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연말 휴가 기간이던 지난해 12월27일, 최고경영진은 1박2일 합숙 워크숍에 들어갔다. 최지성 미래전략실장과 주요 계열사 최고경영자(CEO) 40여명이 경기도 용인 삼성인력개발원에서 경영전략 세미나를 가졌다. 연례 행사이지만 지난해는 1박2일로 열렸다. 재계 1위 삼성의 이 같은 행보는 올해 경영 환경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글로벌 불황의 한파가 여전한 가운데 국내에서는 새 정부 출범과 함께 경제민주화 요구가 한층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우리 기업들은 결코 녹록지 않은 경영 환경 속에서 재도약을 위해 벽두부터 신발끈을 다시 고쳐매고 있다.
○새 정부의 경제민주화에 적응하라
‘새 정부 정책에 적응.’ 재계 고위 관계자가 꼽은 올해 제1의 경영 화두다. 기업들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이끌 새 정부의 경제민주화 정책에 대한 대책을 고심하고 있다.
지난해 12월26일 전국경제인연합회를 찾은 박 당선인은 대기업 총수들이 모인 자리에서 정리해고 자제, 골목상권 보호 등을 강력히 요구했다. 박 당선인은 “어려움을 돌파하기 위해 구조조정이라든가 정리해고부터 시작할 게 아니라 어떻게든 일자리를 지키기 위한 지혜와 고통 분담에 나서 달라”고 했다. 또 “대기업이 중소기업 영역이나 골목상권까지 파고들어 소상공인들의 삶의 터전을 침범하는 일도 자제했으면 한다”며 “재벌 2·3세들이 서민들이 하고 있는 업종까지 뛰어들거나 부동산을 과도하게 사들이는 것은 기업 본연의 역할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기업들은 박 당선인이 기존 순환출자 해소를 요구하지 않은 데 안도하면서도 대기업의 변화를 강하게 촉구한 데 대해 긴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전경련을 중심으로 △정년 연장 및 고용 확대 △투자 확대 △골목상권 보호 방안 등을 집중 검토하고 있다.
향후 가장 큰 논란은 ‘일감 몰아주기 규제’가 될 것이라는 게 재계의 관측이다. 각 그룹이 물류, 건설, 시스템 통합(SI) 등에서 계열사 내부 거래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이를 지나치게 규제할 경우 관련 계열사의 존망뿐 아니라 각 그룹의 전반적인 경쟁력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계속되는 불황, 극복 방안은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12월27일 발표한 ‘2013년 경제 전망’에서 2012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3%에서 2.1%로, 올해 전망치는 4.0%에서 3.0%로 낮췄다. 올해 성장률이 지난해보다는 높겠지만 하방 위험이 크고, 회복세도 잠재성장률에 못 미칠 것이라는 관측이다. 게다가 미국, 유럽에 이어 일본 중앙은행까지 통화 발행량을 대폭 늘리면서 환위험까지 커지고 있다.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지난해 12월24일 서울 양재동 본사에서 열린 사장단 회의에서 “내년에는 원화 강세까지 겹쳐 한치 앞을 가늠하기 힘든 만큼 리스크 매니지먼트를 강화하고 어려움을 미리 찾아내 극복해야 한다”며 “보다 빨리 예측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밝혔다. 글로벌 경영 환경이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한 만큼 신속하고 유연하게 돌발 변수에 대응하는 게 올해의 경영 관건이라는 얘기다.
정준양 포스코 회장은 사내 블로그에 올린 신년 ‘CEO 메시지’를 통해 “지난 한 해 고생 많았지만 올해도 절대 쉽지 않은 한 해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불황 타개책으로 ‘시장 선도 제품’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구 회장은 지난해 9월 말 임원 세미나에서 ‘시장 선도 제품’을 화두로 꺼낸 데 이어 10월 말에는 “시장 선도의 지향점과 구체적 실천 방안을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
SK그룹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수펙스(SUPEX)추구협의회의 김창근 의장이 제시한 올해 경영 화두는 ‘동심동덕(同心同德·마음을 같이하고 덕을 같이한다)’이다. SK그룹 측은 “한·중·일 권력 교체와 유럽 재정위기, 미국 재정절벽 등 유례 없는 격동기를 맞아 경영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안정과 성장을 이뤄내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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