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선 최대 위협' 이스탄불 시장 싹부터 자르려는 것"
튀르키예 사회 급변…"개방적 권위주의에서 독재로 가는 중"
(서울=연합뉴스) 장재은 기자 = 국제사회의 대표적인 스트롱맨 중 하나로 분류되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71) 튀르키예 대통령이 종신집권 추진을 본격화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수개월째 이어진 야권 탄압 속에 차기 대권 도전에서 가장 큰 걸림돌로 여겨지던 정적을 전격 구금하자 집권연장을 위한 정치 공작이 아니냐는 의심이 쏟아지고 있다.
튀르키예 경찰은 지난 19일(현지시간) 에크렘 이마모을루(54) 이스탄불 시장을 뇌물수수, 테러단체 연루 등 혐의로 체포해 사법처리 절차에 들어갔다.
이마모을루 시장은 튀르키예 제1야당인 공화인민당(CHP) 소속으로 야권을 이끌 강력한 대권주자로 거명되는 인물이었다.
그는 23일 개최될 예정이던 CHP 당내 경선에서 대선후보로 선출될 가능성이 컸다.
그 때문에 튀르키예 야권에서는 이마모을루 시장에 대한 갑작스러운 수사와 체포에 정치적 동기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치적 기획 수사 의혹은 둘째치더라도 이마모을루 시장이 에르도안 대통령에게 위협적인 정적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마모을루 시장은 에르도안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튀르키예의 정치 중심지인 이스탄불에서 잔뼈가 굵은 정치인이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1994∼1998년 이스탄불 시장을 지내며 국정운영 능력을 입증받아 중앙권력까지 쟁취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이마모을루 시장도 에르도안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이스탄불 시장으로서 더 큰 정치권력을 향한 입지를 또박또박 넓혀가고 있다.
게다가 이마모을루 시장은 여당인 정의개발당(AKP)이나 에르도안 대통령의 전통적 지지층을 침식할 정도로 대중적 인기가 폭발적이다.
미국 근동정책연구소의 소너 캡타가이 튀르키예 연구 프로그램 국장은 CNN 인터뷰에서 "이마모을루는 에르도안과 똑같은 브랜드"라며 "너무나 큰 위협이라서 싹부터 자르기로 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마모을루 시장은 최근 이스탄불 대학에서 30여년 전에 발급된 학사학위를 취소당하기도 했다.
튀르키예에서는 대졸이 아니면 대선에 출마할 수 없는 까닭에 이 또한 정치 공작이 아니냐는 의혹이 즉각 제기된 바 있다.
이같이 정적을 겨냥해 수개월째 계속되는 탄압은 에르도안 대통령의 집권 연장을 위한 치밀한 계획일 수 있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대규모 강진 피해의 여파로 여론이 악화한 상황에서 2023년 5월 근소한 차이로 재선에 성공했다.
다음 대선은 2028년 5월 7일 전에 개최되는데 현재로서 에르도안 대통령은 3선을 금지한 헌법 때문에 출마를 위한 길이 막혀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집권 연장을 시도한다면 선택지는 헌법 개정이나 조기 대선 등 두 가지로 압축된다.
의회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한 개헌은 현재 튀르키예 의석 분포를 볼 때 쉽지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에르도안 대통령의 정의개발당은 전체 600석 가운데 272석을 장악하고 총 52석을 지닌 다른 정파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개헌을 위해서는 이마모을루 시장이 소속된 공화인민당(134석)을 비롯한 야권의 협조가 필요하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2017년에도 개헌을 통해 튀르키예를 의원내각제에서 대통령제로 바꾸며 자신의 권력을 확대한 바 있다.
그는 당시 개헌을 통해 군과 정보기관을 지휘하며 입법, 사법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통령으로 거듭났다.
개정 헌법에는 대통령이 조기 대선을 시행할 권한을 갖고 중임한 대통령도 의회 동의를 얻어 출마할 수 있다는 내용까지 담겼다.
제왕적 권력에다 조기 대선 되풀이를 통한 종신집권의 발판까지 마련한 까닭에 에르도안 대통령은 '현대판 술탄'으로 불렸다.
전문가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대선이 열린다면 이마모을루 시장이 에르도안 대통령의 집권 연장에 중대 변수가 될 수밖에 없다고 본다.
튀르키예 내부에서는 현재 관측되는 혼란상을 거대한 체제 변혁의 과정으로 보는 시각도 관측된다.
오지예긴 대학교의 무라트 소메르 정치학 교수는 CNN에 "이마모을루를 체포한 것은 튀르키예가 겪는 정치적 변화의 일부"라고 진단했다.
그는 "에르도안의 튀르키예가 개방적 권위주의 체제에서 러시아나 벨라루스 같은 완전한 권위주의, 독재 체제로 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jangj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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