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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가 정권말 추진했던 공기업 민영화가 잇따라 좌초했다. 경제 논리보다 정치 논리에 휘둘린 탓이 크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더라도 민영화는 순탄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불황 탓에 큰 물건을 사겠다고 나서는 기업들이 줄고 있어서다.
◆대형 M&A 줄줄이 무산..정치 논리탓
20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올해 정부나 공기업이 주도했던 대형 인수·합병(M&A)은 모두 실패하거나 유찰을 거듭했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매각은 유력 후보인 대한항공의 중도 포기로 유찰됐다. 쌍용건설 매각은 4차례 유찰된 끝에 자산관리공사가 대주주 지분(구주) 매각을 포기했다. 우리금융지주 매각은 올해 세번째로 추진됐지만 경쟁 구도를 만들지 못해 무산됐다. 산업은행(산은금융지주) 기업공개(IPO)와 인천공항공사 지분 매각도 국회 동의를 얻지 못해 내년 이후로 미뤄졌다.
이에 대해 “정권말 민영화가 어렵다”는 해석이 일반적이다. KAI 매각은 본입찰 전날 유력 대선 후보들의 민영화 반대 입장이 유력 후보(대한항공)의 입찰 포기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전해진다. 우리금융지주 매각이 무산된 것도 예비입찰 직전 한나라당 대선 캠프가 KB금융지주에 부정적인 입장을 전달한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금융권은 KB금융의 ING생명 인수가 무산된 배경에도 선거 탓이 있다고 보고 있다. KB금융은 공기업은 아니지만 뚜렷한 주인이 없어 정부 눈치를 보기때문이다.
◆셀러 마켓에서 바이어 마켓으로 패러다임 전환
다른 해석도 있다. 국내외 시장의 변화가 인수·합병(M&A) 시장에 본격적으로 반영되고 있다는 것이다. 박종욱 다이와증권 IB대표(전무)는 “2000년대 셀러(매각자) 마켓이 최근 바이어(인수자) 위주의 시장으로 급속히 재편되고 있다”고 말했다. 물건을 사는 쪽보다 파는 쪽이 많아지다 보니 사는 쪽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는 논리다.
윤창현 금융연구원장도 “바이어(인수자)가 없는 현실때문에 제값을 받고 팔기는 어렵다”며 “정부나 정치권의 책임을 따지기 전에 시장 상황을 면밀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 2008년 이후 글로벌 금융위기와 유럽발 재정위기를 거치면서 승자의 저주를 목격한 대기업들은 대형 M&A에 소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웅진코웨이나 STX팬오션처럼 구조조정 차원에서 핵심 계열사를 파는 기업들까지 나오고 있다. 임유철 H&Q AP코리아 대표는 “내년부터 비핵심 계열사를 정리하려는 기업들의 움직임이 활발해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산업은행 고위 관계자는 “대우조선해양은 현재 관심을 갖는 기업이 전혀 없어 언제 매각을 재개할 수 있을 지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산업은행은 대우조선 지분 31.3%를 소유한 최대주주다. KAI 민영화도 원점에서 재검토되거나 상당기간 미뤄질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금융 공기업 민영화 당분간 올스톱?
금융 공기업은 금산분리와 은행법상 각종 지배구조 규제로 인수 후보자를 찾기가 더욱 어렵다. 이명박 정부가 추진했던 공기업 민영화 중 가장 부진한 것도 금융 공기업들이다. 기획재정부가 이명박 정권초 발표한 1~3차 공공기관 선진화 계획에 따르면 산업은행과 기업은행(자회사 포함) 등 금융 공기업 7개와 우리금융 서울보증보험 대우증권 등 공적자금 투입기업 3곳 등 총 10개 금융사의 민영화를 계획했지만 5년간 민영화가 진행된 곳은 한곳도 없었다. 특히 우리금융은 시가총액이 10조원에 육박할 정도로 덩치가 커 인수 후보군이 더 제한된다.
윤 원장은 “(너무 커서)살 사람이 없다면 쪼개 파는 부문도 고민할 때가 됐다”며 “특히 내년은 은행 산업 전반이 좋지 않아 매각을 당분간 연기하는 것도 현실적인 해법”이라고 말했다. 산업은행 민영화는 여야 정치권이 모두 소극적이기때문에 새 정권에서 재검토가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송두한 농협경제연구소 금융연구실장은 “국내 금융시스템상 우리금융과 산업은행을 국내 은행들이 인수하기 어려워 차기 정권에서도 민영화가 잘 될 것이란 보장이 없다"며 "우선 정부 소유 은행의 효율성과 생산성을 높이는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좌동욱/안대규 기자 leftk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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