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적으로 美 수출시장은 위축
박현수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hspark@seri.org>
미국 정치권이 마침내 재정절벽 협상을 타결했다. 이번 합의의 핵심은 부유층 증세다. 연소득 기준으로 부부합산 45만달러, 개인 기준 40만달러를 넘는 소득에 대해서는 소득세율을 35%에서 39.6%로 올리기로 한 것이다. 이는 2012년 말로 종료된 소득세 감면조치를, 고소득층을 제외한 계층에 대해서만 다시 감면해 준 데 따른 것이다. 그 밖에도 이번 협상안에는 500만달러 이상 상속재산에 대한 상속세를 35%에서 40%로 인상하고, 경기부양 수단의 하나로 도입되었던 장기 실업수당 지급을 1년 연장하는 조치 등이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협상의 다른 한 축인 재정지출 축소 문제에는 별 진전이 없어, 올초부터 발효될 예정이던 재정지출 강제감축 조치는 2개월 유예하여 협상시간을 버는 데 그쳤다.
이번 협상 타결로 미국은 국내총생산(GDP)의 5%에 가까운 규모의 재정긴축이 미국 경제를 다시 침체에 몰아넣을 수 있는 위험은 일단 피하게 되었다. 지난해 초부터 제기되었던 재정절벽 위험은 국제통화기금(IMF)도 우려할 만큼 미국은 물론 세계 경제에 큰 위협요인이 되어 왔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 직후 가장 먼저 부유층 증세를 강조하면서 재정절벽 협상에 나선 것도, 민주당과 공화당이 당초의 입장에서 달라진 협상안에 불만을 표시하면서도 결국 합의를 수용한 것도 재정절벽의 충격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합의로 모든 문제가 깨끗이 정리된 것은 아니다. 먼저 협상의 두 축 가운데 하나인 재정지출 문제에는 진전이 없다. 2개월의 시간을 벌었지만 재정지출에 대해서도 양당의 이견이 크기 때문에 협상은 험난할 것이다. 재정지출의 핵심 이슈는 복지지출이다. 오바마 대통령과 민주당은 개혁의 핵심인 의료개혁을 지속 추진하기 위해 복지관련 지출을 가급적 유지하고 싶어하지만, 오바마케어에 반대하는 공화당은 복지지출 축소를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다 중요한 것은 재정절벽을 회피하기 위해 인하된 세율을 유지하고 정부지출 감축 규모를 줄이는 정책은 미국의 재정건전성 회복을 지연시킬 것이라는 점이다. 지금처럼 재정문제가 부각된 것은 금융위기 이후 재정적자와 정부부채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재정절벽 협상으로 재정건전성 회복은 늦추어질 수밖에 없다. 미국 의회예산국의 분석에 따르면 이번 합의안으로 미국의 재정수지 적자는 향후 10년 동안 4조달러 가까이 더 늘어날 전망이다. 추가 협상을 통해 재정지출 감축 규모를 줄이면 재정적자는 더 커질 것이다. 결국 장기적인 재정건전성을 희생하는 대가로 단기적인 경기급락을 모면한 것이다.
한편 이번 합의를 두고 정치권의 지도력에 대해서는 심각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종합적인 합의안이 아닌 소위 ‘스몰딜’도 마감시한인 지난해 말까지 타결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도 계속될 재정 건전화 요구와 2월로 협상시한이 다가온 연방정부 채무한도 증액협상 등 산적한 난제들을 보면 앞으로 세금이나 예산 등 재정정책을 둘러싼 불협화음과 불확실성도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
재정절벽 협상이 타결되었다고 해서 미국 경제가 당장 좋아지는 것도 아니다. 합의는 긴축 규모를 줄인다는 것이고, 결국 저강도의 재정긴축은 지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재정절벽 협상 타결로 세금이 당장 늘어난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금융위기 이후 경기부양 정책의 일환으로 급여에서 원천징수하는 사회보장세를 한시적으로 2%포인트 인하했는데 이번 협상에서 급여세율이 다시 환원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미국 시민들은 1월부터 세금이 늘어나고 이에 따라 가처분소득이 감소한다. 이는 미국 GDP의 70%를 차지하는 가계의 소비지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아직 세금정책이나 정부지출 등 재정정책이 완전히 확정된 것도 아니어서 불확실성이 투자와 소비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좀 더 길어질 것이다. 재정절벽 협상 타결에도 불구하고 수출환경의 빠른 호전은 기대하기 어려워 수출기업의 어려움이 좀 더 길어질 전망이다.
박현수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hspark@ser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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