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정민아 / 사진 오재철] 3주 간의 언어 연수(?)가 끝났다. 머무른 날 수 만큼 정도 많이 든 아티틀란 호수를 떠나 안티구아로 향했다. 사실 중남미 국가 중 스페인어를 제대로 배울 수 있는 도시로 더 잘 알려진 곳은 ‘안티구아(Antigua)’다. 우리도 원래 계획은 안티구아에서 언어를 배울 생각이었으나 시시각각 아름답게 변하는 아티틀란 호수의 매력과 먹고 살 걱정없이 싼 산 페드로의 파격적인 물가 때문에 일정이 변경된 것이다.
“어디, 스페인어 교육에 대한 인프라 구축이 얼마나 잘 되어 있는지 한 번 볼까?” 하는 마음으로 안티구아에 들어섰다. 확실히 스페인어 학교(학원)의 수도 많고, 규모나 시스템 측면에서도 역사와 전통이 오래된 곳이 많긴 했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학교에서 열심히 배운 스페인어를 써먹기에 안티구아의 상점과 거리의 사람들은 산 페드로보다 영어가 잘 통했다.
통해도 너무 잘 통했다. 산 페드로에서 영어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는 학교 학생들 밖에 없어서 호스텔 주인 아저씨와 간단한 대화를 나눌 때에도 매일 하루에 한 단어씩 늘었으니까. (결과적으론 산 페드로에서 스페인어 배우길 잘했다는 의견)
스페인어로 ‘안티구아(Antigua)’는 ‘오래된’이라는 뜻이다. 단어의 뜻처럼 과테말라의 안티구아는 ‘오래된 것’이 돋보이는 도시였다. 칠이 벗겨진 채 도시 군데 군데 서 있는 낡고 허름한 옛 건물들은 초라해 보일 법도 한데, 깔끔하기만 할 뿐 느낌 없는 신(新)식 건물들과 대조되어 오히려 깊고 고풍스러운 아우라를 뽐내고 있었다.
특히 도시 한 가운데 위치한 노란 빨래터와 안티구아를 상징하는 대표 건물인 노란 시계탑이 참 인상적이었다. 다만 이제는 다들 각자의 집에서 빨래를 하는지 안티구아에 머무는 동안 빨래터에서 빨래하는 사람을 한 명도 못봐서 조금 아쉬웠다.
웬만큼 시내를 둘러보았다면 안티구아를 떠나기 전 반드시 다녀와야 곳이 있다. 바로 화산투어. 우리는 여행사를 통해 오후 2시에 출발해 7시 경 호스텔로 돌아오는 ‘파카야 화산(Volcan de Pacaya) 투어’를 신청했다. 파카야는 화산 활동이 가장 활발한 화산의 하나이자 등반객이 가장 많은 산이다. "혹여 용암을 볼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 했지만 2010년 5월 대형 폭발 이후 붉은 용암을 보긴 어렵다 했다.
"그렇다면 활화산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잔뜩 기대를 안고 출발했건만 화산 입구에서 입장료를 내자마자 "괜히 왔어!"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입구에서부터 한 시간이 넘게 끊임없이 이어진 가파른 산길을 헉헉대며 올라야 하는데, 힘든 내색이라도 할라치면 "힘들면 말을 타. 너를 위해 여기 편안한 말이 준비되어 있어"라고 외치는 악마의 속삭임 마냥, 말을 끌고 나온 동네 아이들이 졸졸졸 따라 붙는다. (가난한 배낭여행자에게 사치스런 말타기가 웬 말인가?) 즉, 힘든 내색도 못하고 하하 웃으며 그 힘든 산을 올라야 한다는 뜻. 오빤 힘들다며 거의 탈 뻔…
말타기의 유혹보다 더 참기 어려운 것이 있었으니 바로 말똥 냄새. 숨이 턱까지 차올라 힘들기도 했지만, 숨 한 번 쉴 때마다 느껴지는 말똥 냄새에 질식해 죽을 것 같았다. 그렇게 한 시간이 넘게 징글맞게 따라오던 동네 아이들이 사라지고 10분간 휴식을 취한 후 고개를 들었을 때, 눈 앞에 펼쳐진 세상은 내가 알던 이 세상이 아니었다. 최근(2010년) 일어난 폭발로 온통 검은 흙먼지와 화산재로 뒤덮인 활화산의 숨소리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내가 정말 살아있는 화산의 한가운데 있구나!’ 생각하니 투어가 점점 흥미 진진해졌다.
뭐니뭐니 해도 이 화산 투어의 하이라이트는 ‘마시멜로우 구워먹기’다. 가이드 아저씨가 준비해온 마시멜로우를 나뭇가지에 끼운 후 지열을 이용해 노릇노릇 구워먹는 마시멜로우. "안 먹어 봤으면 말을 말아!" 우리는 눈 깜짝 할 새에 커다란 마쉬멜로우 한 봉지를 꿀꺽 다 먹어 버렸다. (그 맛이 너무 맛있어서 집에 올 때 마쉬멜로우를 사서 가스레인지 불로 구워 먹어봤으나 그 맛이 안났다.)
정신없이 마시멜로우를 구워먹다 보니 아저씨가 해 떨어진다며 내려가자 하신다. 내려 오며 바라본 일몰 또한 장관. 화산도 멋있지만, 이 마시멜로우 맛은 이 곳에서만 맛 볼 수 있는 별미니깐.
힘든 화산 투어를 마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돌아온 우리 집, ‘Hacia El Sur’. 옛 것이 아름다운 안티구아에서 빛나는 새 것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우리 호스텔이다. 오랜 기간 여행을 하다 보니 잠잘 때 만이라도 편히 쉴 수 있는 시설 좋은 호스텔을 찾게 되는데, 2012년 12월에 오픈해 모든 게 새 것인 이 곳이 딱 우리가 찾던 호스텔이었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 뿐이리…” 아, 참 피곤한 하루였다. 우린 ‘즐거운 나의 집’이란 노래를 흥얼거리며 스르륵 내일을 향해 잠이 들었다.
나테한 여행 Tip
2012년 12월에 오픈한 신생 호스텔로 프라이빗 룸과 도미토리 모두 이용 가능하다. ‘빅 브라더스’라는 별명을 가진 주인 형제들은 별명처럼 크고 따뜻하게 열린 마음으로 여행자를 맞이한다. 또한, 해질 녘 풍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카페&바 ‘SKY’ 1층에 위치하고 있어 일몰 후 숙소로 돌아오기에도 안성맞춤. https://www.facebook.com/haciaelsurcasahostal
[나테한 세계여행]은 ‘나디아(정민아)’와 ‘테츠(오재철)’가 함께 떠나는 느리고 여유로운 세계여행 이야기입니다. (협찬 / 오라클피부과, 대광카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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