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연합뉴스) 박성민 특파원 = 일요일인 지난 9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전용기(에어포스원) 안의 모습.
주말을 미 플로리다주 팜비치 마러라고 리조트 자택에서 보낸 트럼프 대통령이 워싱턴DC의 백악관으로 복귀하는 중이었다.
비행기 착륙이 임박했을 때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 풀기자들로 구성된 취재진과 문답을 시작했다.
질의응답 초반 한 기자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질문을 던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종전 협상을 중재하는 동안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공격하는 것을 두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을 무시하는(disrespect) 것 아니냐는 물음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에 답하지 않았다. 대신 질문한 기자의 소속 언론사를 물었다.
기자가 "워싱턴포스트(WP)"라고 답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아, 당신은(혹은 당신이 소속된 매체는) 신뢰(credibility)를 많이 잃었다"고 말한 뒤 반대쪽을 쳐다보면서 "계속하라(Go ahead)"라며 다른 질문을 받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20일 취임할 때부터 전임 조 바이든 대통령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기자들과 언제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문답을 주고받는다. 짧은 한두 개의 질의에 답하는 게 아니라 질의응답 시간이 30분이 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다 보니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향과 인식은 가감 없이 표출된다. 그 어느 때보다, 그 누구보다 언론을 활용한 소통에 적극적인 셈이다.
다른 부처가 언론에 직접 이슈를 설명하는 경우가 드물다는 것도 전임 정부와 차별화된 취재 풍경이다.
바이든 정부 시절 거의 매주 한 차례 진행되던 국무부나 국방부 대변인의 공식 브리핑은 거의 없어졌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40여일 만인 지난 6일 태미 브루스 국무부 대변인이 첫 브리핑을 했다.
그런데 참석을 원하는 언론사는 사전에 신청한 뒤 국무부 허가를 받고서 브리핑장의 지정된 좌석에 앉아야 했다. 예전처럼 브리핑 일시가 정해진 뒤 국무부 출입 자격이 있는 기자는 누구나 참석해 문답을 주고받던 것과는 달라진 모습이다.
결국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리는 미국 정부의 정책 향방은 트럼프 대통령이나 백악관을 통해서만 전달되는 '원보이스' 시스템이 구축된 셈이다.
이와 함께 정권 친화적인 매체의 급격한 부상도 눈에 띈다. 백악관 당국자들이 보수 성향 방송인 폭스뉴스에 출연하는 빈도가 눈에 띄게 늘었다.
역대 최연소인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이 진행하는 브리핑에서는 기존 주류 매체 대신 1인 미디어가 새로 백악관 기자단에 가입해 가장 먼저 질문을 하는 혜택을 받고 있다.
전통적으로 각 부처 브리핑에서 첫 질문을 독차지하다시피 한 AP 통신은 트럼프 대통령 집무실(오벌 오피스) 및 에어포스원 취재에서 아예 배제됐다.
이유는 트럼프 대통령이 '멕시코만'을 '미국만'으로 개칭하는 행정명령을 내렸음에도 따르지 않고, '멕시코만' 표기를 고수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면에는 AP의 기존 논조가 지나치게 진보적, 좌파 성향이라는 트럼프 정부의 누적된 불만이 드러난 것이라는 얘기가 있다.
지난 9일 에어포스원에서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대놓고 무시당한 WP는 소유주인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가 최근 '우클릭' 논조 변화를 꾀하고 있다.
그는 집권 1기 트럼프 대통령과 첨예하게 각을 세웠지만,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전후에 친트럼프 성향으로 옮겨가는 중인데 이번 WP 기자의 질문에 대한 반응을 보면 아직 트럼프 대통령이 만족하는 수준에 이른 건 아닌 것 같다.
트럼프 대통령이 세계 최강대국 미국의 권력을 차지하면서 국제 안보나 무역 분야에서 기존 글로벌 질서가 재편되고 있듯이 미국 언론의 취재 환경도 급변했다.
min22@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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