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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퍼스 잡앤조이=박해나 기자] ‘라이프쉐어’는 일명 어른들을 위한 캠프다. 1박 2일 혹은 2박 3일을 낯선 사람들과 함께 보내며 밤새 인생 토론을 나누는 시간을 갖는다. 인생에 예기치 못한 암전이 찾아왔을 때, 가야 할 방향이 어딘지 몰라 헷갈릴 때 사람들은 라이프쉐어를 찾는다. 나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누군가의 삶을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치유와 위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 서울 서촌의 한옥에서 진행된 1박 2일 캠프 (사진=라이프쉐어 제공)
최재원(34) 씨는 2017년 2월부터 라이프쉐어의 호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한 달에 한 번씩 오프라인 캠프를 기획해 참가자들과 소통하는 시간을 갖는다. 지금까지 전국 소도시에서 16회 이상 캠프를 개최했고, 포스코, 루트임팩트 등의 기업과 연계한 프로그램도 진행 중에 있다.
“2014년부터 서울 합정동에서 에어비앤비를 운영했어요. 방 3개짜리 집을 임대해 한 개는 제가 사용하고 남은 두 개를 게스트룸으로 사용했죠. 주로 외국인들이 게스트로 찾아왔는데, 하필 그때가 개인적으로 고민이 많은 시기였어요. 그래서 매일 밤 게스트로 찾아온 외국인을 붙들고 고민을 털어놨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서로의 이야기도 나누게 되고요.”
서울로 여행 온 외국인들은 졸지에 최 씨의 카운슬러가 됐다. 그중에는 독일에서 온 가정의학과 의사 루카스도 있었다. 최 씨는 루카스와 대낮에 술 한 잔 없이 2~3시간 이상 심도있는 이야기를 나눴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집 밖으로 나오면 매일 보던 합정동 거리가 베를린처럼 보이기도 했다. 겨우 몇 시간 만에 루카스와 둘도 없는 친구가 된듯한 친밀감도 느꼈다. 루카스는 최 씨에게 그것이 ‘라이프쉐어’라고 알려줬다.
△ 라이프쉐어 호스트 최재원 씨 (사진=서범세 기자)
유럽에서는 흔한 ‘라이프쉐어’ 한국에 상륙
“유럽 친구들은 라이프쉐어에 익숙하더라고요. 복지 개념으로 10대부터 생애 주기별로 학교, 사회복지센터 등에서 많이 진행한다고 해요. 게스트로 찾아온 외국인 친구들과 그렇게 라이프쉐어를 시작했죠. 교감을 나누는 시간을 갖게 되니 에어비앤비에 대한 후기가 좋아졌고, 더 많은 외국인이 제 방으로 찾아왔어요. 그렇게 그들과 만난 이야기를 묶어 책으로 출간했고, 여행을 가지 않는 여행작가로 알려졌어요.”
책을 출간하고 에어비앤비의 인기 호스트로 떠오르며 최 씨는 허파에 바람이 많이 들었다. 음반 기획사에 재직 중 부업으로 시작한 에어비앤비였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본업은 뒷전이 됐다. 결국 최 씨는 퇴사를 하고 숙박업에 올인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퇴사 후 여정은 생각만큼 수월하지 않았다. 동업을 하려던 것이 생각처럼 되지 않았고, 마음이 조급해져 불안감만 쌓여갔다. 좋아하는 일을 좇아 움직였을 뿐인데 돌아보니 초라한 백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이런 감정을 토로할 대상이 없으니 더욱 외로웠다. 최 씨는 다시 라이프쉐어를 떠올렸다. 외국인 친구들과 인생 토론을 하며 위로받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었다.
“외국인들과 해본 경험이 있으니 이번에는 한국인 친구들과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새벽에 개인 SNS에 라이프쉐어 모집 글을 올렸어요. 1박 2일 동안 어른을 위한 캠프를 진행한다는 내용으로요. 초등학생, 중학생만 캠프를 갈 것이 아니라 우리도 캠프를 떠나 서로의 고민을 이야기하며 인생 토론을 해보자는 것이었죠. 글을 올리고 잠들었는데 다음날 아침 확인하니 100명 이상이 신청을 했더라고요. 소규모로 진행해야 하는 특성상 어쩔 수 없이 5명만이 라이프쉐어 1기로 선발됐어요.”
△ 캠프 참가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최재원 씨 (사진=라이프쉐어 제공)
낯선 사람들 모인 어른들의 캠프, 나이·직업 대신 취향 중심의 자기소개
라이프쉐어가 캠프 형식으로 진행되는 것은 여행의 기분을 가득 담기 위해서다. 여행을 떠나면 자신도 모르게 굳게 닫았던 마음이 열리고 낯선 사람 앞에서도 속 얘기를 털어놓게 된다. 라이프쉐어는 참가자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보다 진솔하게 나눌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여행 콘셉트를 고수하고 있다. 서울 근교로 떠나는 작은 여행이라도 이국적인 풍경의 숙소를 고르려 노력하고, 조명이나 향초 등을 직접 챙겨 다니며 분위기 연출을 위해 애쓴다. 음반 기획사 출신답게 음악도 사람의 마음을 풀어주는 곡들로 심사숙고했다.
그렇게 모든 것이 세팅된 숙소에 참가자들이 찾아오면 짐을 푸는 것부터가 캠프의 시작이다. 긴장된 상태로 캠프를 찾은 이들은 짐을 풀어 놓으며 마음을 서서히 열고, 함께 동네 여행을 하며 한결 여유로운 마음을 갖게 된다. 서로의 나이나 직업 등은 말하지 않고 ‘취향’ 중심의 자기소개를 하고 맛있는 음식까지 배불리 먹고 나면 이제 본격적인 인생 토론 시간이다.
△ 라이프쉐어에서 제작한 대화 카드 (사진=라이프쉐어 제공)
참가자들은 지정된 대화 상대와 함께 대화 카드 100장 중 몇 개를 뽑아 그에 맞는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나를 가장 나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요’,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머무르는 삶과 떠도는 삶 중에 어떤 것에 더 끌리나요’ 등의 질문이 카드에 적혀있다. 답을 하다 보면 자신의 고민에 대해 말하게 되고 그러면서 문제 해결에 대한 힌트를 얻고 생각을 정리할 수 있다.
“100개의 질문은 지금까지 라이프쉐어를 거쳐 간 참가자들이 필요하다고 느낀 것을 모아 만든 거예요. 사실 일상에서는 받아보기 어려운 것들이라 처음에는 답하기 어려워하는 분들도 있어요. 하지만 계단 형식으로 차근차근 이야기할 수 있도록 도와드리고 있어 나중에는 모두들 편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죠. 원래는 밤 11시 30분이면 프로그램이 끝나는데 보통 새벽 3~4시까지 이야기가 이어져요.”
△ 10cm 권정열과 진행한 라이프쉐어 영상 콘텐츠. 유튜브를 통해 볼 수 있다. (사진=라이프쉐어 유튜브 채널캡처)
앞으로 3년간 라이프쉐어 키워나갈 계획
최근에는 라이프쉐어 유튜브 채널도 개설했다. 다양한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과의 토크 콘텐츠를 업로드하는 중이다. 가수 10cm 권정열을 시작으로 협상전문가 류재언 변호사, 문화살롱 취향관의 안주인 케이트 등이 이야기를 나눴다.
“올해 초 일상에서 즐기는 여행법을 소개하는 ‘작은 여행, 다녀오겠습니다’ 책을 출간하며 전시를 진행한 적이 있어요. 전시 공간 한편에 셀프 라이프쉐어를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었죠. 전시가 끝나고 나니 벽면에 수백 개의 라이프쉐어 이야기가 포스트잇으로 붙어있더라고요. 그걸 하나씩 읽으며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된다는 걸 느꼈어요. 그래서 다른 사람의 인생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영상 콘텐츠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최 씨는 앞으로도 꾸준히 영상 콘텐츠를 제작해 많은 사람들에게 라이프쉐어를 알릴 계획이다. 또한 하반기 중에는 라이프쉐어 커뮤니티 펍(Pub)을 열고 싶은 마음도 있다. 자유롭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이면서 동시에 소셜 활동이 가능한 공간으로 만들어갈 예정이다.
“회사를 다닐 때는 여행 한 번을 제대로 간 적이 없었어요. 그래서 퇴사를 하며 버킷리스트를 만들었고 1년 동안 하고 싶은 걸 다 해보자고 생각했죠. 책 출간하기, 라이프쉐어 시작하기, 커뮤니티 펍 만들기 등이요. 1년이 지나고 보니 대부분을 이뤘고 또 그것들이 모두 연결이 된다는 걸 느꼈어요. 그래서 앞으로 3년 동안 더 해보면서 조금 더 키워보고 싶어요.”
phn090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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