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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사채 수요예측서 최대 물량 확보하기 위해
- "미리 소문 퍼지면 배정 물량 줄어"
"물량을 통째로 다 받아올 생각이었는데 200억원어치만 낙찰 받았습니다. 예상치 못하게 너무 많은 기관투자가들이 몰려서입니다. 진짜 투자할만한 기업은 이제 서로 쉬쉬하는 분위기입니다."(자산운용사 채권운용본부 임원)
자산운용업계에 투자 유망 기업에 대한 함구령이 떨어졌다. 회사채 수요예측제도 시행 이후 채권운용본부를 중심으로 나타난 새 풍속도다.
국내 채권시장은 장외 거래가 주를 이루고 있어 인간적인 유대관계가 투자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자산운용사는 거래가 많은 증권사 투자은행(IB)을 통해 관심 있는 회사채를 발행 전에 사전 매출하는 게 가능했다.
각 자산운용사의 채권운용본부 관계자 간 의견 교환도 활발했다. 기업의 기초체력(펀더멘털)에 대한 견해를 나누고 신용도 개선이 가능한 기업을 꼽기도 했다. 기업의 사업∙재무상태가 좋아져 회사채가 만기 전에 신용등급이 오르면 투자자는 시장에서 높은 가격에 되팔 수 있다.
작년 4월 회사채 수요예측제도가 시행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회사채 수요예측제도란 회사채 발행을 위해 기업과 주관사가 공모 희망금리 구간을 제시하고 기관투자가의 희망금리와 희망물량을 토대로 시장 수요를 파악해 최종 발행 조건을 결정하는 것이다.
사전 매출이 금지되고 투자하고 싶은 회사채는 수요예측에 참여해야만 물량을 배정받을 수 있게 됐다. 수요예측에 참여한 다른 기관투자가의 희망금리가 낮거나 기관투자가가 몰릴 경우 원하는 만큼 물량을 받기도 어렵다.
작년 9월 휴켐스 회사채가 대표적인 사례다. 휴켐스는 공장 건설 자금과 원재료 대금을 마련하기 위해 설립 이후 처음으로 회사채 발행을 결정했다. 신용평가사로부터 A+등급을 평가 받은 휴켐스는 3년 만기 500억원의 회사채를 발행키로 했다.
첫 발행인 데다 시장에서 익숙하지 않은 기업이라 수요예측 흥행은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500억원 모집에 2400억원의 자금이 몰렸다. 단순 경쟁률만 4.8 대 1로 집계됐다. 기관투자가의 큰 호응에 발행금리는 공모 희망금리를 한참 밑도는 수준에서 결정됐다.
이유는 일부 기관투자가를 중심으로 퍼진 휴켐스의 기업 가치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 때문이었다. 휴켐스는 국내시장에서 질산계 제품의 대부분을 독점하고 있다. 암모니아를 수입할 수 있는 업체가 별로 없고 폴리우레탄의 기초원료인 질산 생산능력이 좋은 업체도 드물어 휴켐스의 입지가 지속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수요예측제도 시행 이후 중형사의 투자 기회가 늘어난 반면 IB∙기업과 네트워크가 좋았던 대형사는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손해를 본다는 인식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운용 수익률을 높이려는 기관투자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어 신용도 개선이 점쳐지는 A급 기업에 대한 관심이 많다"며 "수요예측에서 투자 물량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시장에 이런 기업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미리 퍼지는 걸 원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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