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가는 시인 프랜시스 스콧 키가 1814년 독립전쟁 당시 영국의 공격에도 꿋꿋이 성조기가 펄럭였던 매킨리 요새를 보면서 만든 것이다. 가사 1절에는 ‘로켓의 붉은 섬광(rocket’s red flare)’이란 구절도 나온다. 당시 영국군이 쏘아대던 로켓의 위력이 대단했던 모양이다.
학자들은 로켓의 유래를 중국이 몽고군과의 싸움에서 사용한 화전(火箭·불화살)에서 찾는다. 유럽에서 화약 로켓이 처음 등장한 것은 13세기 중반으로 추정된다. 주로 불꽃놀이용이거나 무기로 사용됐다. 각국이 앞다퉈 로켓 개발에 나서 나폴레옹 시절 워털루 전투에서는 15km나 나가는 화약 로켓이 등장하기도 했다. 물론 정확도는 떨어졌다.
현대 로켓 개념을 고안한 과학자로는 러시아의 콘스탄틴 치올콥스키(1857~1935)가 첫손에 꼽힌다. 그는 엄청난 속도를 내는 로켓으로 우주를 개척하는 연구를 본격적으로 수행했다. 특히 1895년 파리에 세워진 에펠탑에서 영감을 얻어 오늘날 로켓 발사와 같은 원리를 생각해냈다고 한다.
로켓 발사를 다단계로 나눠 추진력을 계속 올리면 대기권을 뚫고 우주로 나갈 수 있다고 여긴 것이다. 그는 이와 관련한 수학적 공식을 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우주를 인류의 식민지로 생각하는 등 우생학적 주장을 펴 비판을 받았다.
미국에서는 로버트 고다드 박사(1882~1945)가 1926년 3월 액체산소와 가솔린을 이용한 액체로켓을 매사추세츠주 어번들판에서 2.5초 동안 높이 56m로 쏘아올렸다. 1937년에는 고도 2590m의 도전에도 성공했다. 비록 100km 이상의 빠른 로켓에는 실패했지만 그의 실험은 우주 로켓공학이 태동하는 계기가 됐다. 정작 그의 연구에 흥미를 가진 것은 나치 독일이었다. 독일 과학자 베르너 폰 브라운(1912~1977)은 고다드의 이론을 참조해 전시에 쓰인 V2 미사일을 개발하기에 이르렀다. 브라운은 2차대전 이후 미국에 망명해 달 우주선에 쓰인 새턴 로켓 개발에 참여하기도 했다. V2 미사일은 이후 미국을 비롯한 현대 군사로켓의 모델이 되고 있다.
우주 로켓 나로호가 100kg급 나로 과학위성을 고도 302km의 지구 궤도에 올려놓는 데 성공했다. 고다드의 실험 이후 87년 만이다. 하지만 액체로켓을 자체적으로 개발하지 못하고 러시아의 기술을 사용한 것이 아쉽다. 그래서 절반의 성공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그래도 우주발사장이나 발사대, 인공위성의 우주궤도 안착 등은 큰 성과다. 국내에서도 이제 우주개발 시대가 열리는 모양이다.
오춘호 논설위원 ohc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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