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퍼스 잡앤조이=이진이 기자/노윤화 대학생 기자] 바람이 제법 선선해졌다. 가을날 마음을 울리는 영화를 보며 감성을 채워보면 어떨까. 영화 ‘일 포스티노’, ‘시’, ‘동주’는 모두 시를 주제로 한 영화이자 뜻 깊은 메시지를 담고 있다. 또한 이 영화들은 시 또는 문학이라는 것이 우리 삶에 밀접히 닿아 있는 것임을 깨닫게 한다.
일 포스티노(1994): 삶이 다 은유다
이탈리아어로 우편배달부를 의미하는 ‘일 포스티노’라는 제목의 이 영화는 칠레 작가 안토니오 스카르메타의 소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를 원작으로 한다. 이탈리아의 작은 섬에 살고 있는 가난한 청년 마리오는 칠레의 민중시인 파블로 네루다가 이탈리아에 망명해 있는 동안 그의 우편배달부로 일하게 되면서 시의 세계에 눈을 뜬다.
“배가 단어들 사이에서 퉁퉁 튕겨지는 느낌이었어요.”
해변 앞에서 네루다가 바다에 대한 시를 낭송하자 마리오가 했던 말이다. 마치 노래를 하는 듯한 시의 아름다운 운율을 직접 느끼게 된 것이다. 그렇게 시의 매력을 감각으로 느끼게 된 순간 마리오의 입에서 나온 말은 다름 아닌 은유였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어떤 특별한 체험을 하게 될 때, 우리는 그것을 직접 묘사하는 대신 다른 사물에 빗대어 말하는 은유를 사용한다. 이날 이후로 마리오는 은유의 마법을 깨닫고 자신의 삶을 시로 물들여간다.
“그대의 미소는 나비의 날개처럼 얼굴 위에서 펼쳐집니다.”
마을의 식당에서 일하는 베아트리체에게 첫눈에 반한 마리오는 그녀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은유로 표현한다. 결국 마리오는 베아트리체의 사랑을 얻고 그녀와 결혼한다.
은유의 마법은 사랑에 그치지 않는다. 시를 만나면서 그는 세상을 보는 눈을 변화시킨다. 일상에서 무심코 지나쳤던 것들의 아름다움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는 예전에 네루다가 이 섬의 아름다움에 말해보라고 했을 때 생각나는 것이 전혀 없었지만, 이제는 알게 됐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섬의 작은 파도와 큰 파도, 절벽의 바람, 덤불에 이는 바람, 아버지의 서글픈 그물, 교회 종소리, 별빛이 반짝이는 섬의 밤하늘’에 마이크를 대고 소리를 녹음한다.
그는 이제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의 아름다움을 알고, 가난한 어부로 평생을 살아온 아버지의 그물이 ‘서글프다’는 것을 안다. 당선되자마자 수도를 놓아주겠다는 공약을 철회해버린 정치인의 행동이 부당하다는 것을 알고, 그러한 힘 있는 자들에 의해 착취당하는 민중들의 삶이 변화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안다.
이렇게 시는 네루다에게 사랑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처음 다가왔지만, 점점 삶과 세상에 대한 시각을 넓혀주었다. 그의 이야기를 지켜보다 보면 시가 결코 우리의 삶에서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명대사
“시란 쓴 사람의 것이 아니라 그 시를 필요로 하는 사람의 것입니다.” -마리오
시(2010): 시를 통한 속죄와 용서의 이야기
‘시를 쓰려면 잘 보아야 한다.’ 영화 속의 시 창작 교실에서 김용탁 시인이 수강생들에게 전했던 가르침이다. 시를 쓰고 싶어 하는 주인공 미자는 그 말을 듣고 사과를, 꽃을, 나무를, 주변의 모든 사물들을 뚫어지게 쳐다보기 시작하지만, 아무런 시상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것은 시를 쓰기 위해 필요한 ‘잘 보는’ 능력이 말 그대로 무언가를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삶의 진실을 볼 줄 아는 능력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자가 시를 쓸 수 있게 되는 것도 남들이 모두 외면하려고 했던 진실을 직접 마주하면서부터이다. 영화 초반, 희진이라는 여학생이 미자의 외손자인 종욱을 포함한 남학생들에게 성폭행을 당해 자살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다른 가해자 학생들의 학부모들이 모두 자기 자식의 잘못을 감추려 급급할 때, 미자는 희진의 흔적을 찾아다니며 그녀를 기억하고 그녀가 겪어야 했던 고통을 몸소 이해해보려 애쓴다. 미자는 희진의 위령미사에 갔다가 슬픔에 잠긴 얼굴로 나오기도 하고, 희진이 성폭행을 당했던 과학실과 자살한 장소를 직접 찾아가보기도 하면서 희진에 대한 죄책감과 외손자를 향한 모성애 사이에서 괴롭게 갈등한다.
결국 미자는 진실을 외면하지 않기로 결심하고, 그 결과 그녀는 시 강좌가 끝날 무렵 한 편의 시를 완성할 수 있게 된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미자의 시 ‘아네스의 노래’가 내레이션으로 흘러나오면서 희진의 시선과 미자의 시선이 교차되는 장면들은 두 사람이 미자의 시를 통해 연결되어 있음을 의미하는 듯하다.
명대사
“시를 쓴 사람은 양미자씨밖에 없네요.” -김용탁 시인
동주(2016):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앞의 두 영화가 시 자체에 대한 물음과 고민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면, ‘동주’는 시 자체보다는 시인 윤동주의 삶과 그의 시 세계에 좀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알려져 있듯이, 윤동주는 일제 강점기의 시대 현실에 맞서 싸우지 못하고 시를 쓰는 것을 부끄러워하며 평생 자신을 성찰하고 반성했던 시인이었다. 영화는 그렇게 부끄러움을 노래하는 시인이었던 윤동주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며, 그가 자신의 삶과 시를 일치시켰던 모습을 보여준다.
‘사람들 마음속에 있는 살아있는 진실을 드러낼 때 문학은 온전하게 힘을 얻으며, 그 힘이 하나하나 모여서 세상을 바꾸는 것’이라고 믿었던 시인 윤동주. 그러나 동시에 그는 사회를 바꾸기 위해 앞장서서 행동하지 못하고 시를 쓰기만 한 것을 한없이 부끄러워했다. 영화는 그렇게 일제 강점기에 시인으로 살아가면서 그가 겪어야 했던 고뇌를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영화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는 ‘아우의 인상화’, ‘자화상’, ‘별 헤는 밤’, ‘쉽게 씌어진 시’, ‘서시’ 등 윤동주의 주옥같은 시들이 내레이션으로 삽입되고 있다는 것.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바랐던 시인이 고백하듯 써내려갔던 시들은 마음 깊은 곳을 울리며 그의 삶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한다.
명대사
“윤 시인, 부끄러움을 아는 건 부끄러운 게 아냐. 부끄러운 걸 모르는 놈들이 더 부끄러운 거지.” -정지용 시인
zinysou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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