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퍼스 잡앤조이=이진이 기자/노윤화 대학생 기자] ‘덕후’란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 매우 열정적으로 몰두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분야에 ‘덕질’을 하면서 일상을 살아갈 힘을 얻고 삶의 질을 높이고 있다. 대학생들도 예외는 아니다. 전시, 영화, 음악 등 다양한 문화예술 분야의 덕후 문성연(가명, 22세) 씨와, 야구를 비롯한 스포츠와 아이돌 그룹 하이라이트의 덕후 김도민(가명, 22세) 씨를 만났다.
△전시회 카탈로그들을 모아놓은 파일을 보고 있는 문성연 씨.
자칭 ‘문화예술 잡덕’인 문성연 씨는 패션을 전공한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어릴 때부터 미술책도 많이 읽고, 어머니를 따라 전시회도 여러 번 갔다. 2009년, 문 씨가 중학교 1학년이었을 때 예술의전당에서 구스타브 클림트의 전시회가 열렸다. 이 전시를 마지막으로 오스트리아에서는 향후 100년간 클림트의 작품의 국외 반출을 금지할 예정이었다. 그만큼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전시라는 생각이 들어 문 씨는 혼자서 남양주에서 서초구의 예술의전당까지 전시를 보러 갔다. 혼자서 전시회를 다니는 취미가 생긴 것은 그때부터였다.
뿐만 아니라 어릴 때 어머니가 클래식 음악을 많이 들려주셨던 덕분에, 클래식에도 관심이 많았다. 스스로 음악을 찾아서 듣다 보니 나중에는 크로스오버나 록 음악, 아이돌 음악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음악을 즐기게 됐다. 고등학교 때는 음악에 대한 책을 많이 읽으면서 세계 음악의 전반적인 역사와 시대별로 주요한 작품들에 대해 공부했다. 미술과 영화도 그런 식으로 접근을 했는데, 배경지식을 쌓고 나서 직접 전시를 보거나 음악을 들으면 감상에 많은 도움이 됐다. 대학에서 전공을 선택할 때도 이러한 예술 전반에 대한 관심이 영향을 미쳤다.
“고고미술사라면 저 같은 ‘잡덕’이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는 전공이겠다 싶었죠. 요즘은 전시도 미술 작품만 전시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분야와 융합되는 경향이 있잖아요. 최근에 봤던 류이치 사카모토 특별전도 그런 전시였어요. 영화음악 작곡가로 유명하지만 이번 특별전에는 음악뿐만 아니라 영상과 미디어 아트 등 다양한 예술이 모두 녹아들어 있었죠.”
△문성연 씨의 티켓북
이제 전시가 단순히 취미가 아니라 전공인 만큼, 문 씨는 잘 몰랐던 분야나 별로 관심이 없었던 분야의 전시도 많이 보려고 노력한다. 아직 사진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사진전도 열심히 다니고 있다. 이렇듯 문 씨는 자신이 덕질하는 분야를 대학에서 전공하고 있고, 그것을 학예사라는 직업으로까지 연결시킬 계획을 가지고 있다. 이 정도면 ‘덕업일치’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예전에는 덕업일치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제가 그냥 좋아서 하던 것이 일이 되고 진지해지니까 마냥 즐길 수는 없더라고요. 예를 들어 전시를 볼 때도 이제는 작품에만 집중하는 게 아니라, 작품이 전시돼 있는 동선이나 조명, 관람객의 연령대 등 작품 외의 요소들까지 많이 신경을 쓰게 되죠. 그래서 예전보다 낭만이 덜해져서 아쉽다고 느끼기도 해요.”
그럼에도 문 씨는 늘 그랬듯이 앞으로도 예술 덕후로 남아있을 것이다. 예술은 그의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예술은 제가 더 많이 느끼고 생각할 수 있게 해줘요. 예술 전체가 결국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해서, 예술을 많이 접하다보면 어떻게 살지에 대한 고민도 많이 하게 되고, 공감능력도 키울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많은 사람들이 예술을 막연히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해서 스스로의 영역을 한정시키곤 하는데, 사실 그렇지 않아요. 마음을 열고 찾아보면 재미있는 것들이 얼마든지 많으니까요. 삶을 향유할 수 있는 방식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인터뷰 중에도 수시로 야구 중계를 확인하는 김도민 씨.
김도민 씨는 스포츠 덕후이자 아이돌 그룹 하이라이트의 팬이다. 문 씨처럼 김 씨도 어릴 적 부모님의 영향을 받아 스포츠 덕질을 시작하게 됐다. 2002년 월드컵 때 부모님과 함께 길거리 응원을 다녔던 경험은 아직까지 그에게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 있고, 평소에도 집에서 새벽까지 해외 진출한 축구선수의 경기를 보기도 했다. 그런 영향으로 스포츠라면 양궁, 태권도, 탁구, 야구 등 종목을 가리지 않고 텔레비전 중계를 챙겨보게 됐다.
그러던 김 씨가 야구의 열렬한 덕후가 된 것은 대학교 입학 후였다. 사회스포츠 관련 학과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결국 그러지 못했던 김 씨는 학과 공부와 잘 맞지 않아 방황을 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두산 대 기아 경기를 봤는데, 예전에 프리미어 12 한일전 경기에서 인상 깊게 봤던 오재원 선수가 경기하는 모습을 보고 그때부터 두산의 팬이 됐다.
“제가 생각하는 야구의 매력은 크게 세 가지예요. 우선 야구는 스포츠 중 유일하게 희생이라는 단어가 공식 용어에 있을 만큼, 개인 기록보다는 팀의 승리가 중요한 스포츠예요. 또 여러 변수가 있어서 꼴찌 팀이 1위 팀을 이길 수도 있는, 즉 반전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스포츠기도 하고요. 마지막으로 축구 등 다른 스포츠와 달리 야구는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아요. 고등학교 때부터 항상 시간에 쫓기듯 살았던 탓인지 그런 여유가 저에게는 굉장히 큰 매력으로 느껴졌어요.”
△김도민 씨의 티켓북.
야구를 보다 보면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잘할 때도 있고, 못할 때도 있는 법이다. 김 씨는 두산을 응원하며 야구를 보다 보면 꼭 자신도 함께 역경을 이겨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거의 질 것 같은 상황에서도 결국 이길 때면 내가 우승한 것처럼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하고, 역시 스포츠든 인생이든 끝까지 가봐야 안다는 것을 깨닫고 힘을 얻기도 한다. 이처럼 야구를 통해 다양한 감정들을 느껴보는 경험이 평범한 일상을 더 재미있고 다채롭게 만들어준다고 말한다.
“하이라이트를 좋아하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어떤 대상을 깊게 좋아해보는 경험은 다양한 감정들을 느낄 수 있게 하고, 결국 스스로를 더 성장하게 만들어요. 저는 하이라이트라는 그룹을 진심으로 좋아하게 되면서 사람을 좀 더 따뜻하게 바라보는 눈을 키울 수 있었고, 누구를 만나든 그 사람의 장점을 찾는 습관을 가지게 됐어요. 이전에 부족했던 공감능력도 키울 수 있었고요.”
문 씨와 김 씨가 공통적으로 덕질의 순기능으로 꼽은 것은 다양한 감정들을 느껴볼 수 있다는 것과 일상에서의 활력소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할 수 있는 일이나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은 한정돼 있다. 그러나 이들처럼 무언가에 푹 빠져서 몰두한다면 매일 비슷하게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도 더 많은 것을 느끼고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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