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흙내음

입력 2013-02-27 16:57   수정 2013-02-28 01:30

베란다 미니 화단에서 풍기는 자연…정성 들여 가꿔주는 아내에게 감사

임창섭 <하나대투증권 사장 csrim@hanafn.com>



베란다 창가에 기품 있는 자태를 보여주던 해송(海松) 분재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 겉보기에는 잎에 윤기가 없어지고 색깔이 약간 바랜 것 같았는데 경험 많은 누군가가 아무래도 병들어 보인다는 이야기를 해서 전문가에게 진단을 받아보니 이미 되살릴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다.

고층 아파트로 이사 오고 난 후 앞뒤 베란다에 한 평도 채 안 되는 꽃밭을 만들어 놓고 하루도 거르지 않고 정성스레 손길을 주던 집사람이 받을 충격을 생각하니 걱정이 앞선다. 마음속 허탈감이 얼마나 클까 가늠하기가 어렵다. 대충 물만 주면 될 텐데, 뭘 하는지 하루에 한두 시간을 꼬박 꽃밭 가꾸는 데에 시간을 보내는 걸 보면 내가 모르는 비밀이 분명 있으리라. 짐작하건대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살아있는 생명과 무언(無言)의 대화를 줄곧 나누는 것임에 틀림없다. 나이 들어서 가장 재미있는 일이 다른 무엇보다 가드닝(gardening)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난 잘 모르지만 집사람은 이미 그 재미를 알고 있는 것 같다. 단독주택에 사는 어느 분 이야기가 앞마당 잔디밭에 잡초 뽑는 일도 온종일 시간 가는 줄 모른단다. 사는 것이 일체개고(一切皆苦)라 아마 세상사 잊고 삼매(三昧)에 들기에 그만한 일이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침에 일어나 방문을 열면 안방에 붙은 베란다에서 풍겨 나오는 흙냄새가 참으로 향긋하다. 어렸을 적엔 마당 있는 집에 살았으니 새삼 흙내음에 감격할 일은 없었다. 하지만 고층 아파트에 살면서 어떻게 아침마다 상큼한 흙 내음을 맡을 수 있으랴.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런 꽃밭을 만든 아내에게 내색은 않지만 고맙기 그지없다.

전혀 생각지도 않았는데 밤새 잎사귀 사이 수줍은 듯 살포시 얼굴을 내민 조그만 꽃에 감격해 하던 아내의 모습을 보면 옆에 있던 나도 말은 않지만 절로 기분이 좋다. 기대하지도 않은 의외의 기쁨은 매일 나누는 정다운 눈길과 손길에 대한 작은 보답이리라. 일속자(一粟子) 장일순 선생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길가로 풀이 나서 자라는 걸 보는데, 그 풀들이 절 일깨우지요. 풀은 땅에 뿌리를 박고 밤낮으로 해와 달을 의연히 맞고 있단 말이야. 거기에 못 미치지요. 부끄럽지요. 이렇게 풀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습니다. 마음을 씻는 거지요.” 아마 꽃밭에서 보내는 시간들은 매일 마음을 씻는 것일 게다. 세속에서 묻은 먼지를 깨끗이 씻는 일일 게다.

임창섭 <하나대투증권 사장 csrim@hanaf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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