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잡앤조이=조수빈 기자 / 김하나 대학생 기자] 마지막으로 손편지를 쓴 게 언제인가. 카카오톡이 전국민 메신저가 됐고 직접 얼굴을 보지 않고 노트북 앞에서 회의도 할 수 있는 시대다. 우체국에 가서 우표를 붙여 편지를 보내는 것은 아주 먼 옛날의 이야기가 됐다. 그러나 서울여대 학생들은 코로나19로 인해 우울해진 일상을 위로해준 것은 다름 아닌 누군가가 직접 적어 준 아날로그 감성의 손편지라고 답한다. 따뜻한 편지 이벤트를 시작한 ‘편지슈니’를 만나봤다.
서울여대 익명 게시판 에브리타임에는 ‘편지슈니’가 등장했다. 슈니란, 서울여대의 줄임말 swu를 활용한 서울여대생 본인들을 지칭하는 용어다. 본인을 ‘편지슈니’라고 지칭한 한 학우는 학우들에게 편지를 써서 보내주겠다며 신청자를 모집했다. 이후 몇 개월 혹은 반 년 정도의 시간이 지난 후 편지를 받았다는 후기 글 등장하고 있다.
편지슈니에게 편지를 받은 서울여대 재학생 우성미 씨는 “신청 후 이틀 정도는 개인 정보를 왜 알려줬나 후회를 했다. 시간이 한참 지나서 잊힐 때쯤 편지가 도착했는데 그 때 많이 위로를 받았다”고 소감을 전했다. 우 씨는 편지에 답장도 보냈다. 우 씨는 “코로나19로 인해서 바깥 만남도 힘들어졌는데 손편지로 느낄 수 있는 따뜻함이 크게 느껴졌다. 꼭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소소하지만 의미 있는 이벤트를 시작하게 된 서울여대 익명의 ‘편지슈니’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서울여대 에브리타임에 올라온 편지 신청 모집 글.
편지 이벤트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어느 날 물건을 정리하다가 모아뒀던 편지를 발견했다. 시기별로 모아둔 편지지들을 보니 오랜만에 편지가 너무 쓰고 싶어졌다. 편지를 받았을 때 기쁨도 새록새록 기억났다. 많은 사람들한테 편지를 써주고 싶은 마음에 학교 익명 커뮤니티인 에브리타임에 글을 올린 것으로 이 이벤트가 시작됐다. 원래는 일회성으로 시작했다가 꾸준히 하게 됐다.”
실제 주변 지인들, 동기들도 편지슈니가 본인이라는 걸 모르고 있나
“지금까지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만약 편지 이벤트를 신청한 사람들 중 지인이 있다면 편지를 받고 글씨체나 그림체를 통해 알아챌 수도 있을 것 같다.”
편지 이벤트는 어떻게 운영되나
“편지를 쓰고 싶은 기분이 들 때 커뮤니티를 통해 신청을 받는다. 받을 사람이 정해지면 곧바로 쓰기 시작한다. 신청 대상을 여러 명 받다보니 전체 편지를 다 작성한 후 발송하기까지는 시간이 소요된다.”
지금까지 총 몇 명에게 편지를 썼는지
“9명 정도에게 편지를 썼다. 아직 발송되지 못한 미완성편지들도 남아있다.”
편지의 콘셉트가 여러 버전인 것으로 알고 있다
“두 번째로 편지 신청을 받을 때 편지를 받고 싶은 컨셉이 있다면 말해달라고 공지했다. 사실 익명으로 익명에게 내가 아예 모르는 사람들에게 편지를 쓰려면 내용적인 면에서 한계가 있다. ‘이런 얘기를 싫어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들도 한다. 그래서 일상 TMI 위주로 쓰되, 컨셉이 있으면 더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협박편지, 독촉장, 오래된 친구 등등의 컨셉이 있었다. 앞으로도 학생들이 원하는 여러 컨셉들을 운영해볼 예정이다.”
편지에는 보통 어떤 내용들이 들어가나
“주로 일상 이야기를 쓴다. 요즘의 고민, 취미 혹은 내가 키우는 강아지의 이야기를 쓴다. 최근 먹은 음식 중에 맛있었던 메뉴, 재미있었던 일 등 거의 혼잣말과 같은 내용들을 공유한다.”
△우성미씨가 편지슈니에게 받은 편지의 모습.
편지를 받았다고 인증 글, 후기가 올라오는 걸 보면 어떤가
“뿌듯하다. 편지를 받은 슈니들이 모두 자랑해줬으면 좋겠다.(웃음) 편지는 우편으로 전달되기 때문에 분실 위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편지가 무사히 도착했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용으로 후기를 보기도 한다.”
누군가에게 편지를 써준다는 것이 본인에게는 어떤 의미인가
“어릴 때부터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를 쓰거나 그려서 선물해주는 것을 참 좋아했다. 받는 사람이 좋아하고 감동받는 모습을 보면 그 배로 기분이 좋았다. 처음에는 심심하기도 하고 시험공부를 하기 싫어서 시작했던 일이다. 그런데 편지를 쓰다보니 내가 원래 좋아하던 일을 다시 찾은 기분이었다. 이러한 소소한 재미를 찾고 편지에 어떤 것을 쓸지, 어떻게 쓸 지를 고민하다보니 내 삶도 이전보다는 좀 더 생기 넘치게 변화한 것 같다.”
이 이벤트를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나
“편지 이벤트를 하면서 처음으로 발견한 후기가 기억에 남는다. 답장을 쓰고 싶다며 고맙다는 내용이 담긴 후기였다. 그리고는 정말로 답장이 왔다. 편지를 쓰는 것만으로도 참 기분이 좋은 일이었는데 답장을 받는 것은 또 색다른 느낌이었다.”
앞으로도 지속할 생각이 있나
“계속하고 싶은 마음은 크다. 그런데 우편비용이 은근이 부담이 되더라.(웃음) 그래도 받을 사람이 기뻐할 모습을 생각하면 뿌듯하고 좋다. 아직 도전해보고 싶은 컨셉들이 많이 남아서 몇 번은 더 해볼 것 같다.”
슈니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서로 모르는 사이에 주소나 전화번호 등 개인정보를 공개한다는 것이 두려운 슈니들이 많은 것 같다. 처음에 주소를 전달받으면 편지 봉투에만 기입을 하고 다른 곳에는 남겨두지 않는다. 편지를 보낸 후에는 슈니들과 대화를 나눴던 오픈 채팅방도 사라지고 주소도 사라진다. 그런 걱정 때문에 편지를 쓰는 것이 꺼려졌다면 걱정말고 참여해주면 좋겠다. 우울한 한 해에 제가 쓴 편지가 학우들에게 위로가 된다면 그것으로도 만족한다.”
subinn@hankyung.com
[사진=김하나 대학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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