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과 맛있는 만남] 도용환 회장 "돈에는 늘 유혹 따라다녀…직원들에게 독하게 굴었죠"

입력 2013-02-01 17:29   수정 2013-02-01 23:40

도용환 스틱인베스트먼트 화장

1조 넘는 사모펀드 굴리지만 돈에 관해서는 누구보다 엄격
작년 암 수술로 고비 맞아 "회장없어도 회사 잘 돌아가니 처음엔 좀 서운하더군요"




1998년 5월. 필리핀 마닐라에 있는 아시아개발은행(ADB) 본사 사토 미츠오 총재실. 한국 중년 남자가 홀로 나타났다. 그가 내놓은 명함은 스틱(STIC)투자자문 대표. 인사를 마치자마자 대뜸 “투자 좀 해 주십시오”라는 말을 꺼냈다. 이어 외환위기 이후 한국 상황과 자신의 운용계획을 설명했다. 외환위기를 겪고 있는 한국에서, 그것도 듣도 보도 못한 투자자문사 대표의 당돌한 요청에 사토 총재는 헛 웃음으로 답했다.

주인공은 도용환 스틱엔베스트먼트 대표(56)였다. “신한생명을 그만두고 자문사를 차렸는데 장사가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무조건 사토 총재를 찾아갔죠. 사토 총재로서는 황당하기 짝이 없었을 겁니다.”

그로부터 14년. 스틱은 벤처캐피털을 거쳐 사모펀드(PEF)로 변신하며 업계의 리딩컴퍼니로 올라섰다. 꾸준한 수익률로 연기금이 가장 좋아하는 회사가 됐다. 한국경제신문이 제정한 ‘제4회 IB(투자은행) 대상’에서 ‘베스트 PEF’로도 선정됐다. 혈혈단신으로 ADB 총재를 찾아갔던 배짱과 실패를 최소화하는 운용 시스템, 최고경영자(CEO)부터 솔선수범하는 조직문화 구축이 그 비결이었다.

○암을 이겨낸 도전정신

체중 62㎏의 깡마른 체격, 꼬장꼬장할 것만 같은 외모, 된장에 채소 반찬 위주로 먹을 것 같은 도 회장이 소개한 곳은 의외로 고깃집이었다. “평소엔 육식 잘 안해요. 여긴 몸보신하고 싶을 때 옵니다. 갈비탕이 1만5000원인데, 돈이 아깝지 않습니다.” 서울 역삼동 버드나무집은 소고기 주물럭과 오징어를 숯불에 구워내는 게 별미였다.

도 회장이 건강에 신경 쓰는 데엔 이유가 있다. 지난해 7월 암 진단을 받아 꽤 큰 수술을 받아야 했다. 한창 땐 폭탄주 40잔을 너끈히 마셨던 그다. “건강하다고 자부했는데 건강검진에서 덜컥 전립선암이 발견됐어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다행히 목숨에 지장 있는 정도는 아니었고, 예전 몸 상태를 서서히 회복하는 중입니다.”

병마와 싸우던 5개월, 도 회장은 많은 걸 배우고 느꼈다. 회장 없어도 회사가 잘 돌아가는 걸 보곤 뿌듯했다. “처음엔 서운했는데 스틱이 어느 정도 반석 위에 올랐구나라는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습니다.”

사람을 대할 때도 한층 부드러워졌다. “치열하게 사셨던 분들 대부분이 그렇겠지만 저도 독하게 살아 왔습니다. 부하 직원들한테도 속된 말로 지랄 좀 했죠.”

한 번은 이런 일화도 있었다. 14년 전인 1999년 스틱IT벤처투자로 변신해서 얼마 안됐을 때의 일이다. 일요일 밤 12시에 자금 출납을 담당하는 상무를 급히 호출했다. 가타부타 말도 없이 도 회장은 “캐비닛 다 열어”라고 지시했다. 그가 신한생명에서 자금운용을 담당했을 때부터 ‘애용’하던 속칭 ‘금고털이’의 시작이었다.

“담당 상무가 그 자리에서 웁디다. 창업을 함께한 자기를 못 믿겠냐는 거예요. 이건 믿고 안 믿고의 문제가 아니라고 얘기하고 결국 캐비닛을 다 뒤졌죠.” 다행히 문제될 만한 건 아무것도 안 나왔다. 도 회장은 이렇게 가끔씩 ‘광기’를 부리며 돈에 따라붙을 부정의 냄새를 접근조차 못하게 막았다.

이야기꽃이 피어오를 무렵, 참숯으로 달궈진 불판 위에 버드나무집의 자랑인 소고기 주물럭이 올라왔다. 달짝지근한 양념냄새와 숯 향이 연기와 함께 피어 올랐다. 잘 익은 주물럭은 쫄깃쫄깃한 식감이 고스란히 살아있는 데다 양념이 소고기 특유의 느끼한 맛을 잡아줬다.

○자신에게 더 엄격한 ‘두목’

직원들에게만 엄격한 게 아니었다. 자신에게는 더 엄격했다. 그에겐 아들이 두 명있다. 그는 일찌감치 아들들에게 “스틱에 발을 들여놓을 생각은 하지 마라”고 못을 박아놨다. 뿐만 아니다. 도씨 성을 가진 사람도 채용하지 않기로 했다. 사적 감정에 얽매일 수 있는 계기를 아예 차단해 버리기 위해서였다.

“거, 조폭의 두목 아세요. 아무나 두목하는 게 아닙니다. 스스로에게 엄격하지 않으면 리더십을 잃고 맙니다. 조직도 무너지고요.”

그랬다. 그는 ‘두목론’에 충실했다. 그는 돈의 양면성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벌면 벌수록 좋긴 하지만, 과시하고 남용하면 주인을 몰락시킬 수도 있다는 걸 말이다. 신한생명에서 근무할 때는 자금을 굴리는 ‘슈퍼 갑’이었지만 오히려 ‘을’들을 챙겼다.

“증권사 직원들이 자기들 창구를 이용해달라고 영업을 오곤 했어요. 그 사람들 괄시받는 일이 허다했죠. 저는 도리어 차도 타주고, 선물도 줬어요. 인생은 새옹지마라고, 나중에 어떻게 될지 누가 압니까. 신한생명을 뛰쳐나와서 스틱을 창업했을 때 그분들이 참 많이 도와줬습니다.”

도 회장의 꼬장꼬장한 경영 철학은 스틱을 창업한 뒤에 기관투자가들로부터 자금을 받으러 다닐 때 효과를 발휘했다. “예전엔 기관 자금하고 회사 투자 자금(고유계정)을 잘 구분하지 않았습니다. 1999년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창투사로 명함을 내밀 때 기관들이 우리를 도둑 보듯이 하더라고요. 스틱은 철저히 계정을 분리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차별화를 꾀한 거죠.”

○대출 없이 20% 수익 내는 비결은 시스템

스틱은 투자를 집행할 때 은행 대출을 쓰지 않기로 유명하다. 그런데도 지난해 스틱이 청산한 펀드의 수익률은 20%를 웃돌았다. 연기금 등 기관투자가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다. 아무래도 그 비결이 궁금했다.

“레버리지요? 우리도 유혹을 받죠. 잘되면 이익을 몇 배나 부풀릴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 반대도 생각해야죠. 잘못되면 손실도 몇 배로 커지지 않습니까. 우리는 그런 투자는 안 합니다. 투자대상을 선정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시스템을 구축해 몇 번이나 걸러서 위험을 최소화합니다.”

비결은 시스템이었다. “개인의 잘못된 판단이 끼어들지 못하도록 구축한 시스템 덕분에 꾸준하고도 높은 수익률을 올릴 수 있었다”는 설명이었다.

이런 노하우는 그의 경험에서 나왔다. 도 회장은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긴 했지만 고생을 꽤나 했다. 부친이 사업을 하다가 실패해 가산이 한꺼번에 사라지는 아픔도 겪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들어간 첫 직장은 제일투자금융이었다. “그때 당시 연봉이 6000만원이었어요. 정말 많이 받았습니다. 열심히 살긴 했는데 단자회사가 하는 일이라는 게 특별히 바쁠 것도 없었어요.”

"베트남 등 6곳에 사무소…아시아 기업 사들여야죠"

그래서 새로운 경험에 도전했다. 신한연구소가 만들어질 때 가장 먼저 자원했다. 연구소에서 대학원까지 등록해 요즘 말로 업종 애널리스트로 명성을 날렸다. 신한생명이 만들어질 때는 다시 손을 들고 그리로 옮겨 갔다. 신설 보험사였지만 거칠 게 없었다.

“제가 잘나서 일을 잘하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신한생명을 그만두고 나니 그게 아니란 걸 깨달았습니다. 신한금융그룹이라는 브랜드에 잘 짜여진 조직이 있어서 제가 신바람내며 일하는 게 가능했습니다. 잘못될 가능성을 차단해 주는 시스템이 있다 보니 개인의 능력도 극대화된다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토종 PEF의 전성기 온다

소고기 주물럭이 불판에서 사라질 즈음, 도 회장은 종업원을 불렀다. “여기 내가 자주 먹는 오징어 좀 내와요.” 빨간 고추장 양념소스를 흠뻑 머금은 오징어가 숯불 위에서 춤을 췄다. “다른 건 안 먹어도 이 집에 오면 이 오징어는 꼭 맛보고 간다”며 오징어 주물럭에 대한 애정을 과시했다.

새 메뉴도 나왔으니 화제를 벤처기업 얘기로 돌렸다. 때마침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미래창조과학부를 만들고, 벤처기업 활성화를 화두로 내건 터였다. 도 회장은 정보기술(IT) 버블, 벤처 붐 등을 고스란히 시장에서 경험했고 2008~2011년에 벤처캐피탈협회장을 지냈다.

“20년, 30년 후를 내다보는 벤처 생태계 구축이 필요합니다.”

스틱을 반석 위에 올려 놓은 요즘도 도 회장은 온통 미래에 관심이 쏠려 있다. “한국을 넘어 아시아에서 돈을 모아 아시아 전역의 기업에 투자하는 게 목표입니다. 홍콩 상하이 타이베이 호찌민과 미국 실리콘밸리에 사무소를 두고 있고, 여섯 번째로 얼마 전 자카르타에도 열었습니다. 회사의 연간 매출이 300억원인데, 이 중 50억원을 해외 사무소 운영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도 회장은 2004년 사우디아라비아로부터 1200만달러의 투자금을 유치하며 국내에서 처음으로 중동자금을 유치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2시간 넘게 인터뷰가 이어질 무렵, 도 회장은 “아이고 그만하고 밥 먹읍시다”고 말했다. 후식으로는 찰기 넘기는 물냉면을 추천했다. 그에게 소원 하나만 말해달라고 물었다. “스틱을 명품 브랜드로 만들고 싶습니다. 자본 시장에서 의미를 남기고 역사가 됐으면 해요. 그래서 공부도 많이 하고 사람도 더 많이 만나고 있습니다. 죽음이란 상대방의 기억에서 사라지는 것이라고 하잖습니까. 브랜드가 남으면 저도 그 속에서 기억될 겁니다.”

은정진/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도용환 회장의 단골집  버드나무집 등심 주물럭·점심 한정 판매 갈비탕 인기

서울 역삼1동에 있는 버드나무집 역삼점은 1977년 서초동에서 시작한 본점과 우면점에 이어 2007년 서울시내에 세 번째로 문을 연 한우요리 전문점이다.

이곳의 모든 소고기는 1++등급 암소만 사용하고 있다. 자체 개발한 천연 특제 양념으로 등심을 재운 뒤 수일간 숙성시켜 맛을 낸 한우 주물럭과 연한 암소갈비에 칼집을 내 양념 간이 깊게 배어 있는 왕갈비가 인기 메뉴다.

구이용 화로는 화력이 은은하고 오래가는 데다 고기 안에 향이 잘 스며드는 국내산 참숯을 쓴다. 주 메뉴인 소고기 외에 더덕튀김, 고추장 양념게장, 특제소스 등 밑반찬도 풍성하다.

특히 이곳은 점심시간 전인 11시30분부터 한정수량만 판매하는 갈비탕으로도 유명하다. 푸짐한 양과 깔끔한 맛에 외국인도 많이 찾아 30분 안에 한정된 갈비탕이 동날 정도다. 1인분(140g) 가격은 소갈비 4만5000원, 주물럭 4만5000원, 생등심 4만9000원, 안창살 5만4000원, 특등심 5만4000원, 갈비탕 1만5000원, 물냉면 8000원이다. (02)2088-3392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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