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이슈 찬반토론] 중1 시험 폐지하는 게 옳을까요

입력 2013-01-04 10:37  

  "성적 경쟁보다 진로 고민할 수 있게 해야"

반  "학력 저하되고 과외 의존도 높아질 것"

지난해 말 당선된 문용린 신임 서울시 교육감이 내건 ‘중1 시험 폐지’ 공약 실현 여부가 최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문 교육감은 선거 공약으로 중학교 1학년 시험폐지를 약속했는데 일단 일부 학교를 대상으로 폐지한 뒤 이를 점차 확대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그의 이런 공약에 대해서는 찬반양론이 팽팽하게 갈려 있다. 전례가 없는 문 교육감의 이같은 파격적 발상에 대해서는 “성적 경쟁을 지양하고 진로를 조기에 탐색할 기회를 준다”는 찬성론도 있지만 “학력저하가 우려되며 사교육을 조장할 수 있다”며 반대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흥미로운 것은 문 교육감이 보수성향이지만 중1시험 폐지에 대해서는 보수단체들은 반대하는 반면 진보 진영은 찬성하는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점이다. 특히 그의 이런 방침은 중학교에 진로탐색을 위한 ‘자유학기제’를 도입하겠다는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공약과도 유사한 부분이 있어 더욱 관심을 끌고 있다.

찬성

문용린 교육감은 “중1은 초등교육을 끝내고 교과 위주의 중ㆍ고교 학습을 시작하는 중요한 단계”라며 “이때 학생들이 성적 경쟁을 시작하는 대신 진로 계획을 고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시험 폐지를 내걸었다. 지필고사 대신 서술형·수행·실기실습 평가 등으로 평가를 다양화하고 평가 등급도 6단계(A~F)로 간소화해 학생들의 부담을 줄여준다는 구상이다. 다만 전면 시행보다는 학교 자율로 단계적으로 시행하고 1년 6개월 남짓한 짧은 임기를 고려해 후임 교육감이 발전시킬 수 있도록 ‘씨앗 뿌리기’ 정도로 추진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배성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학력 저하와 사교육 확대 등 부작용보다는 학생들이 제때 진로를 정하지 못해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이 더 크다는 점을 생각해봐야 한다”며 시험 폐지에 찬성하는 입장이다.

전교조는 문 교육감의 이런 방침에 대해 찬성한다는 입장이다. 손충모 전교조 대변인은 “학생들이 자기 진로와 적성을 탐색할 수 있는 시간을 두겠다고 하는 것은 굉장히 의미 있는 시도”라며 찬성 입장을 밝혔다. 또 다른 전교조 관계자는 “중1 시험 폐지 정책 취지에 공감한다. 학생들에게 ‘노는 학년’으로 인식되지 않도록 실제로 도움이 될 수 있는 교육과정을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문경민 좋은교사운동 정책위원장도 “중1 시험 폐지 정책이 중학교에 갓 올라온 학생들의 충격을 줄여주는 면이 있고, 문 교육감이 주요하게 내건 공약인 만큼 신뢰를 잃지 않기 위해서라도 추진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반대

문 교육감을 적극 지지해 온 최대 교원단체인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중1 시험 폐지에 대해서는 반대 입장을 공식화하고 나섰다. 한국교총은 “공약 실현방안의 구체성이 부족한 것은 차치하더라도 학력저하 문제와 또다른 과외시장 확대 가능성, 직업체험을 위한 사회 인프라 미비 등을 이유로 정책 실효성에 대한 교육계의 우려가 크다”고 설명했다. 김동석 한국교총 대변인은 “학원에서 학생들의 평가수준 부분을 확인하려고 하는 학부모의 요구도 있을 수도 있기 때문에 학교의 기능이 약화된다는 우려도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의 한 중학교 교장은 “학부모들이 자녀의 학업성적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쏟기 시작하는 중 1때 학교에서 시험을 보지 않는다면 학교가 공부를 시키지 않는 것으로 보고 성적이 떨어질 것이라고 우려하게 될 것”이라며 “결국 학원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걱정했다.

중1 시험 폐지가 교육감 권한만으로 시행이 어렵다는 현실적인 문제를 들어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교육과학기술부 훈령인 ‘학교생활기록 작성 및 관리지침’은 학생들의 교과학습에 대한 평가를 지필평가(필기시험)와 수행평가(논술ㆍ구술ㆍ실기ㆍ실험실습 등)로 구분해 실시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그런 만큼 교과부 장관의 협조를 얻어 훈령을 고치지 않으면 교육감 권한만으로 중간ㆍ기말고사를 폐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생각하기

현행 교육제도가 지나치게 대학입시 위주이고 학생들을 어릴 때부터 지나치게 경쟁으로 몰아 넣고 있다는 데 이견을 제시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막상 중·고등학교 교과과정을 개선하려면 생각 만큼 쉽지 않은 것 또한 사실이다. 공부에 지친 아이들에게 한숨 돌릴 시간을 주고 스스로의 적성을 찾아줄 필요가 있다는 데 대해서도 반대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역시 구체적인 방법론에 들어가면 실천이 쉽지 않은 게 대부분이다. 중1 시험 폐지를 둘러싼 찬반 논란도 그런 대표적인 케이스다.

중요한 것은 시험 폐지 여부 자체를 둘러싼 찬반보다는 아이들이 시험에만 매달리지 않도록 어떻게 현실적으로 제도를 바꾸느냐다. 시험을 줄이거나 없앤다는 장기 목표에 대해서는 사실상 국민들 사이에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구체적으로 어떤 일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결정하는 게 순서라는 얘기다. 그리고 이 문제는 서울시 교육감과 교과부 장관 뿐 아니라 범 정부적 기구, 정치권까지 포함된 다양한 사람이 참여하는 기구를 만들어 여기서 충분한 시간을 갖고 논의해야 한다고 생각된다. 중1 시험 폐지는 단순히 중학교 교과과정 뿐 아니라 고등학교 교과과정과 대학입시까지도 연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교육분야 여러가지 공약을 했다. 공약을 지키는 일은 중요하다. 하지만 중1시험 폐지 논란을 계기로 각계 각층의 국민들이 참여하는 교육대토론회도 갖고 이를 토대로 교육제도 전반에 대한 총체적 점검과 제도개선을 본격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김선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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