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총재 "작년 4분기 0.2% 밑돌수도"…연간 2%대 성장도 불투명
올해 성장률도 1.9%서 하향조정 임박…2월 금리 인하 불가피
(서울=연합뉴스) 신호경 한지훈 민선희 기자 = 지난해 12월 3일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로 시작된 정국 혼란이 한국 경제에 예상보다 더 큰 충격을 주고 있다는 분석이 한국은행에서 나왔다.
작년과 올해 경제 성장률 전망치의 상당 폭 수정이 불가피한 상황으로, 높은 원/달러 환율 수준 등을 고려해 한은이 이달 미룬 기준금리 인하도 경기 부양 차원에서 2월에는 단행될 가능성이 매우 커졌다.
◇ "계엄으로 12월 이후 소비·건설 크게 부진"
이창용 한은 총재는 16일 금융통화위원회(이하 금통위) 통화정책방향회의 직후 간담회에서 "계엄 이후 여러 데이터를 보니까, 소비나 건설 경기 등 내수 지표가 예상보다 더 크게 떨어졌다"며 "작년 4분기 성장률(전분기대비)이 0.2%나 더 밑으로 내려갈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달 계엄 직후에는 경제 심리 악화로 4분기 성장률이 0.5%에서 0.4%로, 작년 연간 성장률이 2.2%에서 2.1%로 하락할 수 있다고 봤지만, 계엄 이후 정치 혼란의 경제적 타격이 실제로는 더 커 4분기 성장률이 전망보다 0.2%p 이상 더 낮아질 수 있다는 게 이 총재의 설명이다.
지난해 1분기 1.3% '깜짝 성장' 이후 2분기 역성장(-0.2%)과 3분기 미미한 반등(0.1%)에 4분기 부진까지 더해지면 작년 성장률이 2%대를 유지할 수 있을지조차 불투명한 것으로 추정된다.
작년뿐 아니라 올해 역시 연초부터 이어지는 탄핵 정국 등 정치 불확실성에 소비 위축을 포함해 성장 동력 훼손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금통위는 이날 의결문에서 "예상하지 못한 정치적 리스크(위험) 확대로 성장의 하방 위험과 환율 변동성이 커졌다"며 "올해 성장률이 작년 11월 전망치(1.9%)를 하회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 환율 불안에 모순적 금리 동결…6명 금통위원 모두 "3개월내 인하 가능"
이처럼 지난해와 올해 전체 성장률을 모두 낮춰야 할 정도로 계엄·탄핵 사태의 경제 타격이 작지 않은데도, 한은 금통위는 이날 기준금리 동결이라는 다소 모순적 결정을 내렸다.
이 총재는 이런 지적에 대해 "금통위원들 모두가 경기만 보면 금리를 내리는 게 당연하다는 의견이었다"며 "하지만 금리는 경기에만 영향을 주는 게 아니라 여러 변수에 영향을 주는데, 이번에는 환율 등 대외 불균형과 불확실성에 방점을 뒀다. 현재 원/달러 환율은 우리나라 경제 펀더멘탈(기초체력)이나 미국과 금리 격차로 설명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높은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현재 계엄 등 정치적 충격 탓에 환율이 지나치게 뛴 상태라 금리를 못 낮췄을 뿐, 환율만 다소 안정되면 언제라도 경기 부양 차원에서 금리를 낮출 수 있다는 얘기다.
이 총재도 이날 직접 "성장 하방 위험이 커져 금리 인하 필요성이 커졌다"고 밝혔고, 총재 자신을 제외한 6명의 금통위원이 모두 "3개월 내 금리 인하 가능성을 열어두자"는 의견이라고 전했다.
따라서 시장과 경제전문가들은 한은의 2월 기준금리 인하를 거의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박정우 노무라증권 이코노미스트는 금통위 회의 전에도 "현재 기준금리가 시장금리 등과 비교해 여전히 다소 통화 긴축적 수준인 만큼, 한은은 2월에 성장률 전망치 하향 조정과 함께 추가 인하에 나설 것"이라며 "올해 3분기까지 분기별로 한 차례씩, 모두 세 차례에 걸쳐 연 2.25%까지 내릴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조영무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도 "2월에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정책, 1월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 결과와 연방준비제도(연준·Fed) 입장, 국내 정치 진전에 따른 원/달러 환율 진정 여부 등을 확인할 수 있다"며 "2월을 포함해 상반기 두 차례 인하로 기준금리가 총 0.50%p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 전문가들 "한은 연내 2∼3회↓"…美 인하속도 조절하면 한은 '딜레마'
2월 인하 이후로는 한은이 추가 인하 시기와 폭 등을 성장·환율 지표와 미국의 통화정책 등을 봐가며 신중히 결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단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연내 인하 횟수로 2∼3차례가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0.25%p씩 내린다면, 올해 기준금리가 0.50∼0.75%p 더 낮아진다는 뜻이다.
하지만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금리 인하 속도 등에 따라 아무리 경기가 나빠도 한은이 생각만큼 통화 완화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지난해 12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공개된 새 점도표(FOMC 위원들의 향후 금리 수준 전망을 표시한 도표)에 따르면 연준 위원들은 올해 말 기준금리 전망치로 3.9%를 제시했다. 지난해 9월 전망치(3.4%)보다 0.5%p나 높아진 것으로, 현재 금리 수준(4.25∼4.50%)을 고려하면 올해 당초 예상한 네 번이 아니라 두 번 정도만 더 내리겠다는 뜻이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도이치뱅크 등 일부 글로벌 투자은행(IB)은 올해 아예 연준의 금리 인하가 없을 것으로 전망을 바꿨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한은만 계속 금리를 낮추면 미국과의 격차가 크게 벌어져 환율 상승과 외국인 투자자금 유출 위험이 커질 수 밖에 없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미국 물가 지표가 기존 전망보다 좋지 않고, 트럼프 대통령과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의 관계도 매끄럽지 않은만큼 연준은 1월 금리를 동결할 것"이라며 "한은이 연준 결정을 계속 의식할 텐데, 연준의 점도표를 고려할 때 연준이나 한은 모두 올해 많아야 2차례 인하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shk999@yna.co.kr, hanjh@yna.co.kr, ssu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