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노동자 죽음이 타살인가

입력 2013-01-13 16:54   수정 2013-01-14 04:38

< 윤기설 한경좋은일터연구소장노동전문기자 upyks@hankyung.com >


노동계를 비롯한 좌파세력의 지지를 받으며 탄생한 노무현 정권 때는 아이로니컬하게도 노동운동가들의 자살이 줄을 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당선 이후 친노동계 발언을 쏟아내며 노·정 간의 밀월관계를 이끌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땐 모 전문위원이 “동일노동·동일임금은 현실적으로 도입하기 힘들다”는 노동부 업무보고에 대해 “대통령 공약과 다르다”고 비판하며 책상을 걷어차고 회의장을 나갔을 정도다.

노 전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 한국노총을 방문, “재임기간 노사 간 힘의 불균형을 시정하겠다”고 말해 노동계로부터 박수갈채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노동자들의 죽음은 늘어만 갔다.

'손배 가압류' 자살이유 안돼

2003년 1월 두산중공업 배달호 노조원의 분신자살을 신호탄으로 시작된 노 정권의 ‘죽음의 굿판’에는 10여명의 노동자들이 합세해 ‘삶의 멍에’를 던졌다. 이들 대부분은 민주노총 소속으로 대기업 노조원과 하청노동자가 많았고, 학습지 교사와 골프장 캐디 등도 섞여 있었다.

이들은 왜 자살을 선택했을까. 다양한 이유들을 달고 있다. 배씨는 유서를 통해 “회사 측의 과도한 손배·가압류 때문에 생활이 어렵다”고 자살 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회사 측은 개별 노조원의 손배 가압류는 풀어주기로 노조와 의견접근을 본 상태여서 가압류 문제가 배씨 죽음의 직접적 이유가 아니라고 맞섰다. 노조도 나중에 “가압류는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회사의 노조 탄압이 죽음을 불렀다”고 한 발 물러선 모양새를 취했다.

2003년 10월 35m 높이의 대형 크레인에서 홀로 129일 동안 고공농성을 벌이다 로프에 목을 매 생명을 던진 한진중공업 노조 김주익 위원장의 자살 배경도 논란이 됐었다. 노동계에선 회사 측의 손배 가압류 등을 자살동기로 들었지만, 회사 측은 손배 가압류는 노조간부 개인보다는 노조 전체에 물리는 성격이 강한 만큼 협상을 통해 충분히 풀 수 있다고 밝혔다. 대부분 면죄부가 주어져 노조 간부 개인을 죽음으로 몰 정도로 압박을 주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개인의 부채나 우울증 등도 노동운동가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요인으로 꼽혔다.

'피터팬 신드롬' 벗어나야

18대 대통령 선거가 끝난 뒤 노동자들이 잇따라 목숨을 끊었다. 지난해 12월21일 죽은 한진중공업 노조 간부 최강서 씨는 휴대폰에 남긴 메모에서 ‘박근혜가 대통령 되고 5년을 또…. 못하겠다’고 적었다. 씁쓸한 죽음이다. 이어 현대중공업의 하청해고노동자 이운남 씨(22일), 한국외국어대의 이모 노조 위원장(25일) 등이 잇따라 자살했다. 얼마 전에는 쌍용차 평택공장 조립2라인에서 독립 노조인 쌍용차노조 소속 직원이 자살을 기도해 충격을 주고 있다. 뇌사상태에 빠진 그는 유서에 쌍용차 사태에 대한 정부의 안일한 대책, 정치권에 대한 원망, 해고 노동자들의 집단적 행동으로 인한 불안감 등에 대한 심경을 담았다.

대선 이후 정신적 아노미(혼돈) 상태를 느끼는 노동단체들은 노동자들의 자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것처럼 비쳐진다. 박근혜 후보의 당선이 마치 노동자들의 죽음에 불을 지른 것처럼 분위기를 몰아가고 있다. 노동계도 이제 성숙해지고, 책임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피터팬 신드롬’에서 벗어나 경제의 한 주체로서 자살 방지를 위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언제까지 불법 파업이나 부추기며 자살 방조자로 남아 있을 것인가.

< 윤기설 <A>한경좋은일터연구소장노동전문기자 upyks@hankyu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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