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광역 지방자치단체에 2020년 ‘장기 미집행 도시계획시설 일몰제’ 시행을 앞두고 비상이 걸렸다. 도로, 공원 등 도시개발을 위해 행정적으로 묶어놓은 사유지가 이때부터 잇따라 해제되면서 사전 지정한 사업을 위해서는 보상이나 매입을 해야 하지만 막대한 예산 때문에 각 시·도는 엄두를 못 내고 있다. 그나마 살림이 나은 서울시는 2020년까지 6조원을 투입한다는 보상계획을 최근 들어 세웠지만 이 정도로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시, 1차 6조원 마련에 나서
3일 한국경제신문이 입수한 서울시 문건에 따르면 시는 2020년까지 도심 공원 조성 예정지 및 난개발이 우려되는 장기 미집행 도시계획시설 가운데 사유지 10.6㎢에 대해 6조2161억원으로 1차 보상을 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시는 이달 중순께 태스크포스를 구성, 구체적인 보상 계획을 논의해 내년부터 보상예산을 특별회계에 반영할 예정이다.
서울시가 이 같은 보상계획을 마련한 건 2020년부터 도시계획시설 결정 후 10년이 지난 장기 미집행 시설의 경우 효력이 자동 상실되는 ‘도시계획시설 자동 실효제’가 시행되기 때문이다. 정부는 장기화되는 미집행 도시계획시설로 인한 개인 재산권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지난해 국토계획법을 개정했다. 이에 따라 각 지자체는 예정된 사업을 계속 추진하기 위해선 토지 소유자에게서 해당 부지를 바로 사들여야 한다. 장기간 도시계획시설로 지정해둔 채 사업을 계속 미루면 재산권 피해를 입은 소유주에게 보상을 해야 한다.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2011년 기준 전국의 장기 미집행 도시계획시설은 여의도 면적의 318배인 921.9㎢에 달한다. 이 중 70%가 넘는 660.9㎢가 사유지다. 지자체가 의욕적으로 도시계획은 세웠으나 열악한 재정 형편으로 예정된 사업을 추진하지 못하면서 사업예정지는 계속 늘어왔다.
○다른 시·도는 보상 엄두도 못 내
도시계획시설 일몰제가 7년 앞으로 다가왔지만 서울시 외 다른 지자체는 장기 미집행 계획시설에 대한 매입이나 보상 수단은커녕 매입비 규모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사업계획만 잔뜩 세웠을 뿐 재원 마련을 등한시해온 것이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지금 당장의 사업도 많은데 7년 뒤 일을 누가 지금 고민하겠나”고 털어놨다.
먼저 보상계획 마련에 나선 서울시조차 현재 계획은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시 안팎에서 나온다. 서울시의 보상계획은 지난해 9월 시의회 정기회기 당시, 박원순 시장과 시의원 간 질의응답 때 시작됐다. 서울의 장기 미집행 도시계획시설 중 사유지는 여의도 면적의 15배에 달하는 44.6㎢다.
시가 추산하는 총 보상비용은 공시지가와 최근 3년간 감정평가 평균에 근거해 최대 23조원으로 시의 한 해 전체 예산 규모다. 시 관계자는 “향후 몇 년 안에 갚아야 할 시의 감춰진 부채라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각 지자체는 전국시도지사협의회를 통해 중앙정부에 보상비 지원을 요구할 계획이다. 지자체 재정 여건을 고려해 일몰제 유예도 요청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정부는 보상비 지원에 난색을 표시하며 “일몰제 유예는 안 된다”는 입장이어서 지자체들과 중앙정부의 마찰도 예상된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
■장기미집행 도시계획시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도로, 공원,녹지 등 공공시설 건설을 위해 고시한 도시계획시설 중 10년 이상 사업이 진행되지 못한 시설. 도시계획시설로 지정되면 해당 토지 소유자는 보상을 받지 못한 채 토지를 원래 허용된 용도대로 이용할 수 없게 돼 재산권 행사가 제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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