비 발병 사례가 확인되는 등 공중보건 위기에 처했다. 하마스가 통치하는 가자지구 보건부는 전쟁 발발 후 이날까지 팔레스타인 주민 4만6천707명이 숨졌다고 집계했다.


◇ '전범' 오명 아랑곳않던 네타냐후, 트럼프 등판에 급브레이크
하마스는 이미 수개월 전부터 전력이 극도로 약화했다는 평가 속에 협상에 나서겠다는 뜻을 보였지만, 이스라엘이 한동안 강경 태세를 고수하며 논의가 공전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연립정부 각료의 이탈로 인한 이스라엘 전시내각 해체, 국제형사재판소(ICC)의 전쟁범죄 혐의 체포영장 발부 등 악재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에게 제동을 건 가장 큰 요소는 트럼프 당선인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선거를 거치며 우크라이나와 가자지구에서 벌어지는 두개의 전쟁 모두 종식돼야 한다는 강력한 신호를 보냈고, 국제사회 분쟁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뜻을 시사했다.
조 바이든 현 미국 대통령이 전쟁 기간 내내 휴전을 촉구해온 것에 더해 이스라엘을 향한 압박이 가중된 셈이다.
이후 작년 11월 27일 이스라엘과 헤즈볼라의 임시 휴전 돌입,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교전 중단 합의가 이어지게 됐다.
트럼프 당선인의 집권 1기 때 '브로맨스'를 과시했던 네타냐후 총리 입장에서 차기 미국 행정부와 관계를 돈독히 하기 위해 외교정책 성과를 '선물'로 안겨준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란이 구축해놓은 중동 '시아파 벨트'의 상당 부분이 무력화한 탓에 이란의 역량이 줄어든 것도 휴전 성사에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된다.
이스라엘을 코앞에서 견제해주던 최대 대리세력인 레바논의 헤즈볼라는 조직 수장 하산 나스랄라를 이스라엘 손에 잃은 뒤 수세에 몰린 끝에 휴전했다.
여기에 이란이 후원하던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이 지난달 반군의 예상못한 공세에 맥없이 무너졌다. 이스라엘을 포위하듯 했던 이란의 '손발'이 모두 쓸모없게 된 것이다.


◇ 중동정세 안정 미지수…美-이란 핵 논의가 변수
어렵사리 가자지구에 포성이 멎었지만 휴전이 오래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오는 19일 발효할 전망인 양측의 휴전안대로면 첫 단계에 규정된 교전 중단 기간은 6주 뿐이다. 42일을 넘겨 휴전을 이어가려면 1단계 내에 2단계, 3단계에 대한 양측 합의가 이뤄져야만 한다.
이스라엘 총리실은 이날 합의 발표 직후 "아직 일부 조항은 해결되지 않은 상태"라며 "세부사항이 확정되기를 바란다"라고 언급했다.
하마스와 이견이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라는 취지다.
휴전 연장과 관련해서는 가자지구와 이집트 경계의 완충지대 '필라델피 회랑'에 이스라엘군에 주둔하는 문제가 쟁점 중 하나로 떠오를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이날 협상 막판 하마스가 필라델피 회랑과 관련해 새로운 요구를 내놓았으나 이스라엘이 이를 거절하며 부딪혔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현재로서는 트럼프 행정부의 대외 정책이 어떻게 구체화하는지가 최대 변수다.
특히 트럼프 당선인이 집권 1기 때처럼 이란에 대한 '최대 압박' 전략을 꺼내든다면 중동 정세가 다시금 요동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최근 트럼프 참모진 일각에서 이란 핵개발을 저지하기 위한 핵시설을 예방적으로 공습하는 방안을 검토한다는 관측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란의 '숙적' 이스라엘도 이같은 분위기를 타고 과감한 군사행동에 나설 여지가 있고, 이렇게 되면 가자지구 휴전으로 잠시 잦아들었던 중동의 긴장감이 다시 팽팽해질 수 밖에 없다.
다만 이란 정부가 2018년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파기했던 이란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을 부활시켜 경제 제재를 완화하려는 방침이라는 점에서 미국과 대화를 계기로 중동 정세에 새로운 전기가 마련될 수도 있다.
dk@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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