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 여파로 경기 부양 시급하지만…금리 인하 시 환율 급등 우려
美 연준 기조 변화도 고려…2월 인하 여부 주목
(서울=연합뉴스) 한지훈 기자 =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16일 경기 하방 리스크에도 기준금리를 동결한 것은 환율, 물가 등의 변수에 무게를 싣고 고려한 결과로 분석된다.
금통위원들은 정국 불안으로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고 인플레이션 반등 조짐도 나타난 상황에서 금융위기 이후 첫 3연속 금리 인하에 부담을 느낀 분위기다.
앞으로 미국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불확실성에도 대응해야 하는 만큼 다음 달 올해 두 번째 기준금리 결정 전까지 나라 안팎 사정을 조금 더 지켜보기로 결정한 것으로 풀이된다.
◇ 경기 대응 측면에선 금리 인하 필요 목소리
저성장 우려는 그동안 시장 일각의 기준금리 인하 관측을 뒷받침해왔다.
비상계엄 사태가 탄핵 정국으로 이어졌고, 극심한 정치 혼란에 따른 충격이 금융시장뿐 아니라 소비, 투자, 고용 등 실물경제에도 전방위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했다.
경제 심리가 얼어붙으면서 연말 특수가 실종되고 내수 부진의 골이 한층 깊어졌다. 주력 산업인 반도체 등의 경쟁력이 악화하면서 수출 둔화 전망도 뚜렷해졌다.
이에 따라 잠재 수준(2%)을 밑도는 성장 전망이 대세를 이루게 됐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해외 주요 투자은행(IB) 8곳이 제시한 올해 한국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는 지난해 11월 말 평균 1.8%에서 12월 말 1.7%로 하락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2일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2.2%에서 1.8%로 낮췄고, 국내 민간 연구기관인 국가미래연구원은 IB 평균보다 낮은 1.67%를 제시하기도 했다.
한은은 지난해 11월 28일 1.9%를 예상했으나, 다음 달 수정 경제전망에서 전망치 하향 조정이 유력해 보인다.
국내외 조사기관은 대부분 올해 민간 소비가 침체하고 건설 투자가 감소하는 가운데 수출도 소폭 증가하는 데 그칠 것으로 전망한다.
확장 재정을 통한 경기 부양도 당장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올해 정부 예산안은 상당 폭 감액된 채로 국회를 통과했고, 연초 추가경정예산안 편성 논의마저 여야 대치로 교착에 빠져 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달 18일 긴축 예산에 따른 성장 영향과 관련, "올해 경제성장률을 0.06%포인트(p)가량 줄일 것"이라고 언급했다.
한은은 국회에 경기 둔화에 대응하는 정도의 추경 편성이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가능성은 작다는 입장을 전하기도 했지만, 여야 합의에 따른 추경은 난항을 겪고 있다.
◇ 환율 1,500원 육박 우려…인플레 반등 신호도 부담
이런 가운데 환율 상승이 금리 인하를 가로막은 것으로 풀이된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해 11월 평균 1,393.38원에서 12월 1,434.42원으로 3% 가까이 뛰었다. 이날 개장가는 1,455.0원으로, 지난달 평균치보다 20원 이상 높았다.
지난달 3일 주간 거래를 1,402.9원으로 마친 원/달러 환율은 당일 밤 윤석열 대통령 계엄 선포 직후 야간 거래에서 장중 1,442.0원까지 급등했다.
이어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금리 인하 속도 조절 메시지가 나온 같은 달 19일 1,451.9원까지 추가로 상승했다.
환율은 헌법재판관 임명 문제로 정치적 불확실성이 가중된 지난달 27일엔 장중 1,486.7원까지 치솟았고, 30일 1,472.5원으로 한 해 거래를 마감했다.
환율은 올해 들어서도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국민연금 환 헤지 등의 안전판을 마련했지만, 지난 13일 미국 고용지표 호조로 달러가 강세를 보이면서 1,470원 중반대까지 다시 치솟았다.
이런 상황에서 한은이 섣불리 금리를 낮출 경우 한미 금리 격차 확대로 외국인 투자가 빠지면서 외환시장에서 달러 수요가 높아지고 환율이 1,500원을 넘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고환율에 따른 물가 부담도 암초로 떠올랐다. 물가안정은 통화완화의 첫 번째 조건이나 마찬가지인데, 환율이 오르면서 수입물가가 덩달아 뛰었다.
한은 수출입물가지수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수입물가지수(원화 기준 잠정치·2020년 수준 100)는 142.14로, 11월보다 2.4% 올랐다.
수입물가는 지난해 10월부터 석 달 연속 상승했다. 12월 상승률은 4월(4.4%) 이후 8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치기도 했다. 이는 향후 소비자물가 급반등을 예고하는 신호로 해석된다.
한은 관계자는 "수입물가는 수입 소비재 가격 외에도 국내에서 사용되는 수입재 조달 비용을 높여서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에 상승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 美 연준 기조·트럼프 경제정책도 향후 변수
미국 기준금리 인하 속도가 애초 예상보다 느려진 점도 한은 결정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미 연준은 경제 상황이 견조하고 인플레이션 둔화가 기대에 못 미친 점 등을 고려해 지난달부터 금리 인하를 서두르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거듭 발신했다.
한은 뉴욕사무소는 최근 보고서에서 글로벌 IB 10곳 중 2곳이 미 연준의 올해 금리인하 횟수를 '0회'로 전망했다고 전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지난해 12월 연내 2회 인하를 예상했다가 올해 1월 들어 0회로 변경했다. 도이치뱅크는 지난해 12월에 이어 올해 1월에도 연내 동결 전망을 유지했다.
일각에서는 연준의 금리 인상 전망까지 제기됐다.
지난달 미국 비농업 부문 고용지표가 시장 예상치를 크게 웃돌고, 서비스업 가격지수가 2년여 만에 최고치를 경신하자 통화 긴축론이 대두한 것이다.
연준이 일단 이달 말 FOMC에서 금리를 동결할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한 가운데 한은은 당분간 각종 경제 지표를 더 확인하면서 '유연한' 결정에 무게를 둘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오는 20일 취임 직후 발표할 관세 등 경제 정책도 한은이 주시하는 핵심 변수 중 하나다.
앞서 한은은 지난달 25일 발표한 올해 통화신용정책 운영 방향 보고서에서 "기준금리를 경제 상황 변화에 맞춰 추가로 인하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그 속도를 두고는 "대내외 위험 요인들의 전개 양상과 그에 따른 물가와 성장 흐름, 금융안정 상황의 변화, 그리고 정책 변수 간 상충 관계를 면밀히 점검하면서 유연하게 결정하겠다"고 언급했다.
다음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는 2월 25일이다.
hanj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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