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한서(49) 예일문서감정원장
환경공학(응용공학), 법학 학사
수사과학대학원 과학수사학 석사, 범죄학 박사
[캠퍼스 잡앤조이 = 강홍민 기자 / 강성근 대학생 기자] 우리가 매일 쓰는 글씨는 우리의 생김새만큼이나 고유한 특징이 있다. 필적은 범죄수사나 민사소송에서 중요한 증거로 쓰이기도 한다. 사람들의 필적을 연구하고 분석하고, 공정한 법질서를 확립하는데 기여하는 서한서 필적 감정 전문가를 만나 필적의 세계를 들여다봤다.
-자기소개를 해 달라.
“13년 경력의 필적 감정 전문가이자 박사다. 문서 감정의 일부로 필적과 인영을 분석하며 지문, 작성 연도 등도 감정한다. 현재 예일문서감정원을 운영하고 있고, 충남대, 경북대 과학수사학과에 출강해 과학수사와 범죄학을 가르치고 있다.”
-필적 감정이 정확히 어떤 일인지 설명해 달라.
“형사·민사사건에서 필적의 위·변조 여부와 특정 사람이 썼는지를 과학적으로 판단하는 일이다. 개인이 일관적으로 나타나는 필적의 특성을 항상성,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는 독특한 필적의 특성을 희소성이라고 한다. 이 항상성과 희소성을 기준으로 필적을 분석한다. 예를 들면 ‘김’이라는 글자에서 ‘ㄱ’은 어느 정도 각도로 쓰였는지, ‘김’에서 ‘ㄱ’의 비율, 끝나는 부분의 각도, 초성을 기준으로 모음의 위치 등을 분석해 한 개인의 필적에서 일관적이고 고유한 특성을 찾아낸다.”
-필적 감정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나.
“사람들의 글씨체가 비슷해 보여도 자세히 보면 같은 것은 없다. 마찬가지로 한 개인의 글씨체도 항상 똑같지는 않다. 글씨를 쓰는 것은 전신의 근육과 신경을 사용하는 행위다. 사람이 늙으며 글씨체도 바뀌는 게 그 이유다. 그러나 이렇게 변화무쌍한 필적에도 일관적인 특징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앞서 마치 우리 삶과 같아 보이는 필적을 과학적으로 규명한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서한서 필적 감정 전문가가 필적을 감정하고 있다.
-주로 어떤 사건을 다루나.
“전문 감정인이 맡는 사건은 형사·민사사건으로 나뉜다. 형사사건의 수사 단계에서 발견되는 필적은 국립과학수사원에서 분석한다. 민간 감정인은 수사 쪽이 아닌 법원과 관련된 업무를 맡는다. 예를 들면 어떤 형사사건의 수사가 끝난 뒤 검사가 법원에 피고인의 판결(유·무죄 또는 형량)을 요구하는데, 이 과정 중에 법원에서 증거물을 우리에게 다시 촉탁하는 경우가 있다. 민사사건에서는 원고 또는 피고가 먼저 의뢰를 해올 때도 있고, 법원에서 증거에 대한 감정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의뢰가 들어올 때도 있다. 민사사건은 재산분할 문제, 차용증, 보험청약서, 유언장과 관련된 사건이 주를 이룬다. 연간 총 200~300여 건의 감정물을 처리하고 있다.”
-필적 감정의 구체적인 과정이 궁금하다.
“범죄현장에 피의자가 쓴 것으로 간주되는 메모가 발견되었다고 가정해보자. 용의자를 좁힌 후 해당 필적이 용의자의 것과 일치하는지 알아내기 위해서는 대조할 필적이 있어야 한다. 용의자의 원래 필적을 알아내기 위해 시필이라는 과정을 거친다. 감정인 입회하에 다양한 상황에서 글씨를 쓰게 만든다. 느리게, 빠르게, 크거나 작은 글씨로, 말을 시키면서 글을 쓰게 하거나, 볼펜을 바꾸는 등 자신의 필적을 인위적으로 꾸미지 못하게 만든다. 이어서 해당 용의자가 평소에 쓴 메모나 금융기관에 남긴 서명을 확보한다. 다양한 자료 중에서 용의자의 필적 특성이 일관적으로 드러난 대조물을 선정한다. 글씨체를 사진촬영한 후 최소 60배를 확대한다. 글자의 위치, 각도, 길이, 크기, 비율, 필압(筆壓)의 흔적, 이어 썼는지, 꺾어 썼는지 등의 특징을 비교 분석한다. 조사 결과가 나오면 감정서를 작성한다. 감정물의 특성, 감정 방법, 분석·판단 결과 등을 정리한다. 이 과정을 마치면 필적 분석 결과는 증거물이 되는 것이다.”
-필적 감정의 신뢰도는 어느 정도인가.
“필적 감정을 하는 데 있어 100% 확실한 판단은 없다. 특히 필적이라는 것 자체가 변화무쌍하고, 감정을 할 때 주관적인 판단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우에 따라 ‘유사하다’, ‘추정된다’, ‘사료된다’, ‘가능성이 있다’ 등의 표현도 쓰게 된다. 그럼에도 신뢰도는 10명의 감정인이 동일한 조건에서 동일한 감정물을 분석했을 때, 9명에서 9.5명이 같은 결과가 나오는 정도다. 문서 감정이라는 일은 판사에게 전문적인 식견을 제공해 판단을 내리는데 도움을 주는 것이다. 결국 최종적인 결정은 판사에게 달려있다.”
-일하면서 보람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
“내가 맡았던 사건이 결과적으로 잘 해결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면 보람을 느낀다. 하지만 사건에는 다른 증거도 많기 때문에 필적감정이 재판에 큰 영향력을 미쳤는지는 알기 힘들다. 그리고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이상 나를 거쳐 간 사건이 어떻게 끝났는지 잘 모른다. 민사사건의 경우 한 사람이 노골적으로 거짓말을 해 나머지 사람이 피해를 보는 어이없는 경우가 종종 일어난다. 그럴 때 진실을 가려내는데 도움이 되면 보람을 느낀다. 하지만 그만큼 부담감도 있다. 결백한 사람이 누명을 쓰는 경우가 발생하지 않기 위해서 항상 노력한다. 필적 감정에서 100% 확실한 결과가 나오지 않는 만큼 신중하고 엄밀하게 일에 임한다.”
-맡은 사건 중에 기억에 남는 사례가 있다면 소개해 달라.
“몇 년 전 다뤘던 사건이었는데, 아버지가 유언장을 남기며 죽고, 아들 두 명이 유언장의 내용을 두고 다투었다. 유언장에는 한 아들에게만 모든 재산을 물려주라고 적혀있었다. 다른 아들이 이를 승복하지 못해 소송을 걸었다. 유언장의 필적을 분석해본 결과 글씨체가 아버지의 평소 필적과 거의 동일하게 나왔다. 그런데 재산을 물려받기로 한 아들의 필적과도 유사한 부분이 대거 발견되었다. 하지만 유언장이 아버지의 필적과 더 유사하게 쓰인 것으로 보여 그렇게 판단을 내렸다. 재판은 재산을 물려받기로 한 아들이 승소했다. 부자지간에 필적이 유사하게 나올 가능성이 있지만 흔치 않은 경우라서 꽤 기억에 남는다. 진실은 당사자밖에 모르겠지만 지금 생각해도 등골이 오싹해지고는 한다.”
-필적 감정인이 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가.
“국과수, 대검찰청, 국방부 조사본부와 같은 국가기관에서 문서 감정 관련 업무를 5년 이상 근무하거나, 국가기관에서 근무했던 사람 혹은 문서감정인에게 5년간 연수를 받으면 조건이 충족된다. 최소한 1,000~2,000건의 감정물을 접하고 충분한 연습과 경험이 필요하다. 법의학과 화학에도 지식이 있어야 하며 관련해 석·박사 학위도 있으면 더 유리하다.”
-필적을 통해 성격도 파악할 수 있나.
“그 분야는 필적학이라고 하며 필적 감정과는 다르다. 필적학은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 필적과 성격은 관련이 있겠지만, 지금으로선 유의미한 연구결과가 없다. 필적 감정은 엄밀하고 객관적인 과학수사의 한 방법이다. 홍채, 지문, 귀 모양, 걸음걸이 등 바이오매트릭스에 의한 개인 식별과 맥락을 같이 한다고 생각한다. 대선 후보나 유명인의 필체로 성격을 파악하는 것은 재미 삼아 하는 일이지 신뢰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무척 궁금해 따로 공부해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사람들이 필적, 서명에 대해 갖고 있는 오해가 있다면 무엇인가.
“우리나라는 서명 문화권으로 접어든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서명을 간과하는 사람이 많이 보인다. 어떤 사람들은 본인이 쓴 서명을 다시, 똑같이 따라 쓰지 못하고는 한다. 서류를 꼼꼼히 읽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겠지만, 무성의하게 쓴 서명으로도 훗날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할 수 있다. 타인이 쉽게 따라 쓸 수 없는 독특한 서명을 직접 만들고 일관성 있게 쓸 수 있도록 연습해보길 권한다. 그리고 중요한 서류에 서명을 할 때에는 서명과 함께 도장이나 지장을 같이 사용하면 더욱 안전하게 서류작업을 할 수 있다.”
-직업적으로 필적 감정인의 비전은 어떤가.
“과학수사에 관심을 가지는 인원이 늘어나는 추세이지만 우리나라에 필적, 문서 감정인은 국가기관 포함 30~40명 정도로 매우 적다. 시장규모는 50억 원이 되지 않아 그렇게 크지 않다. 깊고 넓은 지식과 긴 연수기간이 필요한 전문직인 반면 시장은 포화상태다. 하지만 성문(聲紋) 분석, 영상분석 분야는 수요에 비해 전문 감정인이 부족하다. 학생들에게도 그쪽으로 진학하기를 권유하는 편이다.”
kh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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