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서 경험한 생생지식 활용
고용·고령화 과제 해결도 기대
김경수 한국산업단지공단 이사장
중소 제조기업은 국민소득 2만5000달러에 달하는 한국 경제의 건강을 상징할 수 있는 지표가 돼야 한다. 1인당 국민소득 4만~5만 달러에 달하는 초고소득 국가에 비하면 한국 경제는 아직 청년기에 있고, 따라서 한국 중소기업은 청년의 활력을 지닌 건강한 상태여야 한다는 것이 상식이다. 사실, 최근 10여년 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재벌 대기업과 협력관계를 맺고 해외투자에 나선 한국 중소기업들의 활약상을 보면 예전에 비해 일취월장했다고 볼 수 있다. 한·일 간 부품소재 분야 무역 역조 개선도 긍정적 신호다.
그러나 중소기업의 성장 동력이 지금부터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지가 문제다. 중국은 생산 및 기술인력의 풍부함에 더해 최근에는 다양한 제품혁신, 지식전파 속도, 사회문화 등 모든 면에서 경쟁력의 핵심 요소들을 왕성하게 갖춰가고 있다.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역시 지정학적 위치의 유리함, 일본의 기술이전 및 투자증가, 소비시장 확대라는 호순환의 과정에 진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반면, 한국은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중소기업이 극히 소수이고 대부분의 영세 중소기업은 기술, 인재, 비용구조, 경영 측면에서 열악하다. 1998년 이후 키코 외환상품 파동으로 견실한 기업들이 많이 타격을 입었고, 반월시화 국가산업단지의 30% 이상이 임대공장인 현실에서 중소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낙관할 수만은 없다.
따라서 중소기업의 혁신 능력을 키우는 과제는 차기 정부의 긴급한 핵심과제다. 필자는 한국의 중소기업이 지닌 잠재능력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런 잠재능력을 발현시키기 위해서는 1980~90년대 만들어진 기존 정책의 기틀을 바꾸고, 중소기업의 경영마인드 변화에 초점을 맞춰 정책을 미래지향적으로 개편하는 것이 시급하다. 산업정책의 교과서적 수단만으로는 2~4차 협력업체(고용 5~30인)에 해당하는 중소기업의 혁신능력을 배양하기 어렵다
우선 성장 중소기업에게는 중견기업으로 도약하는 길을 열어줘 ‘중소기업이 중소기업 성장을 이끄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중견기업 육성을 위한 기존 제도 외에 대기업·중견기업·중소기업이 컨소시엄 형태로 미래에 유망한 기술개발을 통해 시장에 도전하는 프로젝트를 정부 차원에서 장려해야 한다. 예를 들어 경제 관련 부처와 공기업이 한 가지 이상의 공동 프로젝트를 제안하고, 심사해 채택하는 식이다. 다양한 계층의 기술인재를 육성하는 전략도 중장기적으로 추진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교육제도와 직업훈련방식을 경제 및 생산구조 변화에 맞춰 보다 실용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
중소기업의 혁신을 직접 자극하고 지원하는 정책도 필요하다. 우리 경제는 50년의 개발 역사를 갖고 있고, 경제성장 과정에서 직접 기업현장을 경험한 인력들도 많다. 중국이나 아세안 국가가 모방할 수 없는 이런 인재들의 지식파워에 주목해야 한다.
산업단지에서는 갓 퇴직한 현장전문가를 ‘기업주치의’로 선정해, 중소제조기업에 ‘금융+기술+경영’을 종합한 혁신능력을 전수하는 사업을 IBK기업은행과 함께 지난 2년간 벌여왔다. 현재 퇴직한 전문가는 노동시장이나 지식시장에서 얼마든지 활용이 가능하고, 경쟁이 치열하지 않다는 점에서 중국이나 아세안과 차별화되는 ‘블루 맨파워(blue manpower)’다.
‘블루 맨파워’는 외국인근로자를 많이 쓰고 있는 중소 제조기업의 발전에도 유용한 정책수단이 될 수 있다. 고용 5~30인 중소기업은 대부분 외국인의 고용 없이는 생존이 불가능한 상황인데, 이들 기업의 혁신능력 향상과 경영안정을 위해서는 기존의 중소기업 지원수단을 넘어선 현장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의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산업단지별로 업종과 제품 상황에 맞춰 혁신전문가를 투입하는 이 방식은 큰 재정부담 없이 실행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단기적으로는 고용문제, 고령화 과제를 해결하고 중소기업의 발전을 도모하는 일석삼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퇴직하는 전문 인력 ‘블루 맨파워’와 중소기업 혁신, 새해를 장식할 지속성장의 키워드다.
김경수 한국산업단지공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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